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순인 LG전자 책임연구원·<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 “우편 마차를 아무리 여러 대 연결한다고 해도 그것이 기차가 되지는 않는다.”

혁신 이론을 처음 주창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한 말이다. 여기, 현재 우리 시대에 가장 핫한 혁신적인 정보기술(IT) 트렌드가 있다. ‘인공지능(AI)’이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완전히 뒤바꿀 인공지능, ‘최고경영자(CEO)가 알아야 할 IT 트렌드’의 네 번째 주제다.

CEO가 알아야 할 IT 트렌드 ④인공지능, 사용자의 마음을 읽다
현재 IT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소비자인 밀레니얼 세대.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인공지능의 등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밀레니얼 세대는 나에게 가치 있는 것에 투자하고, 나의 취향에 맞는 옵션을 스스로 선택하고, 튜닝이 자유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고 즐긴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행위를 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 에너지 절약도 중시한다. 한 마디로, 나의 취향과 딱 맞는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 간편하게 살기를 원한다.

이 디지털 생태계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란 키워드는 많이 들어봤지만 우리에게 아직 확 와 닿지 않는다. 실제로 내 주변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는 걸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제품과 상황을 가지고 인공지능이 어떻게 우리 생활에 녹아들어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일상에 녹아든 AI

인공지능 TV를 살펴보자. 예컨대 LG전자 인공지능 TV는 화질과 하드웨어 기술만 미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홈보드를 TV에 탑재하고 있다. 인공지능 홈보드는 사용자와 교감하고 마음을 읽는 ‘라이프스타일 가이드’ 역할을 한다. “◯◯◯ 배우가 나온 프로그램 찾아줘”라고 말한 뒤 “이것과 주제가 비슷한 드라마 또 찾아줘”, “이 중 북미에서 개봉된 것만 찾아줘” 등을 이어서 말해도 TV가 대화의 맥락을 이해한 뒤 선택된 콘텐츠를 보여준다.

인공지능 홈보드에서 내 집의 전체 가전(공기청정기,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의류관리기 등)의 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TV를 시청하다가 인공지능 홈보드에서 공기청정기의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한 후 공기청정기를 바로 작동시킬 수 있다. 가전제품 브랜드가 각각 다른 회사 제품이어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IoT) 국제표준인 OCF(Open Connectivity Foundation) 인증을 받았다면, 타사 제품들도 동일하게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중요시하는 ‘홈’에서 가히 홈코노미의 코크핏(cockpit)이라 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개발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MBUX(Mercedes-Benz User Experience)는 목적지 입력, 전화 발신, 음악 선택, 메시지 입력, 음성 안내, 일기예보, 차량 내 조명 제어 등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작동을 말로 명령해 실행한다.

올해 1월 열린 ‘2019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은 “헤이 메르세데스, 배고픈데 라스베이거스의 아시안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 스시는 빼고, 최소 별 4개 이상의 평점으로”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MBUX는 이에 맞는 식당 리스트를 정확하게 제공했다.

“온도를 영상 19도로 낮춰줘”라고 말하는 대신 “나 더워”라고 말하면 알아서 에어컨을 작동한다. “손이 차가워”라고 말하면 운전대의 히팅 시스템을 켜준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주식을 비교해줘” 같은 비교분석 질문에도 답을 해준다.

동일 시간대에 운전자가 자주 주행하는 경로를 감지해 해당 목적지 경로도 미리 안내해준다. ‘차’라는 내 공간에서 내 마음을 바로 읽고, 내가 원하는 것을 신속 정확하게 제공받기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꼭 맞는 인공지능 기능이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 제품 중에서 가장 핫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스피커’다. 빅데이터 때문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IoT, 가전, 통신, 자동차, 포털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전망이다. 인공지능이 여러 분야에서 힘을 내려면 각 분야의 사용자에 대한 수준 높은 빅데이터를 보유해야 한다.

수준 높은 빅데이터, 사용자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할 빅데이터, 유의미한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야 인간의 뇌와 마음을 가지고 분석과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실생활 속에 깊숙하게 관여하며 사용자에 대한 소소한 빅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도구는 인공지능 스피커만 한 것이 없다.

인공지능 스피커 사용자가 노트북을 새로 사기 위해 인공지능 스피커에 노트북 제품 검색을 요청했다고 치자. 초기에는 단순 검색과 간단한 결제 기능을 하지만, 인공지능 스피커가 사용자 곁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진화할수록 사용자의 특성, 사용자의 성격, 사용자가 노트북을 주로 사용하는 장소, 사용자가 노트북으로 주로 하는 업무와 같은 사용자 빅데이터가 쌓이게 된다. 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스피커는 사용자의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바로 추천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빅데이터는 인공지능 스피커만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IoT로 연결된 다른 스마트 기기들과 공유된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소비자 곁에서 쌓아 올린 빅데이터가 자연스럽게 IoT, 가전, 통신, 자동차, 포털 등의 인공지능에도 녹아드는 것이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불필요한 정보, 나에게 안 맞는 정보를 걸러내고, 나에게 딱 필요한 정보를 찾고 싶은 욕구가 인공지능 스피커의 진화를 가속화한다.

인공지능 투자 상담 채팅창

밀레니얼 세대는 ‘주니버(네이버의 주니어 채널)’를 보면서 자랐다.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자랐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온라인이란 새로 배워서 익힌 것이 아니라 함께 자라 이미 친숙한 세계라는 뜻이다.

이 밀레니얼 세대를 위해 인공지능 투자 설계 전문가인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가 등장했다. 금융사들은 온라인 투자 상담 채팅창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금리가 높은 예금 상품을 추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맡기실 돈을 중간에 급히 써야 할지도 모르시나요”, “가입 후 추가로 돈을 더 맡기실 예정이신가요”와 같이 묻는다. 금리뿐만 아니라 다른 조건도 고려한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주기 위해서다.

포트폴리오에 넣을 펀드의 개수, 고객의 투자 목적(은퇴, 여행, 주택 구입 등), 투자 기간, 투자 지역, 투자 성향까지도 반영해 상품을 추천해준다. 밀레니얼 세대의 까다로운 취향도 맞춰주고, 객관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까지 해주니, 인공지능 기술력이 가장 빛을 발하고 있는 분야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밀레니얼 세대들은 기본적으로 말로 전화하거나 대화하는 것보다 문자, 채팅에 더 익숙하지 않던가.

한국IBM은 인공지능 ‘왓슨’ 기반 챗봇을 채용 상담에 24시간 활용한다. 인공지능 챗봇은 구직자들의 질문을 바로 응대하거나 서류 표절 등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KT, 롯데그룹, SK그룹, LG그룹 등도 채용 절차에 인공지능을 도입했다. 인공지능이 구직자의 자기소개서를 분석해서 오류 여부를 검수하고 직무 부합도 등을 평가한다.

기업들은 이 인공지능 채용 챗봇을 통해 서류심사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 지원자들은 전형 일정, 인재상, 직무 소개, 자격 요건, 복리후생 등을 게시판에서 일일이 찾아보거나 회사 측에 직접 문의하지 않아도 챗봇을 통해 편리하고 빠르게 알아볼 수 있다. 회사와 지원자 모두 인공지능의 장점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보험에도 인공지능이 적용된다. ‘인슈어테크’는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IT를 활용한 보험 서비스를 말한다. 중국 최대 민영 보험사인 핑안보험은 이 인슈어테크를 적극 적용한 것으로 유명해 다른 여러 금융 회사들이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엇이 특별하기에 그럴까.

교통사고로 파손된 차량 사진을 보험 가입자가 보험사로 보내면 인공지능 컴퓨터가 몇 분 안에 수리비 견적을 뽑아준다. 가입자가 제출한 서류, 사고 사진의 진위 여부, 내용의 정확도를 인공지능 기술이 신속 정확하게 분석하기 때문이다.

보험사와 보험가입자 간 커뮤니케이션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니 보험사도, 보험가입자도 둘 다 이득이다. 신속 정확함을 중시하고 최신 기기, 기술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들도 환영할 수밖에 없다.

어디 이뿐인가. 요즘 가장 잘나가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중 ‘스포츠 IT’ 분야에 매진하는 곳이 꽤 많다. 스포츠 분야에도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사람마다 각기 다른 운동 동작 패턴을 수집한 뒤 특정 부상과의 매칭을 통해 어떤 부상을 당할 위험이 가장 큰지 미리 알려준다. 운동선수가 특수 기기에서 간단한 동작을 취하면 인공지능 시스템이 바로 스캐닝을 한 뒤 특징, 성향을 바로 분석한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운동 처방으로 부상 위험을 최소화하거나 예방하고 재활할 때는 회복 속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실제로 미국 프로풋볼(NFL)의 5개 팀은 신인 드래프트에 앞서 유망한 대학 선수들을 평가하는 데 스타트업들의 이 기술을 활용한다고 한다.

풋볼은 특히 부상이 가장 빈번한 종목 중 하나라서 선수 관리가 팀 차원에서도, 개인 차원에서도 몹시 중요하다. 그래서 프로 풋볼 팀뿐 아니라 대학 풋볼 팀들 사이에서도 인공지능 선수관리 시스템, 부상 예측 시스템, 재활 시스템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기존 세계의 시너지

대기업, 전통이 있는 기업, 명품 브랜드, 프리미엄 서비스들은 대부분 역사가 깊고 회사 브랜드 스토리 역시 탄탄하다. 브랜드 자체의 색깔과 지향점이 분명하고 타깃 고객의 취향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말하자면, 시간과 함께 차곡차곡 쌓인 빅데이터가 잘 구축돼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 세계 어디에 지사가 생기더라도 각 지사에서 개별적으로 마케팅, 홍보, 영업을 하기보다는 본사의 가이드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가이드를 따르는 것이므로 실패 위험도 적다. 개별적인 최신 유행 콘셉트에 지나치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브랜드의 전통과 가이드를 일관성 있게 지켜 가는 모습은 그 회사와 회사 제품에 큰 장점이 된다.

하지만 소비자 시장의 지역별 특성이 다르지는 않을까. 국내 밀레니얼 세대 소비자들은 유행에 민감해 신제품이 나오면 꼭 써보거나 취향이 금방 바뀌는 편이다. 반면 해외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한 제품에 충성도가 높은 편이라 기술, 성능에 만족했다면 쉽게 제품을 바꾸지 않는다. 소비자 시장의 사회적 이슈도 계속 새로 생기고, 바뀌지 않을까. 최근 뷰티 시장에서는 유해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이나 환경 파괴성 재료가 들어간 제품, 동물실험을 한 제품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그 예다.

소비자 시장의 세대별 특성도 다른 점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제품 상담을 전화로 하기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문자나 사진으로 전송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바로 이런 지역별 특성, 사회적 특성, 세대별 특성 분석과 공략법에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탁월한 효과를 낸다. 본사의 기본 가이드, 전통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서비스 방식이 있더라도 위의 특성에 대한 마케팅, 영업, 홍보에 인공지능의 분석, 평가가 더해진다면 힘을 더욱 발휘할 수 있다. 타깃별 특성에 맞춰지고(customized), 최적화되고(optimized), 구체화된 (specified) 전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전략이 기존 세계와 인공지능의 시너지를 최대화한다.

탁월함은 더 잘할 필요가 없는 것에 계속 노력을 더할 때 생긴다. 전통 있는 기업, 대기업, 좋은 브랜드, 명품, 유명한 서비스, 핵심 기술들이 그 위치를 유지하고 계속 발전하는 ‘탁월함’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잘할 필요가 없는 것에 계속 노력을 더해야 한다. 그 노력을 돕는 것이 ‘인공지능’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