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發 ‘제2의 대공황’ 막을까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세계 경제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이에 미국을 위시한 세계 각국이 기업 줄도산과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사상 최대의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제2의 대공황’ 우려까지 촉발시키고 있다.

‘추락 천사(fallen angel)’는 회사채 신용등급이 투자적격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회사를 말한다. 한때 신뢰받았던 기업들이 도산을 걱정해야 할 수준으로 망가졌다는 의미다. 추락 천사는 미국 언론들이 2005년 5월 잘나가던 대표적인 자동차 제조사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의 신용등급이 투기 수준으로 떨어지자 사용한 표현이다. 천사로 칭송받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땅으로 추락해 버렸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에서 주요 기업들이 줄줄이 추락 천사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추락 천사들이 발행한 회사채는 말 그대로 정크본드가 됐다. 정크(junk)란 ‘쓰레기’를 뜻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사상 처음으로 추락 천사들의 정크본드 매입에 나섰다. 연준은 투자적격등급이었다가 지난 3월 22일 이후 투기등급으로 강등된 추락 천사들의 회사채들을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 전문 방송인 CNBC는 “연준이 정크본드까지 매입하면서 엄청난 바주카포를 쐈다”고 분석했다.

연준은 지난 4월 9일 기업과 가계, 지방정부에 최대 2조3000억 달러(약 2435조 원)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제2차 양적완화(QE) 조치를 내렸다. 그 내용을 보면 중소기업에 6000억 달러를 지원한다. 이에 따라 직원 1만 명 이하, 매출액 25억 달러 이하인 기업은 최대 4년 만기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 중소기업 직원의 급여를 뒷받침하기 위한 급여보호 프로그램도 함께 가동된다. 급여보호 프로그램은 직원 급여용으로 기업체에 자금을 대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500인 이하의 중소기업은 인건비, 임차료 등 두 달 치 필수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연준은 이와 함께 회사채와 개인소비자 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8500억 달러를 공급한다. 회사채의 경우 연준은 프라이머리 마켓 기업신용기구(PMCCF)와 세컨더리 마켓 기업신용기구(SMCCF)를 설립해 최대 7500억 달러까지 회사채를 사들인다. 개인소비자 금융의 경우 연준은 자산담보부증권대출기구(TALF)를 설립해 오토론, 학자금대출 등을 자산으로 발행된 자산유동화증권(ABS)뿐만 아니라 상업용 주택저당증권(CMBS)과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까지 매입하기로 했다.

연준은 또 코로나19 사태 대응 과정에서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정부들을 돕기 위해 5000억 달러 규모의 지방채도 사들이기로 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이번 조치는 주정부, 지방정부의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모든 규모의 기업체와 가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라며 “궁극적으로 경제 회복이 최대한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보장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연준이 회사채를 매입하면서 정크본드까지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금까지 연준은 손실이 날 수 있는 투기등급 채권인 정크본드 매입을 극히 꺼려 왔다. 회사채 매입이라는 초강수를 연준에 권했던 벤 버냉키와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들도 투자등급만 살 것을 권고하면서 선을 그었을 정도다. 그런데도 연준이 그동안의 금기까지 깨면서 정크본드 매입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되면서 앞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갈수록 하향 조정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이 -24%를 기록할 것이라면서 전체 경제성장률은 –3%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JP모건은 미국의 2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5%에서 –40%로 내렸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3%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도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각각 –1.3%와 –2%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크본드 매입 나선 美 연준의 속사정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기업들은 매출 폭락과 현금 부족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매출 폭락→현금 고갈→부채 증가 및 신용등급 하락→유동성 위기’의 악순환에 빠지고 있으며, 자칫하면 줄도산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가 미국 소비재 산업의 부도 가능성을 분석한 결과 백화점의 1년 내 파산 가능성이 42.1%로 1위였다. 호텔 및 크루즈(37.0%)와 여가시설(34.3%), 카지노(31.2%)도 확률이 높았다. 특히 미국 자동차업계는 사실상 동면 상태에 빠져 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미국의 자동차 공장들은 모두 가동을 멈춘 상태다. 게다가 자동차업체들이 7년간 무이자 할부와 6개월간 대금 납부 연기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도 고객들이 전혀 차를 구매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4월 자동차 생산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적은 수를 기록할 것이며, 2분기 신차 판매는 전년보다 5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존 머피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자택 대피령으로 4~5월에 신차를 사려는 고객이 없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지속되는지에 따라 자동차 생산이 좌우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업체들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S&P는 지난 3월 25일 포드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BB+’로 낮췄다. 투자등급 하단에서 투기등급으로 강등한 것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설립한 포드는 한때 세계를 호령한 대표적인 미국 자동차 제조기업이다. 포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추락 천사로 꼽힌다. 자동차업체들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기업들도 줄줄이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있다.

케첩 등으로 유명한 세계 최대 규모의 포장식품회사 크래프트 하인즈, 미국 최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옥시덴탈 페트롤리움, 미국 주요 항공사인 델타항공, 미국 주요 백화점인 메이시스 등 굴지의 기업들이 줄줄이 추락 천사가 되고 있다. S&P가 코로나19 사태로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기업 수는 280개에 달한다. 무디스도 180여 개 회사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JP모건 등 주요 투자은행(IB)은 미국 회사채 시장에서 2000억 달러 이상의 회사채가 투기등급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투자등급 회사채가 투기등급이 되면 대규모 투매가 벌어진다.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내규 등에 따라 투기등급 회사채에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3개월 동안 발행된 투자등급 회사채 규모는 887억 달러인데,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는 4337억 달러로 4.8배에 달했다. 연준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정크본드를 매입하지 않으면 기업들의 도미노 파산과 그에 따른 실업 대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준이 금기를 깨고 정크본드를 매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發 ‘제2의 대공황’ 막을까

◆대공황 때보다 심각한 실업 대란 우려도

미국에선 이미 실업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4월 첫째 주(3월 29일~4월 4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660만6000건을 기록했다. 지난 3월 셋째 주 330만 명, 넷째 주 687만 명에 이어 지난 3주간 모두 168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가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일자리가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실업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가 감소하고, 각 주정부의 방침에 따라 기업들의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는 등 대규모 폐쇄 조치를 취함으로써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생존을 위해 직원들에 대해 대규모 일시 해고와 무급휴직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전체 국민의 95%가 외출을 금지하는 자택대피령으로 집에 머물면서 실물경제가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전문가들은 4월 말까지 2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 실업률이 15%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콘스탄스 헌터 KPM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4월 말에 실업자가 2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선 대공황(great depression) 때보다 더 심각한 실업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실업률이 32.1%까지 치솟을 것이며, 4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공황은 1929년 미국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돼 1933년까지 각국으로 파급된 세계적인 경제 불황을 말한다. 각국은 대공황 때 생산의 대폭 감소, 교역 축소 등으로 기업이 줄도산하면서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등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대공황의 엄혹함을 잘 나타내는 통계는 실업률이다. 미국의 경우 실업률은 1929년 3% 수준이었으나 1933년에는 25%를 기록했다. 당시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면서 각국 경제도 동반 추락했다. 영국과 독일의 실업률이 각각 22.1%와 29.9%를 기록하는 등 유럽 각국에서도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대공황 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유럽 각국도 최악의 실업 대란을 겪고 있다. 스페인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는 지난 3월 80만 건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보였다. 영국의 3월 말과 4월 초의 2주간 통합수당(실업자 및 급여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사람에게 주는 수당) 신청자는 95만 명으로 이전 평균치보다 10배 많았다. 프랑스에도 같은 기간 400만 명이 실업수당을 신청했다. 오스트리아의 지난 3월 실업률은 12%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치였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에서도 최대 200만 명이 실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우리는 미국과 유럽 내 실업률이 10%대로 진입하는 것을 보고 있다”면서 “대공황 이후 전례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에 유럽연합(EU)도 4월 9일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회원국들과 기업 및 노동자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규모는 5000억 유로(약 665조 원)에 달한다. 파올로 젠틸로니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EU가 실업 기금과 기업 유동성 등을 지원하기 위해 유례없는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EU가 공동 대책에 나선 것은 일부 회원국들의 위기가 EU의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런 경기 부양 조치들이 부족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언제 수그러들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세계 무역량이 전년 대비 32% 감소하며 대공황 이후 최악의 하강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적 결과를 보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아무튼 코로나19 사태로 지구촌이 자칫하면 ‘제2의 대공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