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 스타일의 피아트 500 스피아기나 전기차.
뉴트로 스타일의 피아트 500 스피아기나 전기차.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최근 독일, 미국,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감축 규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인 10만 명 수준에 육박한다. 전기자동차 수요가 늘면서 내연기관차의 생산과 판매가 꾸준히 감소하는 데 따른 선제적 대응이다.

독일 중북부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는 전 세계에서 자동차로 가장 유명한 도시다. 이곳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폭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이 있다. 전체 면적은 6.5㎢로 모나코공국과 비슷하다. 직원 수만 하더라도 5만5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하루 3개 조로 나뉘어 24시간 근무한다.

이 공장에선 하루 3500대의 각종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39년 지어진 이 공장은 현재 폭스바겐의 본사이자 해외 생산 거점의 컨트롤타워인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공장은 자동차 이외에도 폭스바겐의 다른 해외 시설에 공급하는 각종 부품들도 생산하고 있다.

공장에는 테마파크인 아우토슈타트가 있다. 아우토슈타트에는 자동차에 관한 모든 것이 있다.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 자동차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 자동차를 고객이 인도받을 수 있는 출고장, 현재 판매되는 차량들의 쇼룸 등이 있다. 2000년 문을 연 아우토슈타트를 찾는 관광객들은 평일에 5500여 명, 주말에는 1만5000여 명이나 된다.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생산된 각종 자동차들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 것은 비틀(Beetle)이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미국 포드처럼 전 국민이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야심 아래 오스트리아 기술자 페르디난트 포르셰(1875∼1951년)를 불러 만든 것이 비틀이다. 포르셰는 딱정벌레 모양인 비틀의 독특한 디자인을 고안했다.

폭스바겐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본격적으로 비틀을 생산했다. 비틀은 전후 독일 경제 부흥의 상징이 됐다. 폭스바겐은 1978년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비틀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해외 공장에서 만들어졌던 비틀은 지난해 7월 10일 멕시코 푸에블라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되면서 단종됐다.

비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글로벌 기업들을 다수 보유한 전통의 자동차 강국인 독일의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은 2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에서 생산된 자동차 수가 2018년보다 9% 감소한 470만 대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는 1997년 이후 22년 만에 가장 낮은 연간 생산량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 세계에서 생산된 자동차 가운데 독일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독일이 1998년 전 세계 자동차 생산의 12%를 차지한 것과 비교할 때 절반 수준이다.

독일의 자동차 생산량이 감소한 이유는 수출 부진이다. 독일의 자동차 수출은 2019년 350만 대로 전년과 비교해 13% 급감했다. 이처럼 수출이 줄어든 것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여파에 따른 수요 감소와 유럽연합(EU)의 배기가스 기준 강화 때문이다.

EU는 2021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를 기존 km당 130g에서 95g으로 27%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일단 올해 유럽에서 출고되는 신차의 95%를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에 맞춰야 하고, 내년엔 100% 따라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기준을 1g 초과할 때마다 95유로(12만3000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에 따라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생산을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독일의 자동차 생산량은 올해 더욱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더욱 주목할 점은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종업원 수만 명을 감원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제작 과정이 훨씬 단순해 현재 수준의 인력 규모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부품이 30%가량 적고 조립 인력 역시 더 적게 들어간다. 이 때문에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인력 감축을 통해 아낀 비용을 기술과 서비스 개발에 투자해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독일 최대 자동차업체인 폭스바겐은 2023년까지 7000~8000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의 고급차 브랜드 아우디도 2025년까지 생산직 종업원 9500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이는 현재 아우디에서 일하고 있는 전체 직원 가운데 10%가 넘는 규모다. 아우디는 감원과 조직 개편으로 2029년까지 60억 유로(78조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 자금은 향후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 기술 개발에 투입될 예정이다.

아우디는 또 독일의 핵심 공장 2곳을 내연기관차 생산 공장에서 전기차 생산 공장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브람 쇼트 아우디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구조조정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독일 공장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자동차 시장의 격변기에서 우리는 더욱 효율적이고 민첩하게 바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도 전기차를 포함한 미래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까지 인력 감축을 통해 연간 14억 유로를 절감할 계획이다. 올라 칼레니우스 다임러 회장은 “자동차업계의 감원 폭풍은 친환경차로 이동하는 데 따른 구조적 문제”라며 “2025년 또는 그 이후까지도 전기차 투자에 따른 재무적 압박이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BMW도 2022년까지 독일에서만 최대 60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자동차 생산국이다. 자동차 산업이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14%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자동차 산업 종사자는 83만 명으로 한국보다 1.3배나 많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CLS클래스 공장 생산라인.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CLS클래스 공장 생산라인.

◆글로벌 자동차업체, 구조조정 이유는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자동차업체들도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감축 규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인 10만 명 수준에 육박한다. 미국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의 3곳을 포함해 전 세계 총 7곳의 공장을 폐쇄하고 1만4000명의 인력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GM은 이런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6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포드자동차도 올해 말까지 유럽 공장의 종업원 1만2000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포드자동차는 또 전 세계 공장에서 종업원 7000명을 줄일 예정이다. 포드자동차는 이 같은 구조조정을 통해 110억 달러를 마련할 계획이다. 일본의 닛산자동차도 2022년까지 글로벌 생산능력을 10% 줄이고, 1만2500명 규모의 감원도 실시할 계획이다. 혼다자동차도 2021년까지 영국의 공장을 폐쇄하고 3500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 위기에 몰린 뒤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가까스로 회생했던 경험에서 얻은 학습효과에서 비롯됐다. 미셸 크렙스 콕스 오토모티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당시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면서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신기술 투자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속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판매는 전기차 등에 대한 수요 등으로 줄어들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2009년 이후 줄곧 늘다가 2018년 중반을 고비로 하락세로 돌아선 이후 2년 연속 내리막을 걷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2017년 8180만 대를 정점으로 2018년 8060만 대, 2019년 7750만 대 등을 기록했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인 피치에 따르면 이 같은 판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의 내수 부진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1~11월 중 평균 11%나 급감하면서 전 세계 판매량을 끌어내렸다. 지난해 중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600만 대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차 수요가 늘면서 내연기관차의 생산과 판매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024년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이 같아지는 시점이 찾아오고, 이후 내연기관차의 수요는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의 경제 전문 방송 채널인 CNBC는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전체적인 자동차 산업의 파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함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미래에 대비해 구조조정 등으로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CNBC는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구조조정은 2020년대에도 지속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구조조정과 함께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미국·이탈리아계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그룹이 지난해 12월 18일 합병에 합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FCA와 PSA의 합병으로 폭스바겐그룹,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 도요타에 이어 연간 870만 대를 생산하는 세계 4위의 자동차업체가 탄생했다.

두 회사에 따르면 합병 회사의 연간 영업이익은 110억 유로에 달할 전망이다. 양사는 “매년 37억 유로를 절감해 지속 가능한 자동차 기술에 투자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합병은 2009년 피아트그룹이 미국 완성차 3위 업체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이후 10년 만에 이뤄진 대형 인수·합병(M&A)이다.

FCA는 피아트, 알파로메오, 마세라티 등을 거느린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업체다. FCA는 크라이슬러와 함께 지프, 닷지 등의 브랜드도 있다. 푸조, 시트로엥, 오펠, 복스홀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PSA는 2014년 경영 위기 당시 프랑스 정부와 중국 둥펑기차(東風汽車)로부터 각각 13%씩의 지분을 투자 받았다.

두 회사는 주주와 규제당국 승인을 거쳐 12~15개월 이내에 합병 작업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합병 기업의 이사회 의장과 CEO는 피아트의 창립자인 잔니 아넬리의 손자이자 현재 FCA 회장인 존 엘칸과 PSA의 카를로스 타바레스가 각각 맡으며 양 그룹이 이사회를 분점하기로 했다. 이번 합병으로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대변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두 회사는 이번 합병을 통해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 시장을 위한 기술 개발과 양산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어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두 회사는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4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합병에는 미래 모빌리티 변화에 대한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위기감이 깔려 있다.

이번 합병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연합이 아니라 기술 개발을 위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됐다는 의미가 있다. 단순 양적 성장을 위해서라면 자신보다 규모가 작은 브랜드와 기업들을 여럿 인수하면 되는데, 대등한 조건으로 합병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 있는 서로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과는 달리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대규모 감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노조가 전기차 전환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선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고 조만간 폭풍처럼 국내에도 들이닥칠 것이 분명하다. 생존하려면 변화만이 살 길인 셈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7호(2020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