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스몰딜’은 돼지대란 때문?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중국 정부가 지난 10월 10일부터 이틀간 미국 정부와 고위급 무역 협상을 벌인 끝에 이른바 ‘스몰딜’에 합의한 것이 중국의 돼지대란 때문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의 급박한 상황이 지지부진했던 양국 간 무역 협상을 촉진시켰다는 분석이다.

중국 속담에 ‘저량안천하(猪糧安天下)’란 말이 있다. 돼지고기와 식량이 천하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중국인의 식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주식(主食)인 돼지고기는 중국 역대 황제들이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가장 신경을 써 왔던 먹을거리다. 다시 말해 황제들이 태평성세를 이루려면 백성들이 돼지고기를 싼 값에 충분히 배불리 먹도록 통치하면 된다는 말이다.

‘21세기 황제’라는 말을 듣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들어 치솟는 돼지고기 가격과 공급 부족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실제로 중국에선 요즘 눈만 뜨면 돼지고기 값이 오를 뿐만 아니라 공급까지 부족해 사는 것도 어렵다. 지난 9월 중국의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전년 대비 80.7%나 상승한 ㎏당 평균 35.8위안(6032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말 그대로 ‘돼지대란’이 발생했다. 농업을 담당하고 있는 후춘화 중국 부총리도 “돼지고기 공급물량을 확보하는 것은 경제 문제일 뿐 아니라 긴박한 정치 임무”라며 “공급이 충분하지 못하면 ‘샤오캉(小康)’ 사회 달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당과 국가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힐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돼지대란의 원인은 지난해 8월 발생한 돼지에 치명적인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 Swine Fever, ASF) 때문이다. 중국은 전역으로 퍼진 ASF로 돼지들을 폐사하거나 살처분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양돈업자들이 ASF 때문에 큰 손실을 볼까 두려워 돼지 사육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사업을 접는 바람에 돼지 수는 더욱 급감하고 있다. 게다가 일각에선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해 살처분한 돼지가 중국 전체 돼지의 60%에 이를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ASF에 따른 직접 손실도 엄청나다. 중국 공정원 원사인 리더파 중국농업대 동물과학원장은 “ASF에 따른 직접 손실은 1조 위안(170조 원)으로 추산된다”면서 “산업 사슬상 사료와 요식업은 뺀 수치다”라고 밝혔다. 게다가 돼지고기 가격이 중국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나 될 정도로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국의 검색엔진 바이두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무역전쟁도 홍콩도 아닌 ‘돼지고기’였다.

리 원장은 “중국인의 육류 소비에서 돼지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돼지고기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지수와 국민 생활수준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돼지고기 가격 폭등이 자칫하면 국민의 정치적 불만 요소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1989년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물가 상승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국민들의 원성을 막기 위해 돼지고기 공급 대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후 부총리는 “육류 공급 상황은 내년 상반기까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산둥성, 허베이성, 허난성 등 돼지 사육을 많이 하는 지방 정부들이 양돈에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미·중 스몰딜 합의의 셈법은

중국은 세계 최대 돼지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중국이 사육하는 돼지 수는 전 세계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육류 소비에서 돼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4%에 달한다. 중국인이 소비하는 돼지고기는 연평균 5500만 톤(t)으로 전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모돈(어미돼지) 수는 전년 대비 37.4%, 전체 돼지 수는 38.7%가 각각 감소했다. 중국의 돼지 수는 지난 8월 기준 3억8000만 마리로 전년 대비 1억5000만 마리나 줄어들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0월 1일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맞아 전략비축용 돼지고기 1만 톤을 긴급 방출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시장에 돼지고기를 풀었지만, ‘새 발의 피’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올해 부족한 돼지고기는 162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돼지고기 소비량의 95%를 중국 내에서 조달해 왔다. 중국 양돈 농가 수는 6000만 가구에 달하고, 양돈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1억 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 내에서 더 이상 공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물론 업체들이 각국에서 돼지고기 수입을 대폭 늘리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자국의 돼지고기 공급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각국에서 돼지고기를 싹쓸이하다시피 수입하고 있다. 주요 수입 대상국은 독일, 스페인, 캐나다, 브라질, 미국 등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지난 10월 10일부터 이틀간 미국 정부와 고위급 무역 협상을 벌인 끝에 이른바 ‘스몰딜’에 합의한 것도 중국의 돼지대란 때문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양국이 합의한 주요 내용을 보면 미국은 10월 15일부터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25%였던 관세율을 30%로 올리려던 방침을 철회하고, 중국은 400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47조~59조 원)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기로 한 것이다. 양국은 이런 내용을 앞으로 3∼5주에 걸쳐 합의문으로 만들고 11월 16일부터 17일까지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서명할 계획이다.

그런데 시 주석이 이번 협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나는 농산물에 대한 당신의 우려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최근 중국 기업들이 대두(콩)와 돼지고기를 포함한 미국 농산물의 구매를 가속화했다”고 강조한 대목이 상당히 흥미롭다. 시 주석이 친서에서 이런 언급을 한 이유는 내년 미국 대선에서 핵심 지지층인 농민들의 표심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미국산 농산물을 대량 구입하겠다고 생색을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내년 대선에서 표밭인 팜 벨트(farm belt: 농업 지역)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이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기를 희망해 왔다. 팜 벨트 지역은 일리노이·아이오와·미네소타·네브래스카·인디애나·미주리·오하이오·노스다코타·사우스다코타·아칸소주 등 미국 중서부 10개 주를 말한다. 이 지역에선 대두(콩)와 돼지고기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일리노이와 미네소타를 제외한 팜 벨트 지역 8개 주에서 승리하면서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이 지역 농민들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콩 등 농산물 수입을 중단하자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해 왔다. 따라서 시 주석의 생색내기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당의 탄핵 추진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중국과 이룬 합의는 이 나라 역사상 위대하고 애국적 농부들을 위해 이뤄진 가장 위대하고 큰 합의다”라고 자화자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시 주석이다. 올 들어 지금까지 세계 시장에서 수출된 돼지고기는 880만 톤으로, 이를 모두 합쳐도 중국의 돼지고기 부족량을 채울 수 없다. 게다가 각국이 돼지를 대폭 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에 더 이상 돼지고기를 공급할 수도 없다. 따라서 중국 정부로선 미국으로부터 돼지고기를 대량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 세계에서 미국이 사육하는 돼지의 비중은 10%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또 전 세계에서 ASF가 발생한 적이 없는 유일한 국가다. 특히 중국이 미국산 돼지고기를 적극적으로 수입하려는 이유는 돼지고기 값이 앞으로 훨씬 더 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월가의 농축산 상품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ASF로 전체 돼지의 3분의 1이 죽었는데 가격이 80% 정도밖에 안 오른 이유는 지금은 ASF에 걸릴까 봐 미리 도축한 돼지고기 냉동육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들 냉동육이 다 소비되고 나면 돼지고기 수급이 무너져 값은 몇 배라도 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로선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돼지대란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산 돼지고기 확보에 나선 셈이다. 콩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부족한 돼지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대규모 양돈에 나서고 있는데, 이를 위해선 돼지 사료용인 콩을 대량 구입해야만 한다. 따라서 중국 정부로선 세계 2위 콩 생산국인 미국으로부터 콩을 확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 정부가 이번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심을 쓰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자국의 급박한 상황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중 ‘스몰딜’은 돼지대란 때문?

◆돼지대란, 향후 10년 지속될까

중국의 돼지대란은 글로벌 육류 수급 체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중국이 유럽과 중남미에서 돼지고기를 대량 수입하는 바람에 각국의 돼지고기 값도 대폭 오르고 있다. 유럽의 경우 돼지고기 값이 전년보다 평균 5%나 올랐다. 영국의 경우, 영국 내 공급 부족으로 돼지고기 값이 급등하면서 201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돼지고기 파이로 유명한 베이커리 체인점 디킨슨 앤 모리스는 최근 돼지고기 도매가격이 26%나 오르자 돼지고기 파이 가격을 10~15% 인상했다. 스페인에선 업체들이 돈벌이가 되는 중국에 돼지고기를 대량 수출하면서 스페인 내 시장에서는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스페인 최대 돼지고기 가공 업체 관계자는 “중국으로 수출하면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돼지 족발 같은 값싼 고기조차 시장에서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요 돼지고기 수출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돼지고기 선물이 4.5%나 급등했으며 앞으로 더욱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중국이 돼지고기의 대체재로 각국에서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 다른 육류들을 대거 수입하는 바람에 이들 육류 값도 덩달아 오르면서 품귀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중국에 대한 닭고기 수출이 전년 대비 31% 급증한 가운데 닭고기 가격은 16%나 급등했다.
브라질의 육류 가공 업체인 BRF사의 파트리시오 로너 부사장은 “중국 수입업자들이 닭고기 구매를 3배 이상 늘리고 있다”면서 “그 결과 브라질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값에 닭고기를 사야 한다”고 밝혔다. 호주의 양고기 가격도 전년 대비 14%나 올랐다. 뉴질랜드에서는 소고기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중국에 대한 소고기 수출은 50% 이상 늘었고 가금류는 68% 증가했는데, 소고기 가격은 전년 대비 51% 올랐다. 지난 8월까지 중국의 소고기 누적 수입량은 전년 대비 32.4%, 냉동 닭고기 수입은 51%나 증가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육류지수(index)에 따르면 소고기, 돼지고기, 가금류, 양고기 가격이 평균적으로 10%나 올랐는데, 이는 2015년 이래 최고치다. 특히 내년에도 돼지고기는 물론 다른 육류 가격이 계속 오름세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세계 최대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돼지대란이 전 세계의 식탁 물가까지 올리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향후 10년간 돼지고기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돼지고기 공급을 늘리기 위해 양돈 정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 국민들의 돼지고기 등 육류 소비는 앞으로 소득이 늘어갈수록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14억 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시 주석과 공산당 지도부로선 무엇보다 식량 안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