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제 예측 불가, 불확실성 여전

[한경 머니 기고=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연말을 앞두고 내년 경제에 대한 각종 예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세계 주요국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예측 무용론’이 나올 정도다. 과연 내년에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의 난기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예측 시즌이 돌아왔다. 10월에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를 필두로 연말까지 모든 전망기관과 금융사의 예측서가 쏟아져 나온다.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내년 세계 경제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점에서는 같은 견해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 어느 해보다 ‘테일 리스크(tail risk)’가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통계학에서 자연·사회·정치·경제 현상은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 분포로 설명한다. 하지만 발생 확률이 적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빈도가 정규 분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커져 꼬리가 두터워질 경우 테일 리스크가 발생한다.

10년 전 금융위기 이후에는 정규 분포 꼬리가 너무 두터워져 평균에 집중되는 확률이 낮아 예측력이 떨어지는 ‘팻 테일 리스크(fat tail risk)’가 자주 목격돼 왔다. 꼬리 부분이 두텁지 않아야 평균값의 의미가 강해지고 통계학적 예측력이 높아지는데 꼬리가 두터워지면 평균값의 의미가 떨어져 예측이 어려워진다.

예측을 하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가 경제주체를 안내하는 일이다. 이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추세는 맞아야 하고, 예측 오차(실적치-예측치)는 크게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두 요건을 충족시키는 전망기관의 예측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은 팻 테일 리스크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측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다.

내년 세계 경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팻 테일 리스크은 ‘경제 절대군주 시대’가 열릴 것인가의 여부다. 세계 경제는 ‘뉴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론과 규범이 통하는 ‘노멀’ 시대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론과 규범이 적용되지 않아 틀(frame)이 흐트러지면 포퓰리스트가 판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짐의 말이 곧 법이다’라고 할 정도다.

경제 절대군주 시대에 각국 간 관계는 자국 혹은 절대군주 자신만의 이익을 중시하는 중상주의가 번창한다. 미·중 간 마찰이 본격화되면서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슬로벌라이제이션’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제시됐던 ‘세계화 4.0’과 같은 의미로 세계 경기는 침체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내년에 세계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넘어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다. ‘D’ 공포가 빠르게 악화된다는 의미다. 세계 경제는 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그리고 금리가 동시에 마이너스 국면에 빠지는 ‘트리플 M’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트리플 M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46대 대선 정국으로 점철될 내년 미국 경제의 팻 테일 리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과 ‘제2의 옥터버 서프라이즈’가 발생할지 여부다. 취임 이후 20일에 1차 탄핵설, 100일 만에 2차 탄핵설, 1년 전 3차 탄핵설을 어렵게 넘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4차 탄핵설만큼은 대선과 맞물려 장기화되면서 상당한 고난이 예상된다.

옥터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란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 달인 10월에 발생한 뜻하지 않은 사태로 그때까지 여론조사 등에서 불리한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를 말한다. 미·중 간 마찰, 북·미 협상, 이민법 등 그 어느 하나 표심을 얻을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어디서 또 한 차례 옥터버 서프라이즈를 만들어낼지 벌써부터 관심사다.
내년 경제 예측 불가, 불확실성 여전

◆세계 경제, 리스크 가시밭

일본 경제는 1990년 이후 ‘잃어버린 20년’ 과정에서 △정책 함정 △유동성 함정 △구조조정 함정 △불확실성 함정 △좀비 함정 등 5대 함정에 빠져 고통을 겪었다. 지난 9월을 기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최장의 총리로 등극하는 데 성공했지만 일본 국민 사이에서는 ‘지브리의 저주’에 빠질지 모른다는 새로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브리의 저주란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면 증시 등 금융시장이 난기류를 보이는 현상이다. 지브리의 저주는 금융변수 중 엔·달러 환율 움직임과 상관관계가 높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으면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로 엔화가 약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9월 이후 일본 금융시장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엔화 약세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아베노믹스를 더 이상 밀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엔고의 저주’에 걸려 있는 일본 경제 특성상 엔저를 인위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면 엔화 강세가 재현돼 경기가 침체된다.

내년에 예상되는 유럽 경제 팻 테일 리스크는 ‘선행의 역설(kind act’s paradox)’이다. 선행의 역설이란 좋은 의미로 행동한 것이 도리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이를 테면 기부를 할 때 기부의 순수성을 생각하지 않고 출세 등 다른 측면을 생각하는 게 전형적인 선행의 역설로 볼 수 있다. 7년 전 유럽 재정위기 극복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독일 경제가 그 후유증으로 지난 2분기 이후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했다. 독일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유로랜드 중 비우량 회원국에 속하는 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경제뿐만 아니라 유럽 통합에도 악역향이 우려된다.

중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팻 테일 리스크는 ‘제3차 톈안먼 사태’ 가능성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과의 협상, 홍콩 사태 등에 대해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구조병인 3대 회색 꼬뿔소 현안도 제때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바오류(성장률 6%)’ 붕괴가 일보직전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으로 생활 물가가 급등하면서 인민이 느끼는 경제 고통은 치솟고 있다.
내년 경제 예측 불가, 불확실성 여전

제3차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시진핑 주석의 축출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1976년 1차 톈안먼 사태 이후 덩샤오핑 실각, 1989년 2차 톈안먼 사태 이후 자오쯔양에서 장쩌민으로 권력 이양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부정부패 척결 과정에서 밀려난 권력층을 중심으로 시진핑 퇴출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내년 한국 경제는 10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같은 대형 위기가 발생한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대형 위기는 글로벌화가 급진전됐던 1990년대 이후 주로 발생했다. 그 이전까지 위기는 특정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 과도한 외채, 부채 만기 불일치, 자본자유화에 따른 부작용, 고정환율제 등 내부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신흥국 위기를 설명할 때 널리 알려진 ‘자산 거품 붕괴 모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각국의 빗장이 빠르게 열리면서 내부 요인보다 선진국 자본의 유출입, 자본 수출국의 통화정책 변경, 각국 자본시장 간 통합 정도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위기가 발생하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위기 성격도 채무 위기, 부동산 위기, 실물경기 위기 등이 겹치면서 다중 복합적인 성격이 짙어졌다.

경제역학 구도상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자기실현적 기대 가설’에 따라 위기가 발생한 경우도 많아졌다. 내부적으로 경제 기초여건이 양호하더라도 최고통수권자, 집권당, 경제정책 등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가 형성될 경우 자본 흐름이 역전되면서 대형 위기가 발생했다.

대형 위기 사례로 꼽고 있는 외환위기 전후 상황을 보면 1994년 이후 독일 분데스방크(유럽중앙은행 출범 전 유럽통화정책 주도)는 기준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3.75%에서 4.25%로 인상한 후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안에 6%까지 끌어올렸다.

‘대발산(great divergence)’의 시기다.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경제 위상도 높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슈퍼달러 시대가 전개됐다.
내년 경제 예측 불가, 불확실성 여전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발생했다. 미국 경기도 슈퍼달러 등의 부작용을 버티지 못하고 2000년 이후에는 IT 버블 붕괴를 계기로 침체 국면에 들어갔다.

또 하나 대형 위기 사례로 꼽고 있는 리먼 사태 진전 과정을 보면 2000년대 들어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2004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1%까지 내렸다. 그 후 기준금리를 올렸으나 시장금리는 떨어지는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자산 거품이 심하게 발생했다. 당시 자산 거품 붕괴를 촉진시켰던 것이 유가였다. 2008년 초 70달러대였던 유가가 6개월 사이에 140달러대로 치솟자 각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 결과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차단돼 자산 가격이 급락하자 마진 콜(증거금 부족 현상)에 봉착한 투자은행(IB)이 디레버리지(자산 회수)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미·중 간 마찰, 각국의 보호주의, 복잡한 중동 정세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이 심상치 않다. 세계 경기의 장기 호황도 마무리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경제 외적으로 극우주의 세력도 갈수록 힘을 얻어 가는 추세다. 사다크 칸 영국 런던 시장은 지금의 상황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흡사하다고 우려했다.

대내적으로는 모든 국정 현안을 놓고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혼탁하다. 실물경기는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악화일로다. 위험 수위를 넘은 가계부채, 날로 증가하는 국가채무, 저출산·고령화, 언제든지 급변할 수 있는 남북 관계, 중국 편향적인 경제구조 등 위기 잠복 요인은 그 어느 때보다 많다.

지난 7월부터 Fed가 금리를 내리면서 대발산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로 볼 때 발생 가능성은 낮아 대형 위기에 대한 우려는 아직까지 팻 테일 리스크에 해당한다. 하지만 외국인이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면 자기실현적 기대 가설에 따라 대형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앞으로 1년 동안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밖에 내년에 예상되는 팻 테일 리스크로는 △비이성적 과열에 따른 미국 주가 20% 폭락 △신흥국에서 외국 자금의 대규모 이탈 △항로와 자원 확보를 위한 북극 전쟁 등이 꼽힌다. 내년은 그 어느 해보다 리스크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