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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불안과 마주하는 방법은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공황, 공포, 불면 등의 스트레스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과도한 불안감이 주된 원인이다. ‘불안’이란 녀석은 나쁜 것인가.


마음 불안한 일들이 끊임이 없다. 이전보다 더 불안해진 세상을 사는 듯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거가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평화로웠다고 보기 어렵다. 안전에 대한 기대가 커져서 지금이 더 불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100년 전쯤 유행한 스페인독감으로 삶을 마감한 인구가 250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가 1700만 명으로 추정되니 당시는 정말 전 세계가 극도의 패닉 상황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불안이 몸까지 퍼져 심장이 멈출 것 같고 호흡 곤란이 오면서 곧 죽을 것 같은 느낌마저 찾아오는 불안이 공황이다. 요즘 비행 공포를 호소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공포 증상이 너무 심해 이륙 후 회항하는 경우까지도 발생한다. 특정 상황에 노출될 때 치솟는 불안이 공포다.


사람이 잠을 잔다는 것은 밤에 자려는 힘이 각성하려는 힘보다 커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낮에 생긴 걱정이 밤까지 이어지면 불안이 뇌를 각성시켜 아무리 자려고 노력해도 꺼지지 않는다. 낮에 있던 걱정거리가 사라졌는데도 ‘오늘도 못 자면 어떡하지’ 하는 불면에 대한 걱정 자체가 불안이 돼 만성 불면을 일으키기도 한다.


불안이란 녀석은 나쁜 것인가. 꼭 그렇진 않다. 과도한 불안이 문제인 것이지 불안은 생존에 있어 중요한 감정에너지다. 적정 수준의 불안은 위기를 관리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고, 삶의 성취를 이루게 한다. 그러나 불안이 적정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삶이 불편해지고 인지 기능에도 악영향을 미쳐 일의 성과도 떨어트린다.


시험 불안이 적당히 있는 학생이 성적이 좋은 것으로 연구로 드러났다. 그러나 시험 불안이 지나치면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고도 시험 당일 불안이 인지 기능을 떨어뜨려 평소보다 못한 성적을 내는 안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불안이 큰 마음엔 현재의 행복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불안은 미래만 쳐다보게 한다. 예를 들어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건강 염려가 심하게 찾아오면 마음이 모두 미래에 가 버려 막상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현재가 쪼그라들어 버린다. 행복한 오늘이 모여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인데 오늘이 아닌 불안한 미래에 마음이 주로 가 있게 되면 삶이 피곤하고 허무하게만 느껴지기 쉽다.


‘포기’도 수용하라


승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포기하는 사람은 절대 승자가 될 수 없다’란 말이 익숙하다. 하려는 일을 그만두어 버림이라는 뜻의 포기, 삶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선 마음에서 떨쳐버려야 할 적이라 들었기에 포기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안, 우울과 같은 마음의 증상으로 고통 받다가 밝은 마음을 찾은 사람들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물으면 환하게 웃으며 “포기했어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포기가 좌절을 가져와야 하는데 오히려 마음에 평안함과 얼굴에 웃음을 가져오는 상황이다.


‘포기는 없다’는 도전 정신으로 지금의 성공을 일궜다는 한 변호사가 최근 후배와 대화를 할 때 짜증을 많이 내는 것이 고민이라 한다. 소통이 나빠지니 일의 결과물도 좋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잠도 오지 않는 상황이라 호소한다.


‘포기는 없다’는 마음의 틀은 분명 성공에 도움을 주지만 마음의 에너지를 쥐어짜게 해서 마음을 쉽게 지치게도 한다. 마음이 지치면 공감에너지가 고갈되면서 까칠한 언행이 나오기 쉽고 불안감도 치솟게 된다. 그 사람에게 “젊었을 때 하고픈 취미 없으셨어요”라 묻자 엉뚱하다는 표정으로 조금 당황하시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답한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 보라고 권했다.


몇 달 후 다시 만났는데 얼굴 표정이 환하다. 억지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감이 찾아와 이걸 왜 이제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후배와의 소통도 좋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에 희한한 변화가 생겼는데 ‘성공이 무얼 그렇게 중요한가. 내가 가진 지식으로 도움을 주며 적당히 벌고 오늘 하루하루 소중한 삶을 즐겨야지’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전보다 적게 버느냐”고 질문했더니 “더 번다”고 한다. 소탈한 감성의 위력이다.


전에는 포기는 없고 꼭 성공해야 한다는 완벽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음을 들들 볶았다면 그림 그리기로 마음을 위로해 주니 기존 마음의 틀이 자연스럽게 포기되고 삶의 기대치가 낮아지며 소탈한 마음이 주는 긍정성과 공감 감성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 긍정성과 공감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마음을 비우니 행복과 보너스로 성공도 찾아온 셈이다.


삶을 포기하고 대충 사는 것이 행복감을 증진시킬 수는 없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포기를 수용(acceptance)이라 한다. 실제 상담에선 수용이란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 오해하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불안으로 밀어 붙이는 내 삶의 스타일을 가끔씩은 내려놓으라는 의미의 수용인데, 반대로 지금의 고통마저 더 이해하고 더 세게 나를 밀어 붙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서다.


과거에 대한 지나친 후회가 우울이고 미래에 대한 과도한 걱정이 불안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생각들 때문에 현재가 쪼그라들면 삶이 불편해지고 행복감이 현저히 줄어든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현재다. 현재의 의미 있는 오늘이 모여 가치 있는 내 인생이 되는 것이다. 불안한 미래의 걱정 때문에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내 인생의 소중한 하루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루에 한 가지라도 내 마음이 원하는 걸 생각해 보고 즐기기를 권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