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가족이 아픈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물론,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아픈 당사자이겠지만 그를 간병하는 가족들의 심신도 고통스럽긴 매한가지일 터. 그렇다면 오랜 기간 투병한 배우자를 보살핀 배우자에게 기여분은 얼마나 인정될 수 있을까.

배우자의 간병, 기여분 인정은

상속 분쟁은 형제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들이 서로 상대방이 돼 다투기도 한다. 비단 부모가 이혼하고 어려서 헤어진 자녀와 뒤늦게 상속재산을 정리해야 하는 경우만 부모와 다투는 것이 아니다. 같이 동거했던 부모와 자녀도 다툰다. 계부나 계모와 다투는 것은 이상하지도 않다. 비교적 긴 시간 보아 왔던 사이이기 때문에 좋은 점뿐만 아니라 분하고 억울한 점도 새록새록 생각나서 협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병이다. 옛날 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부모가 아프다고 하면 대부분 처음에는 만사 제치고 달려간다. 부모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진료 절차를 밟고 같이 기다리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사서 집에 모셔다 드리면 아무리 짧게 시간을 잡아도 반나절은 지나간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 자녀가 한 명만 있거나 없으면 비교 대상이 없어서 덜 할 수도 있지만, 여러 자녀들 중 한 명이 도맡아 병수발을 들게 되면 왜 나만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부모가 여유가 있어 이런 노고를 물질적으로 보상해 줘도 시간과 노력의 값을 제대로 받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모두 꺼리는 간병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면 비록 따로 망인의 병원비 지출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 노고는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로 상속재산을 분할할 때 이른바 기여분의 문제다.

그럼 배우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혼인할 때 슬플 때에도, 아플 때나 힘들 때에도 같이 한다고 맹세했으니 병든 배우자의 간호는 당연한 것이라 생색낼 것이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최근에 대법원에서 배우자의 간병과 기여분에 관한 결정(대법원 2019. 11. 21.자 2014스44, 45 전원합의체 결정)이 있었다. 망인은 전처와 사이에서 9명의 자녀를 두었다가 사별하고 상속인인 지금의 처와 재혼했다. 청구인들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자녀 9명이었고, 상대방은 지금의 처와 망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었다.

배우자 vs 공동상속인들 기여분 형평성

망인은 이 소송의 상대방인 전처와 그 자녀들에게 생전에 상당한 재산을 증여했다. 청구인들이 상속재산분할심판을 청구하자 상대방인 지금의 처와 그 자녀들은 전처 자녀들을 상대로 망인과 상당한 기간 동거하면서 투병 중인 망인을 간호했으므로 민법 제1008조의 2에서 정한 기여분을 인정해달라는 청구를 했다. 망인은 2003년부터 2008년 3월 사망할 때까지 거의 매일 대학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았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모두 9회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러한 청구에 대해 1심은, 상대방(지금의 처)이 망인을 간호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상대방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기여분을 인정할 정도로 통상의 부양을 넘어서는 수준의 간병을 할 수 있는 건강 상태가 아니고 통상 부부로서 부양의무를 이행했다고 인정된다는 취지로 판단해 상대방들의 기여분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대한 항고심 역시, 상대방들이 통상 처와 자녀로서 기대되는 정도를 넘어 법정상속분을 수정함으로써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인 공평을 기해야 할 정도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다고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해 상대방들의 항고를 기각했다. 상대방들이 다시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배우자가 상당한 기간 투병 중인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하는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부양한 경우, 이러한 사정만으로 배우자에게 기여분을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기여분 규정은 1990년 1월 13일 민법에 신설됐다. 당시 법 규정은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관해 특별히 기여한 자(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한 자를 포함한다)가 있을 때에는 상속 개시 당시의 피상속인 재산가액에서 공동상속인의 협의로 정한 그 자의 기여분을 공제한 것을 상속재산으로 보고 제1009조 및 제1010조에 의해 산정한 상속분에 기여분을 가산한 액으로써 그 자의 상속분으로 한다”였다.

이 규정은 2005년 3월 31일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때에는 상속 개시 당시의 피상속인 재산가액에서 공동상속인의 협의로 정한 그 자의 기여분을 공제한 것을 상속재산으로 보고 제1009조 및 제1010조에 의해 산정한 상속분에 기여분을 가산한 액으로써 그 자의 상속분으로 한다”는 규정으로 개정됐다.

, 기여분 제도는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거나 피상속인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경우, 이러한 사정을 상속분 산정 시 고려함으로써 공동상속인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다.

종래 대법원은 이와 같은 취지에서 “기여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공동상속인 간의 공평을 위해 상속분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다거나 피상속인의 상속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2014. 11. 25. 자 2012스156,157 결정 등).

대법원은 앞의 사례에서 2005년 기여분 규정이 일부 개정됐지만 상속인이 단순히 동거하거나 간호했다는 사정, 특히 제1차 부양의무가 있는 배우자가 간호했다는 사정만으로는 기여분을 인정할 수 없고, 가정법원이 ‘특별한 부양’이라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어야 기여분을 인정할 수 있다는 종전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특별한 부양’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동거, 간호의 시기와 방법 및 정도뿐 아니라 동거, 간호에 따른 부양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규모와 배우자에 대한 특별수익액, 다른 공동상속인의 숫자와 배우자의 법정상속분 등 일체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해서 배우자의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가려서 기여분 인정 여부와 그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법리를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 1억 원의 재산이 있는 남자가 동거하면서 노년기 5년 동안 거의 매일 병원에 같이 다니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등 수발을 드는 아내가 너무 고마워서 5000만 원을 생전에 증여했다. 남자가 사망한 후 아내는 남은 5000만 원을 자녀들과 나눠야 한다.

상속인들 사이에서 협의가 이뤄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법원에 상속재산분할심판을 청구하게 되면 아내가 받은 5000만 원까지 포함한 1억 원을 상속인들이 나누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법원이 아내가 생전에 증여받은 5000만 원 상당(또는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일정한 금액)을 아내의 기여분으로 인정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는 이미 5000만 원을 상속재산에서 받았기 때문에 남은 상속재산에서는 전혀 상속받을 수 없고, 만약 자녀들이 많고 그 자녀들이 유류분반환청구를 하면 반환해야 할 수도 있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기여분을 부양의 정도를 넘은 특별한 부양으로 엄격하게 인정하면서 기여분 청구인이 받은 생전 증여나 유증을 특별수익에 포함하는 것은 오히려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피상속인이 다른 상속인들보다 재산 형성이나 부양에 기여한 바 없어도 특히 애정하는 마음으로 증여한 것과 열심히 간호하고 문병 오고 말벗이 돼 준 상속인에게 일부를 더 준 것을 과연 같은 평면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문제가 된 앞의 사례에서는 지금의 처와 그 자녀들만 망인으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증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 병원비 등 치료비는 망인의 재산에서 지출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기여분 청구를 한 상속인이 병원비 등을 지출했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병원비를 부담한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간호에 참여하지 않았어도 기여분을 인정받고, 병원비를 부담하지는 않았지만 시간과 노동을 투여한 상속인은 기여분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이 공평한가.

기대여명의 증가로 배우자가 노년기에 투병하는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하는 경우 동거와 간호의 무형적인 기여를 민법상 기여분으로 인정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년의 돌봄을 가족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가 맡아 주기를 기대하는 요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이 많은 부분을 부담하고 있는 현 사회에서는 실질적으로 돌봄을 행하고 있는 상속인에게 그 기여를 인정하는 것은 타당하고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와 같은 경우에도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해 배우자의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돼야 기여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한편 배우자의 상속분을 강화하기 위해 ‘상속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아직 우리 민법은 자녀들의 상속분과 배우자의 상속분을 연동하고 있다. 자녀들보다 50% 더 많이 상속받는다고 하지만 앞의 사례처럼 자녀들이 11명인 경우 배우자의 상속분은 3/25(=12%)에 불과하다(자녀들은 1인당 2/25, 8%).

그리고 기여분 청구는 기각됐고, 생전에 받은 재산이 모두 특별수익으로 인정됐기 때문에 상속재산과 이미 생전에 받은 재산을 합해 12%를 상속받게 된 것이다. 공동상속인들이 모두 실질적으로 공평하기 위해 생전에 받은 증여재산도 그 시기를 불문하고 특별수익으로 인정하는데 다시 그 특별수익이 있다고 해 기여분 청구를 기각하는 것이 과연 실질적인 공평인가 의문이다.

2005년 민법 개정의 취지가 무엇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법 개정의 취지가 명확하지 않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홀로 남는 배우자의 상속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면, 배우자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상당한 기간 동거하면서 간호하는 행위는 배우자로서 1차 부양의무자라는 것과 별개로 다른 공동상속인들과의 관계에서는 특별한 부양에 해당해 민법상 기여분이 인정돼야 할 것이다.

배우자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부부가 함께 형성한 부부 공동재산의 청산과 상속분의 배분적 측면에서 배우자와 자녀의 공평을 실현할 수 있고, 노인 돌봄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에 비추어 타당한 해석이고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형평에 부합한다는 반대 의견이 타당하다. 따라서 민법상 기여분 규정을 위와 같이 해석할 수 없다면 이와 같은 취지를 담아 명확하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7호(2020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