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자전거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움직인다. 누구의 도움도, 연료도 필요 없이 혼자 이동할 수 있는 빠르고 안전한 교통수단이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심슨 체인', 1896년,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갤러리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심슨 체인', 1896년,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갤러리
자전거회사의 광고 포스터
물랭 루주의 화가로 불리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년)는 회화뿐 아니라 포스터 디자인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의 포스터들은 대담한 구성이 돋보이는 뛰어난 예술작품이자 당시의 문화생활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유흥가를 그린 것이 대부분이지만, 성격이 좀 다른 포스터로 <심슨 체인>이라는 그림이 있다. 영국의 자전거회사인 심슨사를 광고하는 포스터다.


심슨사는 1895년 ‘심슨 레버 체인’을 발명해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자전거 선수들을 데려와 팀을 만들고 경주대회를 열었다. 대회는 관중이 1만 명을 훨씬 넘길 만큼 성공적이었다. 이즈음 자전거 경기의 열혈 팬이었던 로트레크는 심슨사의 파리지점장을 만나게 된다. 지점장의 주문으로 영국을 방문하고 선수들을 만난 다음 <심슨 체인>을 그렸다.


로트레크의 그림에는 세 사람이 일렬로 자전거를 타고 있다. 모두 비슷한 청색 반바지 차림인데, 드러난 다리의 근육을 보면 숙련된 선수들이다. 그들 뒤로 노란색 필드가 보이고, 그 너머 왼쪽 위에도 자전거 탄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자전거 트랙 경주에서 3명의 선두 그룹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주인공은 세 번째로 달리고 있는데, 트랙 경기 세계 챔피언인 콩스탕 위레의 모습이다. 그는 몸을 낮추고 엉덩이를 들어 힘차게 속도를 내고 있다. 등을 힘껏 굽혀 옷 사이로 맨살이 드러나고 허리춤에서 손수건이 나부낀다. 우승자의 남다른 질주와 경기의 긴장감이 엿보인다.


경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속도다. 로트레크는 어떻게 하면 주목성을 높이면서 속도감도 나타낼 수 있을지 고심했다. 그 흔적이 맨 앞에 가는 선수의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얼굴이 화면 가장자리에 잘려 보이지 않는다. 너무 빨라서 화가가 미처 포착할 새도 없이 화면을 벗어나 버린 것 같다. 그의 자전거는 바퀴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바짝 따르는 두 번째 선수도 자전거 바퀴가 하나밖에 없다. 형태를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구성을 단순화하고 시각적 속도감을 높이고 있다. 화면에는 세 사람의 자세가 조금씩 다르게 반복되며 3개의 자전거 바퀴와 리드미컬하게 어울린다. 바퀴들은 둥근 테두리만 있을 뿐 속도로 인해 바퀴살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체인만큼은 모양이 뚜렷하다. 주문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주자는 여성이다. 립스틱을 바른 입술과 머리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성이 남자들과, 그것도 세계 챔피언과 함께 경주를 하다니! 그녀는 누구일까. 당시 심슨사에서는 리세트 마르통이나 엘렌 뒤트리외 같은 세계적인 여자 선수들도 후원하고 있었다. 1896년 유럽 여성 챔피언으로 여겨지는 마르통은 남자 선수들과도 경기를 벌여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이 해에 근대 올림픽 경기가 처음 열렸는데 여성은 참가할 수 없었다. 그런 시절에 여성이 자전거 경기장의 관중 앞에서 남성과 스피드를 겨룬다는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페데리코 잔도메네기, '자전거 만남', 1896년경, 개인 소장
페데리코 잔도메네기, '자전거 만남', 1896년경, 개인 소장
자전거 타는 여성들
현대식 자전거는 1860년대부터 페달을 단 자전거가 대량 생산되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 후반에는 체인과 공기타이어를 장착한 안전한 자전거가 개발됐다. 자전거가 누구나 탈 수 있는 손쉬운 교통수단이 되면서 대유행을 불러일으켰다.


1890년대에는 자전거 인구가 급증해 ‘자전거 황금시대’로 접어들었다. 무엇보다 자전거는 여성의 사회활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도 남성의 도움 없이 혼자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집을 훌쩍 떠나 호젓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모임을 갖고 야외활동을 할 수도 있었다. 자전거는 여성의 패션도 변화시켰다. 여자들은 불편한 드레스와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19세기 중엽에 밑단을 고무줄로 졸라매는 블루머라는 바지가 고안됐지만, 널리 실용화된 것은 자전거 붐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1896년경 페데리코 잔도메네기(1841~1917년)가 그린 그림에서 블루머 스타일의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자들을 볼 수 있다. 잔도메네기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파리에 건너가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전시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그는 숙달된 파스텔 기법으로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야외에서 만나거나 소풍하는 장면을 그렸다.


<자전거 만남>이라는 그림에서는 자전거에 느긋하게 기대어 서 있는 여성과 자전거로 방금 도착하는 여성이 만나고 있다. 자전거가 시간을 단축해 주니 여유가 생기고 기다림은 짧아진다. 이들은 헐렁한 반바지와 검은 스타킹, 넓은 소매의 블라우스를 착용하고 있다. 옷차림이 비슷한 걸 보면 이런 간편한 복장이 자전거를 즐기는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경쾌하고 건강하며 세련된 멋을 아는 활동적인 여성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사회에서 무난히 수용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바지(블루머)를 입은 여성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남자 같은 복장이 여성 고유의 특성을 흐리게 한다며 망측하게 여겼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 건강에 해롭다고도 하고, 성감을 자극해 순결을 해치고 도덕적으로 좋지 않다고도 했다. 사실 이러한 반응은 여성이 남성적인 세계를 침범하는 것을 꺼리는 보수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여성들은 자전거가 건강을 향상시키고 정신력을 강화하며 자신감을 북돋는다고 주장했다. 자전거를 통해 여성들은 인습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잠재력을 발견했다. 자전거는 자유로운 만남과 연애를 가능케 하고 여자들을 가정에서 사회로 끌어냈다. 여성의 자의식과 독립심이 강해지면서 그동안 미진하던 여성 참정권, 재산권, 노동권 같은 여권 신장 운동이 촉진됐다.


자전거는 근대의 기술과 자본으로 대중적인 교통수단이 됐다. 상업적 성공을 안겨 줬고 스포츠 열기를 불러일으켰으며 여성 해방에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자동차가 발달하면서 자전거의 인기는 급속히 시들었다. 최근에는 다시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써 자전거를 애용하는 현상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전거는 이제 환경과 건강을 위한 기구가 됐다. 자동 기계와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자전거는 스스로 몸을 움직여 천천히 나아가라고 주문한다. 페달 위 작은 움직임이 큰 각성이 됐던 세기말 주체적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