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영 돈의문박물관마을 예술감독과 시민수집가 김평규 대표

[한경 머니=김수정 기자]김문영 돈의문박물관마을 예술감독 “전 세대 잇는 박물관 만들 것

[big story]옛것이 유희로, 전 세대를 자극하다②인터뷰

[사진 이승재 기자]

이번 전시회에 다양한 시민수집가들이 신청했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물건이나 사연이 있었나요.

“정말 많은 사연들이 접수됐는데,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전시한 시민수집가 세 분의 소장품이 기억에 남아요. 세 분 모두 애틋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가지고 오셨거든요. 박상진 선생님은 광복 이전의 간찰과 편지봉투를, 이동현 선생님은 부모님에 대한 각종 기록물들을, 서영희 선생님은 살면서 모아 왔던 손편지들을 전시하셨죠. 어떻게 보면 한 개인의 추억거리일 수도 있지만 그걸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더라고요.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고요.”

박물관이란 것 자체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곳이잖아요. 히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지금 메가트렌드인 뉴트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왜 이것에 열광할까요.

“뉴트로는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을 새로운 멋과 유희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죠. 일단 요즘 젊은 세대들은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잖아요. 똑같은 옷과 인테리어라도 나만의 개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아예 옛것을 꺼내와 새롭게 재현하는 문화 자체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과거 아재패션이라고 촌스럽다고 했던 것들도 이제는 어떻게 재탄생시키느냐에 따라 멋스러움으로 평가받기도 하죠. 패션 외에도 1980~1990년대 노래나 공병, 재활용품을 활용한 아이디어, 과거의 광고 내용을 차용하기도 하죠. 아날로그 감성에 현재의 멋과 기술을 창의적으로 결합하는 과정 자체를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것 같아요. 동시에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의 향수를 느낄 수 있고요.”

그동안은 박물관 하면 딱딱하고, 획일적이었는데 요즘은 다양한 체험은 물론, 도슨트, 교육 연계 프로그램까지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는 어떤가요.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인 동네’를 표방합니다. 과거의 시간과 삶이 담긴 공간을 보존하고, 현재에도 문화로 활용하고 이어가는 거죠. 다른 나라의 사례를 직접 벤치마킹 했다기보다는 국내외 도시재생 박물관 사례를 연구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가령, 영국의 비미시박물관(Beamish Museum)을 예로 들고 싶어요. 이곳은 지금은 폐쇄된 탄광촌 마을 전체를 영국 초기 산업 발달 모습을 구현해 재탄생시킨 박물관입니다. 관람객들은 과거 광부의 일상을 체험할 수도 있고, 시민들이 기증한 산업시대 물건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을 재탄생시킨 장본인이 프랭크 앳킨슨이라는 지역주민이었다고 하는데, 저희 돈의문박물관마을에도 과거 새문안동네에서 거주한 시민들이 직접 화원과 카페를 운영하면서 마을에 애정을 쏟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손님들과 대화를 통해 돈의문의 옛 이야기도 들려 주죠. 일본 역시 이런 움직임이 활발해요. 일본 오카야마현의 쿠라시키시 미관지구 일대(2010~2012년)는 350년 빈 상태로 방치됐던 점포를 지역의 전통과 역사 콘텐츠를 활용해 박물관이나 상업시설로 재구성해 호응을 얻었습니다.


저희 돈의문박물관마을 역시 단순히 공간의 보존만이 아닌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물질 이상의 가치와 이야기를 발견해 유지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간 디렉팅, 아트 디렉팅을 역사와 인문학, 철학을 바탕으로 구현하고자 합니다.”

한 사회의 교육, 문화의 성숙도를 알려면 박물관을 가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점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박물관은 어느 지점일까요.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좀 더 모색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박물관 수는 대략 770여 개라고 합니다. 요즘은 박물관이 단순히 교육, 박람의 기능을 넘어 점차 흥미와 여가의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그저 유물을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지만은 않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전시를 할 때도 기술과 다양한 전시 공간 기획 등을 통해 온·오프라인 융합의 모델로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상물리 시스템으로써 가상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연결하고,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시켜야 합니다.”

세대 간 갈등이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겠죠. 저는 이번 뉴트로 열풍이 단순히 반짝 유행이 아니라 세대 간 가교로 오랫동안 지속됐으면 하는데 돈의문박물관마을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 가을에 저희 ‘생활사박물관’을 관람하던 세 모녀(할머니, 어머니, 딸)의 대화 내용이 생생해요. 할머님은 20대 손녀에게 예전에 빨래하러 우물에 갔을 때 에피소드도 들려주시고, 어머니는 처음으로 자개장을 구입했을 때 기쁨과 곤로를 사용하는 방법들을 딸에게 소상히 들려주시더라고요. 얘길 하시는 두 분은 추억에 잠겨 살포시 미소를 지으시고, 경청하던 딸도 눈을 반짝이며 전시를 보셨어요. 바로 이런 모습이 저희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추구하는 따스함이자, 역할이죠. 앞으로도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하도록 더 끊임없이 연구해 나갈 예정입니다.”

profile

김문영 예술감독은 동국대 예술대학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돈의문박물관마을 예술감독 외에도 동국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조소전공 외래교수, 서울시 동대문문화재단 이사, 한국예술문화연구소 대표 등을 역임하며 미술, 전시, 도시재생과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수집가 김평규 신세대통신 대표

“세대 간 추억 나눔, 행복 그 자체

[big story]옛것이 유희로, 전 세대를 자극하다②인터뷰

[사진 이승재 기자]

언제부터 삐삐나 휴대전화를 모았나요.

“1982년 현대전자에서 나온 삐삐를 처음으로 구입했어요. 가격이 23만 원이었는데 당시 회사원이었던 제 주머니 사정을 고려했을 때 꽤 큰돈이었죠. 그래도 꼭 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삐삐가 유일한 통신수단이기도 했고, 그땐 허리춤에 삐삐를 차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시기였어요. 부자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 삐삐를 주로 소유했거든요. 그걸 시작으로 꾸준히 삐삐나 휴대전화 및 관련 부속품 등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기계별로 다양한 모양과 색상, 기능들이 흥미로워서 모았는데 하나, 둘 모으다 보니 벌써 40년이 지났네요. 1993년부터는 아예 이 분야가 유망할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휴대전화 판매도 하면서 새롭게 나오는 기종은 물론, 외국에 나가 발품을 팔아 가며 다양한 기종을 모으고 있죠. 아마 그동안 수집품들 구매하는 데 쓴 비용만 1억 원은 훨씬 넘을 겁니다.”

[big story]옛것이 유희로, 전 세대를 자극하다②인터뷰

[big story]옛것이 유희로, 전 세대를 자극하다②인터뷰

[김평규 대표가 수집한 삐삐들, 아래는 1982년 구입한 현대전자 삐삐. 사진 이승재 기자]

가장 애착이 가는 모델이 있나요.

“아무래도 ‘최초’의 제품들은 특별히 더 애착이 가죠. 특히 모토로라 9800이나 삼성과 노키아 등 최초의 휴대전화나 삐삐는 지금은 너무 희귀해서 매매 자체도 잘 이뤄지지 않거든요. 가령, 일명 ‘망치폰’으로 불렸던 모토로라 9800을 제가 당시 250만 원을 주고 구매했는데, 지금은 그걸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돈으로는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를 지니죠.”

취미라도 한 가지 일을 40년 넘게 한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닌데, 수집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에피소드가 참 많죠. 가령,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서는 한국무선국관리사업단에서 통신보안 교육을 사흘 정도 받고, 무선설비기술기준확인증을 받아야 했어요. 이걸 요즘 젊은 친구들한테 얘기하면 이해할 수 없다며 신기해하죠. 또 지금은 사라졌는데 예전에는 카폰이 유행했어요. 자동차에서 수신, 발신이 가능했던 전화기인데, 이걸 차에서 사용하려면 트렁크안테나 설치가 필수였죠. 트렁크안테나를 길게 할수록 통화감이 좋았는데 일부 사람들은 ‘보여 주기 식’으로 여기저기 오버해서 달아 놓은 경우도 더러 있었답니다.(웃음) 그땐 그런 시절이었죠.”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지난해부터 시민수집가로 휴대전화를 전시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특별히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올해도 연장해서 전시하고 있는데 소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너무 좋죠. 지금까지 삐삐나 휴대전화를 약 3000개 가까이 모았는데 여기엔 300여 개를 전시했죠. 저는 이걸 수집하는 것 자체가 늘 재밌고 즐거워요. 수집한 것들을 바라보고,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니까요. 거기에 소중한 제 추억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니 더없이 행복하죠. 어린 친구들이 신기한 눈으로 제 전시물을 바라보고, ‘아저씨 삐삐가 뭐예요’, ‘와, 예전엔 이런 것들도 있었어요’라며 이것저것 제게 질문하고 서로 소통하는 게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가족 단위로 오는 관람객들도 꽤 있는데 세대는 달라도 휴대전화를 매개체로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사실 세대 간 갈등의 요인 중 하나가 서로의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 대화가 단절되는 거잖아요. 그 점에서 선생님은 21세기 필수인 휴대전화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라 젊은이들과 대화 소재도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떤가요.

“사실 저도 젊은 친구들과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다르다 보니 그들과 처음 대화하는 건 늘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일단 그들 입장에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면 대화의 물꼬가 트이더라고요. 그 속에서 휴대전화 얘기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고요. 재밌는 점은 요즘 친구들이 뉴트로에 열광하잖아요, 세련되지 않은 것에서 신선함을 찾는 건데 제 생각에 앞으로 휴대전화 트렌드가 그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겠어요. 실제로 고3 수험생 외에도 일부 젊은 소비자들이 최소한의 기능만 탑재한 폴더폰을 찾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실시간 과도한 스마트폰의 사용으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뉴트로 열풍과 함께 기본 기능에만 충실한 과거의 휴대전화를 찾는 수요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싶네요.”

앞으로 바람이나 꿈이 있다면요.

“처음엔 그저 취미로 휴대전화를 모았는데 모으다 보니 훗날 박물관을 만들어서 많은 시민들한테 보여 주면 어떨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목표가 생기니까 더 열심히 수집할 수 있었고요. 그렇게 모은 3000여 개 수집품이 지금은 제 창고에 보관돼 있는데 장소의 협소함 때문에 제대로 진열을 못해서 안타까워요. 무엇보다 저는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강국인 만큼 제 개인적 차원이든, 국가적 차원이든 꼭 휴대전화 관련 박물관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꼭 미래에는 멋진 휴대전화 박물관을 설립해 국가 홍보 등 국익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7호(2020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