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0년 1월 6일 SF소설<목소리를 드릴게요>출간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다정하고 명랑하게 다양한 방식의 구원에 대해 쓰는 작가.’ 정세랑 작가를 향한 팬들의 찬사다. 올해 등단한 지 딱 10년이 된 그가 장르문학의 샛별에서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대세 작가로 거듭나게 된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정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사진 이승재 기자 장소협찬 조커커피 서울본점


요즘 이른바 ‘탑골GD’라고 불리는 가수 양준일의 인기가 심상찮다.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1990년대 음악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환된 그는 그야말로 미래에서 온 아티스트였다. 음악은 물론, 패션, 무대 매너, 외모까지 현재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트렌드로 무장한 그의 모습에 40대부터 1030세대까지 매료됐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예술의 위대함이란 역시 이런 건가 싶다. 다만, 그의 천재성을 ‘좀 더 빨리 발견했으면 어땠을까’란 진한 아쉬움은 남는다. 무한한 예술에 비해 예술가의 삶은 유한하다. 따라서 한 사회 내 문화·예술적 감성이 진일보하려면 능력 있는 젊은 작가들의 가능성을 제대로 바라봐 주는 평단과 대중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지난 10년간 국내 문학에서 없어선 안 될 작가로 자리매김한 정세랑 작가의 발견은 축복에 가깝다.

유쾌하고 발랄한 ‘정세랑식 스토리’에는 한계가 없다. 친환경 디자이너와 외계인 남자친구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지구에서 한아뿐>부터 신도시 주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성장통을 담은 <이만큼 가까이>, 사립학교의 보건교사이자 퇴마사인 안은영 선생님의 악령 퇴치 이야기인 <보건교사 안은영>, 수도권 한 대학병원 안팎의 사람 50명이 겪는 사건과 고민들을 맛깔나게 쓴 <피프티 피플>과 <옥상에서 만나요>, <재인, 재욱, 재훈>까지 순문학과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우리 사회를 조명한다.

물론, 정 작가의 등단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10년 신춘문예가 아닌 SF 잡지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연달아 2권의 장편을 내놨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때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두 작품이 2019년 화려하게 재출간된 <덧니가 보고 싶어>와 <지구에서 한아뿐>이다.

또한 그는 ‘장르문학’ 작가라는 문단 내 ‘서자’의 꼬리표를 떼고자 2014년 <이만큼 가까이>로 제7회 창비 장편소설상을, 2016년 <피프티 피플>로 이듬해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2020년에도 그는 종횡무진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오는 1월 신간 <목소리를 드릴게요> 출간 외에도 자신의 소설을 각색한 넷플렉스 드라마<보건교사 안은영>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바쁜 일정에도 새해에는 “내 속도에 맞게 일하고 싶다”는 정 작가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말하는 작품 속 인물들 이야기와 소설가로서의 희로애락을 엿들어 봤다.


2019년 2권의 책을 재출간하셨는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책을 출간하고 5년쯤 지나니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마음만큼 쉽지는 않죠. 아무래도 비용과 노력이 많이 소모되니까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출판사에서 먼저 재출판 제의를 해 주셔서 더는 미루지 말고 해야겠다 싶어서 진행했죠. 2달에 걸쳐 수정 작업을 했는데 예전에 매끄럽지 못했던 문체들을 다듬기도 하고, 그 사이 달라진 세상의 모습과 제가 습득한 경험들을 담을 수 있어서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가령, 개정된 <지구에서 한아뿐>에서는 지구 환경에 대한 정보들이 업데이트 돼서 반영됐죠.

그때도 쓰레기 문제는 거론됐지만, 지금은 (무분별한) 육식에 대해서도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죠. 그래서 초판에는 한아가 고기를 먹었는데 재출간이 된 버전에서는 채식주의자가 됐죠. 좀 더 최근의 이슈들을 반영해서 좋았고, <덧니가 보고 싶어>에서는 요즘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 알게 되고, 느낀 점들을 반영해서 좋았어요.”

정 작가님의 이야기들은 늘 신선해요. 기발한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요.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돼요. 목적 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마주 친 풍경이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 가볍게 듣는 농담, 날씨 등으로부터 착안을 해요. 그리고 그렇게 착상된 아이디어들을 치밀하게 자료조사를 해서 완성해 가는 편입니다. 자료를 찾는 건 대학교에서 역사교육학을 공부했던 것들이 도움이 돼요.”

작품 속에 종종 외계인, 귀신 등 미지의 생명체들이 등장해요. 혹시 그들의 존재를 믿나요.
“제가 환상문학을 많이 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과학, 즉 합리적인 이성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웃음) 물론, 어떤 상징이나 비유로써 환상(그런 소재들을 활용하는 것)은 좋아해요.”

지금껏 창조해 낸 무수한 인물들 중 유독 마음이 쓰이는 인물을 꼽자면 누구인가요. 혹은 본인을 가장 닮은 인물이 있나요.

“아무래도 주인공들은 더 멋지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저랑 좀 닮지 않았고,(웃음) 주인공 친구들을 더 닮은 것 같아요. 이번에 재출간한 <덧니가 보고 싶어>에서는 선이, <지구에서 한아뿐>에서는 유리랑 성격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리고 특히 마음이 가는 캐릭터는 <피프티 피플>이나 <이만큼 가까이> 등에 등장하는 아픈 인물들이요. 제가 사회 폭력에 대해 얘기하려고 그 인물들을 더 다치게 한 면이 있어요. 물론, 실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썼죠.”


말랑말랑한 텍스트 안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꾹꾹 눌러 담으시던데, 요즘 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사회 이슈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우리 사회 내 악플 문화를 굉장히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어요. 사실 요즘 제가 인터뷰를 잘 안 하려고 하는 것도 그 이유(악플)와도 관계가 있어요. 어쩌다 제 인터뷰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노출되면 저에 대한 외모 지적부터 시작해서 온갖 이상한 악플들이 달려요. 저 같은 소설가한테도 70개 이상 댓글이 달리는데, 연예인들에게는 700개, 7000개 이상도 달리지 않겠어요. 저는 결코 그것이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스트레스를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혐오의 형태로 푸는 거잖아요. 동시에 그걸 그냥 방치하는 주체들도 문제고요. 인간은 언제나 선할 수 없기에 어떤 보호나 규제 장치가 필요한데 요즘은 그저 접속량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갖잖아요. 그 속에서 누군가 다치는 건 크게 신경쓰지 않는 거죠. 저는 그런 것에 경각심을 갖고 있어요. 동시에 그런 것에 노출된 삶에 대해 이야기를 써 볼까도 생각 중입니다.”

‘사랑’이란 키워드도 정세랑 소설에 빼놓을 수 없는 주제 같아요. <보건교사 안은영>처럼 우연과 일상이 더해져 스며드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지구에서 한아뿐>처럼 운명적인 사랑도 있고 <이만큼 가까이>에선 풋풋한 청춘의 첫사랑도 담기죠. 혹시 연애를 많이 해 보셨나요.
“정작 저는 현실 연애는 그렇게 많이 해 보지 않았어요.(웃음) 기본적으로 현실 연애보다는 연애소설을 좋아해요. 제인 오스틴의 열렬한 팬이죠. 어쩌면 제 문학의 출발점이 제인 오스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렇다면 정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건가요.
“일단, 사랑이 너무 강요돼선 안 되는 것 같아요. 꼭 (연인 간) 사랑이 아니라도 동료애, 우정, 신념 등을 통해 충족감을 느낀다면 되레 사랑이 꼭 모두에게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만약 사랑을 한다면 저는 굴절시키지 않는 사랑이 좋다고 생각해요.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내가 아닌 존재가 되면서까지 상대방에게 남으려고 하는 건 굴절이거든요. 간혹 너무 지독한 사랑을 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꺾고, 가두면서 자신을 굴절시켜요. 또 상대가 그걸 역이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말로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건강하게 자신의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나가도록 지지해 줘야죠.”

곧 출간될 신간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제가 10년 동안 써 둔 단편들을 모은 책이에요. <옥상에서 만나요>랑 다른 점이 있다면 <옥상에서 만나요>는 SF와 일반 문학 단편들이 섞여서 담겼는데 이번 책은 SF만 모았어요. 2020년 1월 6일에 출간될 예정인데 8편의 이야기가 담겼어요.”

새해에 꼭 하는 계획 중 하나가 독서죠. 그런데 요즘 책을 읽는 사람이 더 양극단화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할까요. 동시에 정 작가님이 이 겨울 추천하시고픈 책이 있다면요.
“저는 마음의 예방주사 맞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요. 소설마다 내 모습(존재)이 닮긴 이야기들을 마음속에 코팅해 두면 훗날 그것들을 통해 힘든 일을 견딜 수 있거든요. 그리고 최근에 제일 좋았던 책은 <깨끗한 존경>이란 이슬아 씨의 인터뷰집입니다. 일단,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 라인업이 너무 좋았고, 굉장히 긴 시간 인터뷰를 한 것 같은데 느린 매체만 할 수 있는 강점을 살려 깊은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읽다 막 울기도 했고요. 더불어 정재윤 작가의 <서울구경>이란 책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성이 터진다고 할까요.”

글을 쓰고, 나만의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정 작가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어떻게 써야 나만의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제 주변에 동료 작가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모두 2~3일마다 꼬박꼬박 책을 1권 이상 읽는다는 거죠. 읽는 책의 분야도 엄청 다양한데, 문학부터 과학, 인문, 사회, 역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사진집이나 미술책까지 온갖 것들을 읽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글을 쓰고 싶은데 아직 뭔가 부족하다고 싶은 분들은 ‘쓰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독서량이 충분하지 못해서일 가능성도 있어요. 실제로 저는 한 달에 1~2권 정도 책을 읽는 사람이 작가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답니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원래는 광고마케팅에 관심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쪽에 발을 들였어도 작가를 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대학교 때 광고마케팅 관련 인턴을 줄곧 했는데, 늘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어요. 아마 홍보 글을 쓰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켰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다만, 그때 그 길로 바로 들어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비슷한 욕구는 계속 있었겠지만, 그게 소설이 됐을지는 모르겠네요.”

소설을 쓰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있었다면요.
“간혹 이야기를 뒷받침해야 하는 감정 연결에 제가 바로 들어가지 못할 때 힘들죠. 소설 속 인물이 제 연령대를 벗어나면 그 나이 대에 느끼는 감정 이입이 어려워서 며칠에 걸쳐서 쓴 적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그 인물과 비슷한 감정이 묻어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감정 선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넷플릭스 상영본 대본도 직접 집필하셨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혹시 앞으로 시나리오 집필도 하실 의향이 있나요.
“큰 틀은 제가 원래 썼던 내용과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어려운 건 없었어요. 다만, 드라마는 소설과 달리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 저만의 색깔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색깔과 개성 더해져서 나올 것 같아요. 굉장히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죠. 그리고 전 (글의) 호흡상 시리즈물이 잘 맞아서 영화 시나리오나 연극 대본을 쓰기보다는 드라마 각본을 쓰고 싶어요.”


훗날 집필하신 드라마에 출연했으면 하는 배우가 있으세요.
“요즘 제가 정말 좋아하는 정려원 배우나 신세경 배우요. 두 분 다 연기할 때 엄청난 에너지를 끌어내는 동시에 평소에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 주잖아요. 그런 양면성이 참 매력 있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20년이 다가오네요. 정 작가님이 쥐띠신데 마침 2020년도 쥐의 해예요.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것 3가지가 있다면요.
“네, 있죠. 좀 더 환경적으로 살기, 정말 좋아하는 운동 찾기, 제 속도로 일하는 습관 갖기요. 2019년에는 정말 바빴는데 가급적이면 2020년에는 너무 바쁘지 않게 제 속도에 맞게 일하고 싶어요.”

<지구에서 한아뿐>의 한아처럼 정 작가님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크신 것 같아요.
“평소에 물고기나 새 보는 걸 좋아해요. 작고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생물들에게 늘 마음이 가더라고요. 인간과 달리 동물은 조금만 잘못 먹어도 이유도 모르고 죽어 가잖아요. 안타까워요. 그래서 제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해요.”

정 작가님을 좋아하는 팬(독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다면요. 팬들의 피드백도 종종 챙겨 보시는지 궁금해요.
“최근에 서점에서 저를 알아본 독자를 만나서 반갑기도 하고, 좀 놀랐어요. 기억에 유독 남는 팬은 직접 뵌 건 아닌데 저를 만나는 행사에 오시다가 다쳐서 못 오신 팬 이야기가 마음에 쓰여요. 회복 잘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팬들의 의견도 종종 반영해요. 추가 인쇄를 진행할 때 독자들이 발견해 주신 오타도 고치고, 큰 분량이 아니라면 좋은 아이디어들은 조금씩 반영해서 수정해요.”

정 작가님에 대해 누군가 ‘다정하고 명랑하게 다양한 방식의 구원에 대해 쓰는 작가’라는 평을 했어요. 정 작가님이 생각하는 구원이 있을까요.
“요새는 그런 생각을 해요. 자신을 닮은 존재를 사랑하는 것보다 전혀 닮지 않은 존재를 생각하고, 마음에 담고, 구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이죠. 제가 생각하는 구원은 처음에는 자신과 가까운 것부터 점점 더 먼 것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 인생의 문장’이 있다면 어느 문장일까요.
“조지 R. R. 마틴의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읽는 자들은 죽기 전에 천 번의 삶을 산다. 읽지 않는 자들은 오직 한 번 살 뿐이다’라는 문장을 좋아해요. 책을 읽는 사람은 읽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복합적으로 여러 번 살 수 있다는 얘기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과 새해 덕담 한마디 부탁합니다.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요. 새해 덕담이라면 요새는 연결이 쉬운 사회잖아요. 아이디어들이 많이 교류되고 같이 정교해지고 풍성해지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정세랑 작가는…

1984년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이만큼 가까이>,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등이 있다. 2014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