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ance 제 180호 (2020년 05월)

유류분에 발목 잡힌 유언대용신탁

기사입력 2020.04.23 오후 04:43

[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효과적인 상속의 수단으로 유언대용신탁의 출범했지만 유류분의 발목에 잡히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실정이다. 두 제도가 충돌하는 부분은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유류분에 발목 잡힌 유언대용신탁

2012년 ‘신탁법’ 개정으로 유언대용신탁이 도입되면서 상속제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유언대용신탁의 대표적인 사례로 위탁자가 생전에 수탁자와 신탁계약을 체결해 신탁재산을 이전하되, 위탁자 사망 시에 자녀나 배우자 등을 수익자로 지정해 사망 이후의 재산 분배를 정하는 것을 듭니다. 이렇듯 위탁자가 생전에 상속재산을 누구에게 귀속하는지 정할 수 있는데 상속재산의 자유로운 처분을 제약하는 유류분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활용되는 빈도가 예상만큼 높지는 않았죠.

‘신탁법’에 유류분제도의 적용이 배제된다는 규정도 없고, 대다수의 학설 역시 피상속인이 상속재산의 분재를 유언이 아닌 신탁으로 이용한 경우에도 상속인의 유류분권은 인정돼야 하면서도 문제되는 논점에서 의견이 다양하게 제기됐기에 그러했습니다.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의 관계에 관한 논의에서 대표적으로 문제된 것은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것이 신탁재산인지, 수익권인지 ▲유류분 반환의 대상은 신탁재산과 수익권 중 무엇인지 ▲유류분 반환의 대상자는 수탁자와 수익자 중 누구인지 ▲유류분 반환이 이루어진다면 신탁의 효력은 계속 유지되는 것인지 등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 쟁점 중에서 이 글에서는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신탁재산이 포함되는지 또는 수익권이 포함되는지의 문제만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유언대용신탁의 신탁재산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해당하지 않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견해는 유언대용신탁의 신탁재산이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고 증여재산으로 볼 수도 없으므로 유류분 산정 시 기초재산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신탁 등기를 마치면 그때부터 그 재산은 수탁자의 재산이므로 위탁자의 사망 시 위탁자의 재산이 아니고, ▲민법 제1113조가 정하는 증여재산은 상속 개시 전에 이미 증여계약이 이행돼 소유권이 수증자에게 이전돼야 하는데 유언대용신탁의 사후수익자에게 이전된 재산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신탁법’에 유언대용신탁을 규정한 취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이지만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수익자가 궁극적으로 이익을 얻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견해는 유언대용신탁의 계약 대상인 신탁재산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다만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것이 신탁재산인지, 수익권인지, 신탁재산 또는 수익권을 상속재산으로 보는 견해와 증여재산으로 보는 견해, 이렇게 4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우선 신탁재산이 상속재산에 포함된다는 견해는 유언대용신탁에서 신탁재산은 상속 개시 당시 위탁자인 피상속인이 가진 재산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신탁재산이 위탁자로부터 수탁자에게 이전됐지만 위탁자가 자유롭게 수익자를 변경할 수 있고, 유언대용신탁을 종료시키고 위탁자 명의로 신탁재산을 복귀할 수도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여전히 신탁재산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주체는 위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으로서 유류분 산정 시 기초재산이 된다는 견해입니다.

둘째, 신탁재산은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이지만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고 증여재산에 포함된다는 견해입니다. 신탁계약으로 신탁재산은 이미 수탁자에게 이전돼 피상속인인 위탁자의 고유재산과 구분되므로 위탁자의 상속 개시 당시 가지는 재산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수탁자에게 무상으로 이전된 것이므로 위탁자가 상속 개시 전 1년 동안 신탁을 설정했거나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걸 알면서도 신탁계약으로 이전된 신탁재산은 증여재산으로서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이라고 합니다.

셋째, 신탁재산이 아니라 수익권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이 되고 상속재산에 포함된다는 견해입니다. 역시 신탁계약으로 신탁재산이 수탁자에게 이전돼 위탁자의 재산이라고 평가할 수 없어 신탁재산은 위탁자인 피상속인이 상속 개시 당시 가지고 있던 상속재산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위탁자는 유언대용신탁으로 수익자에게 수익권을 유증하거나 사인증여 한 것이므로 수익권의 가액이 상속재산에 포함된다고 합니다.

넷째, 앞서 셋째 견해처럼 신탁재산은 위탁자인 피상속인이 상속 개시 당시 가지고 있던 재산에 포함되지 않지만 수익자가 수익권을 증여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증여재산으로서 이를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 산입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비록 하급심 판결이지만 유언대용신탁의 계약 대상이 된 재산(신탁재산)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이 되지 않는다는 판결(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20. 1. 10. 선고 2017가합408489 사건)이 선고되면서 많은 반향이 있었습니다.

유류분 상환의 쟁점
우선 이 판결의 사실관계는 이렇습니다. 망인(위탁자)은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사망하기 3년 전에 은행(수탁자)과 소유하던 부동산과 금전 3억 원의 신탁계약을 체결해 생전에는 신탁재산에서 나오는 수익은 본인이 취득하고, 사후에는 3명의 자녀 중 둘째 자녀(사후수익자, 이하 피고라고만 합니다)가 취득하도록 정했습니다. 이런 내용의 유언대용신탁 계약이 체결된 뒤 수탁자인 은행은 이 부동산에 관해 신탁계약을 원인으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고, 망인이 사망하자 피고가 신탁재산의 귀속을 원인으로 이 부동산에 관해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고는 신탁계좌에서 3억 원도 출금했습니다. 그러자 첫째 자녀의 상속인들(첫째 자녀는 망인보다 먼저 사망해 그 상속인들이 대습상속을 했고, 이하 원고라고 합니다)이 피고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유류분의 반환을 구하는 재판에서는 망인의 상속재산과 망인이 생전에 증여한 재산을 특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이런 점이 중요 쟁점이었고, 신탁계약에 따라 망인 사망 후에 피고에게 귀속된 부동산과 예금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인지 여부도 또 하나의 쟁점이었습니다.

유언대용신탁 제대로 활용하려면
원고는 신탁재산도 피고에게 증여된 재산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의 범위에 관한 민법 제1113조 제1항에서의 ‘증여재산’이란 상속 개시 전에 이미 증여계약이 이행돼 소유권이 수증자에게 이전된 재산을 가리키는 것이고, 아직 증여계약이 이행되지 않아 소유권이 피상속인에게 남아 있는 상태로 상속이 개시된 재산은 당연히 ‘피상속인의 상속 개시 시에 있어서 가진 재산’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수증자가 공동상속인이든 제3자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을 구성한다(대법원 1996. 8. 20. 선고 96다13682 판결)고 전제한 후,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신탁재산인 부동산과 예금이 망인의 사후에 비로소 피고의 소유로 귀속됐으므로 망인이 피고에게 이 사건 신탁재산을 생전증여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망인의 사망 당시 신탁재산은 수탁자인 은행에 이전돼 그 소유권이 은행에 있었으므로 이 신탁재산이 망인의 상속재산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망인이 수탁자부터 어떤 대가를 받지 않고 신탁재산을 수탁자에 이전한 것은 성질상 무상이전이므로 민법 제1114조에 해당하거나 상속인을 수탁자로 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118조, 제1008조에 따라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증여재산에 포함될 수 있는데, 우선 신탁계약의 수탁자는 상속인이 아니라 제3자로 할 수 있는 은행이고, 신탁계약 및 그에 따른 소유권의 이전은 상속이 개시되기 1년 이전에 이루어졌으며, 수탁자가 신탁계약으로 인해 유류분 부족액이 발생하리라는 점을 알았다고 볼 증거가 없으므로 이 신탁재산은 민법 제1114조에 의해 산입될 증여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판결의 판시는 앞의 4개 견해 중 둘째 견해를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견해는 유언대용신탁에 따른 신탁재산의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이전된다는 ‘신탁법’의 법리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견해가 수탁자에게 이전된 것을 무상계약으로서 실질적으로 증여라고 새기고 있는데 신탁계약을 통한 신탁재산의 이전은 무상처분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수탁자는 신탁의 이익을 누릴 수 없고, 신탁이 종료되면 신탁재산의 소유권을 상실하는데 이와 같은 ‘신탁법’의 법리에 비추어 보면 수탁자가 신탁재산을 무상으로 취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유언대용신탁 계약으로 진정한 이익을 얻는 주체가 수익자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하고 위탁자인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수익자는 무상으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합니다. 이러한 실질을 근거로 하면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은 수익권이라는 견해를 지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신탁의 법리에 따라 신탁재산의 소유권이 위탁자에서 수탁자로 이전된다는 점이 실질보다 중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법률이 만들어지면 그대로 집행돼야 수범자인 국민에게 혼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신탁계약에 따라 소유권이 이전될 수 있도록 법률이 규정하고 있으면 신탁재산은 대내외적으로 수탁자의 소유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판결은 이런 전제에 서 있으면서 수탁자가 신탁재산을 취득한 것을 증여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해 유류분제도와 절충점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유언대용신탁이라는 제도를 활용하면 상속인들이 유류분 분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유류분제도가 모든 법체계를 아울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언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로서 그 범위는 축소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제도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익지 않은 단계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가 했다는 말에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전문가란 매우 협소한 분야에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질러 본 사람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분쟁과 갈등이 감소될 해법이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유언대용신탁을 포함해 유류분제도의 분쟁거리가 하루빨리 현명한 법률 개정으로 통합돼 많은 유류분 분쟁이 해소되길 기대합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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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4-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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