[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대만의 훙하이정밀공업(鴻海, 폭스콘)은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 업체다. 폭스콘은 애플을 비롯해 델,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의 각종 전자제품들을 생산해 왔다. 전체 매출이 무려 5조 대만달러(188조 원)에 달한다. 특히 폭스콘은 그동안 애플의 아이폰을 가장 많이 생산해 왔다.
애플의 최대 파트너사인 폭스콘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에 주목해 일찌감치 중국 본토에 진출해 공장을 세우고 아이폰을 조립해 왔다. 그런데 폭스콘이 지난 2월 베트남 박장성에 25만m²의 공장 부지를 마련하고, 중국 내 아이폰 생산 공장들 중 일부를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폭스콘의 이런 계획은 애플이 중국 내 아이폰 생산량의 15~30%를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조립하려는 방침 때문이다. 애플의 경우 아이폰 설계는 미국 본사에서, 부품 조달은 글로벌 시장에서, 생산은 중국에서 각각 맡아서 하는 시스템을 고수해 왔다. 애플이 이런 방침을 바꾼 이유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때문이다.
애플은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조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처럼 자칫하면 피해를 볼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아이폰의 인기가 중국에서 급속히 식고 있다는 점도 생산 거점 이전의 한 이유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은 올해 1분기 중국 판매량이 지난해 동기 대비 48%가 줄었고, 시장점유율도 7%로 떨어졌다.
글로벌 기업들이 최근 들어 앞 다투어 ‘차이나 엑소더스’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이제 더 이상 ‘글로벌 생산기지’ 또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전 세계 컴퓨터의 90%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수입 총액은 13조 위안, 관련 고용은 1000만 명에 달한다. 중국의 전자 산업 수출입은 1991년 100억 달러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으나 2017년 1조3500억 달러로 무려 135배나 성장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글로벌 생산기지가 됐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이제 속속 중국을 떠나고 있다. 실제로 휼렛패커드(HP), 델 등 미국 컴퓨터 제조사가 중국 내 노트북 생산 라인 중 최대 30%를 동남아시아로 이전할 계획이다. 이들은 현재 장쑤성과 상하이, 충칭 등에서 노트북을 위탁생산(EMS)하고 있다. 이들은 생산시설 일부를 베트남, 필리핀, 대만 등으로 옮길 예정이다. 이들은 이미 동남아 일부 국가의 새로운 생산기지에서 시제품 생산을 시작했고, 오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HP와 델은 세계 개인용컴퓨터(PC) 생산량의 1위와 3위를 차지하는 기업들이다. 두 회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한다. 두 회사가 생산라인을 옮기면 중국 입장에서도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HP와 델의 생산시설이 있는 충칭시 정부는 올해 노트북 생산량이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에이서와 아수스텍 등 대만 업체들은 물론 심지어 중국 업체인 레노버그룹도 탈(脫)중국을 모색하고 있다.
컴퓨터 이외에도 게임기, 인공지능(AI) 스피커 등 다른 IT 제조업체들도 중국에서 다른 곳으로 생산기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게임기 엑스박스와 AI 스피커 코티나 등의 생산시설을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아마존은 전자책 리더 킨들, AI 스피커 에코 생산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글도 AI 스피커의 생산기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MS와 함께 글로벌 게임콘솔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의 소니도 중국에서 대부분 생산하는 물량을 타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 최대 게임기 업체인 일본의 닌텐도는 중국에서 제조한 주력 가정용 게임기 스위치 생산 일부를 베트남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닌텐도는 2019년 스위치 세계 판매 목표를 1800만 대로 세웠는데 베트남에서 새로 생산하는 분량만큼 중국 생산량을 감축할 방침이다.
세계 최대 자전거 업체인 대만 자이언트는 미국 시장용 물량을 본사가 있는 대만에서 생산하고 있다. 자이언트는 지난해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위협하자 중국의 6개 공장 중 1곳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패션 브랜드인 스티브 매든은 미국 정부의 추가 관세를 피하기 위해 90% 이상 중국에서 생산하던 핸드백 물량을 지난해 캄보디아로 이전했다. 세계 최대 의류·장난감 아웃소싱 업체 리앤펑도 중국을 벗어나 생산지를 다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운영하던 25개 이상의 대형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가 최근 5년간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했다. 니콘, 세이코, 엡손 등 일본 업체가 9개로 가장 많다. 미국은 소규모 업체까지 포함해 200여 개 기업들이 중국을 떠났다.
◆“임금 상승이 중국 탈출 원인”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의 생산기지를 다른 국가들로 옮기고 있는 이유는 애플처럼 미·중 무역전쟁 때문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29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정상회담을 갖고 무역전쟁 휴전 및 협상 재개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양국이 협상에서 합의안을 도출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양국이 앞으로 기술패권 전쟁을 더욱 치열하게 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아예 중국의 생산기지를 다른 국가로 이전하는 것이 피해를 덜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 주목되는 점은 미국과 중국이 무역협상을 타결했을 경우에도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려는 계획을 그대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탈출은 무역전쟁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5월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 250곳 중 40%가 인건비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중국 공장의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중국의 생산비용, 특히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 중국을 탈출하는 원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주요 공장이 밀집한 중국 광둥성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2008년 4.12위안(703원)에서 지난해 14.4위안(2460원)으로 3배 넘게 올랐다.
말레이시아의 지난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5.05링깃(1425원)에 불과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전자가 중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광둥성 후이저우의 스마트폰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을 들 수 있다. 후이저우 공장의 월평균 임금은 2008년 1894위안(32만 원)에서 지난해 5690위안(97만 원)으로 10년 새 3배나 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도 뉴델리 교외에 세계 최대 휴대전화 공장을 설립했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공장부지 값도 크게 올랐다. 한나 앤더슨 JP모건자산운용 글로벌 시장전략가는 “글로벌 기업들은 무역전쟁 훨씬 이전부터 생산지를 중국에서 옮기기 시작해 왔다”며
“높은 관세가 원래 있던 계획을 앞당겼을 수 있지만, 이를 전혀 생각지 못한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 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지적한 것처럼 외국 기업들에 대해 중국의 기술 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침해 등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외상투자법(외국인 투자법)’을 제정했지만 제대로 이를 실행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상투자법’ 22조를 보면 외국인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명확히 보호하고 강제 기술 이전 문제를 방지하고 중국 기업과 외국인 투자 기업 간의 기술 협력은 자발적 합의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하고 행정기관이나 관계자가 행정 수단을 활용한 강제 기술 이전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내년 1월부터 정식 발효된다. 하지만 이 법에는 선언적 내용만 담겨 있을 뿐 구체적인 실행 방법 등은 빠져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차이나 엑소더스에 따라 중국 중심의 ‘글로벌 밸류 체인(value chain)’이 갈수록 붕괴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밸류 체인은 제품의 설계, 원재료·부품 조달, 생산, 유통·판매 등 각 과정이 다수 국가와 지역에 걸쳐 형성된 분업 체제를 말한다.
미국은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핵심 기술을 공급하며 두뇌 역할을 해 왔다. 한국, 일본 등은 핵심 부품과 재료를 공급하고, 중국이 최종 조립자가 돼 제품을 생산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글로벌 밸류 체인은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성장시킨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다른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김에 따라 지난 20년간 구축된 중국 중심의 글로벌 밸류 체인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 다음으로 세계의 공장은 어디가 될 것인가. 현재로선 베트남과 인도가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중국과 인접한 데다 낮은 임금, 높은 성장률 등에 힘입어 최대 수혜국이 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올 1~4월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나 급증했다. 휴대전화, 섬유, 수산물, 반도체 등이 고르게 증가했다. 게다가 베트남은 6월 30일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 대외 개방을 가속화하고 있다.
싱크탱크 메콩 이코노믹스의 경제분석가 애덤 매카티는 “EU와의 협정으로 중국에서 베트남으로의 공장 이전이 빨라질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인도의 경우도 글로벌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중국을 떠날까 하고 고민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우대 세제를 적용해주거나 일정 기간 세금을 없애주는 ‘택스 홀리데이(tax holiday)’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 5월 재선에 성공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그동안 추진해 온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떠나면서 중국에선 대량 실업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공식 실업률은 지난 4월과 5월에 5%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통계를 관리하는 상황에서 실제 실업자 증가 폭은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고용이 중국의 최우선 순위라면서도 올해 도시 지역에서 최소 11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은 경기 둔화, 미국과의 무역전쟁 장기화 등의 악재로 자칫하면 최저치를 기록할 수도 있다. 아무튼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탈출이 가속화할수록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시대는 저물어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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