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보다 후배가 더 무섭다면
Enjoy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직장에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보다 후배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이 더 당황스럽다. 실제로 후배의 불편한 태도 때문에 속상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후배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져 자존감도 뚝 떨어져 버린다.

직장에서 인간관계로 어려움을 느낀다는 고민을 자주 접하게 된다. 주로 상사와의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존경하며 많이 배우고 싶은데 거친 소통, 불공정한 태도, 무능력함, 그리고 감정의 불안정성 등 단점이 보이면서 마음에 피로가 쌓인다는 것이다.

웃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웃는 것만 한 스트레스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애쓰는 이유 중 하나가 자유를 얻기 위함이라는데 그 자유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라고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막상 그 자유를 얻으면 사람 관계가 줄어들면서 행복감도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선배가 아닌 후배로 인한 고민 사연도 늘어나고 있다. 다음의 사연을 보자. “대리 3년 차 직장인입니다. 오랫동안 부서의 막내로 지내다가 한 달 전 신입사원이 들어와 굉장히 기뻐하고 있었죠. 그런데 후배 신입사원이 자꾸 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겁니다. 다른 상사들과 함께 있을 땐 깍듯이 하면서도, 둘이 있을 때는 태도가 달라지니 당황스럽습니다. 도대체 후배는 왜 그러는 걸까요. 제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선배로서 자리도 찾고, 후배와도 잘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한심하다고 너무 탓할 필요는 없다. 후배가 선배와 경쟁해서 이기고픈 욕망은 우리 마음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끈적끈적한 녀석이다. 내가 한심해서 후배가 나에게 이러는 것이 아니라 후배가 그런 욕망이 강한 사람인 것이다. 선배를 공경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는 것은 선배 공경이 본능적 욕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달달한 음식을 많이 먹으라고 교육하지 않는다. 교육을 하지 않아도 달달한 음식에 우리 뇌는 쾌감을 느끼기에 시키지 않아도 너무 먹어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 나올 때 선배 공경 유전자보다는 선배 경쟁 유전자를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난다. 생존 때문이다. 동생이 형에게 처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것이 한 살 때라고 한다. 한 엄마 뱃속에서 나온 형제도 한 살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놓고 본능적으로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경쟁 유전자가 더 강하다고 해서 더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생이 자꾸 형에게 대들고 밉게 굴면 동생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당연히 형도 동생이 예쁘지는 않을 것이다. 본능이라는 것은 힘의 원천이지만 세련되게 가공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된다. 오늘 사연의 후배도 회사 내에 벌써 적을 한 명 만든 셈이다. 사람 인생은 알 수 없다. 사연 보내온 사람이 그 후배를 평가하는 위치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좋은 점수가 나갈 리가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후배인데, 공손하고 마음 잘 맞는 후배가 들어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사실 마음에 맞는 후배가 걸릴 확률이 높지 않다.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형제도 성격이 맞지 않아 으르렁대는 경우가 허다한데 하물며 주사위를 던지듯 우연히 만난 후배가 나랑 케미가 잘 맞을 확률은 낮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는 적정거리를 우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마음을 열고 100을 주면 저쪽도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90 정도는 줄 사람인가를 평가해보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무얼 그렇게 치사하게 재면서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런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다. 내가 100이란 애정을 주었을 때 저쪽에서 50만 주면 내 마음에 좌절이 생기고 좌절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바뀌기 때문이다. 앞서 사연도 후배에 대한 기대가 처음부터 크지 않고 그래서 조금은 건조하게 관계를 설정했으면 이렇게 속상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별로 준 것이 없으니 좌절할 것도, 분노할 것도 없는 것이다. 사연을 보낼 일도 없다. 관계에 있어 처음에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일단 거리를 좁혀 놓게 되면 다시 뒤로 물러날 때 내가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한심하게 느껴질 수 있고 상대방도 사람이 왜 변하느냐며 비난할 수 있다. 잘못은 후배가 했는데 내가 비난받고 후배의 깊숙한 무의식에는 미안한 마음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마저 편하게 해주는 꼴이다.

앞서 사연을 보낸 분은 마음이 따뜻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그에 비해 후배는 경쟁, 힘을 더 우선시하는 사람이라고 추측된다. 사연을 준 분이 한 잘못은 딱 하나다. 저 후배도 나랑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랑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평생 좋은 친구 하나만 만나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잘 들어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배와 잘 지내고 싶다고 했는데 따뜻한 마음으로 친해질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후배를 공손하게 만들 방법은 있다. 힘을 중요시 여기는 후배이니 힘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공손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