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이승재 기자 l 참고 도서 <할담비, 인생 정말 모르는 거야>]KBS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부른 후 일약 스타덤에 오른 할담비 지병수 씨의 유튜버 도전기. 77세, 지 씨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인터뷰] 유튜버 할담비, 화투 대신 유튜브…‘미쳤어’로 인생 반전


“아~방금 전에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로 코로나19 응원가 녹음하고 왔어요. 유튜브에 곧 올라올 건데 먼저 한번 들어볼래요?” 일흔일곱 살. 희끗한 머리, 노년의 신사가 별안간 손을 비비며 손녀 뻘인 기자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손을 씻어 손을 씻어 깨끗하게 손을 씻어, 씻고 씻고 또 씻어 빠져 빠져 버려 베이비~.” 노래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드는 데도 흥이 터진다. 2019년, 노래 1곡으로 별안간 전국구 스타가 된 ‘할담비(할아버지+손담비)’ 지병수 씨의 인생을 사는 법이다.

[인터뷰] 유튜버 할담비, 화투 대신 유튜브…‘미쳤어’로 인생 반전
(사진_할담비 유튜브 캡처)

지 씨는 지난해 3월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신명나게 부르는 모습이 방송된 후 하루 만에 인생이 180도 뒤집혔다. 방송국이며 신문사, 전국 각지의 행사장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하루 20통이 넘는 섭외 전화를 소화하는 사이 어느새 그를 돕는 매니저도 생기고 10여 편이 넘는 광고까지 찍은 시니어 스타가 됐다.

이제는 유튜브 ‘할담비 지병수(korean grandpa’s crazy k-pop)’를 운영하며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복지관에서 노래 수업을 듣고 자원봉사도 하며 기부를 멈추지 않는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고 산다. 지난 4월 14일 서울 종로구 장난감 거리의 한 가게에서 지 씨를 만났다.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오늘도 인터뷰 끝나고 바로 가야 해요. <전국노래자랑>이 끝나고 12월까지 쉴 새 없이 방송 촬영을 한 것 같아요. 신문, TV, 잡지 등 어림잡아 150개 매체와 만났어요. 지금은 유튜브를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2019년 정말 누구보다 특별한 삶을 살았는데.

“유명한 탤런트들이 많은데 왜 내게 이런 관심이 왔을까. 늘 신기해요. 이렇게 나를 찾는 사람들이 계속될지 몰랐어요. 한 3~4개월 반짝 관심 갖다 말겠지. 주위에서도 다 그랬어요. 일흔여섯에 미쳤다고 ‘미쳤어’를 불러 내 인생이 이렇게 됐나 싶어요. 지금도 나가면 ‘미쳤어 할아버지다’, ‘미쳤어’ 다 그래요(웃음).”

[인터뷰] 유튜버 할담비, 화투 대신 유튜브…‘미쳤어’로 인생 반전

(사진_KBS <전국노래자랑> 캡처)

화제의 <전국노래자랑>이 끝난 후 유튜버 ‘할담비’로 변신하셨습니다.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촬영하고 있을 때였는데 하루는 유튜버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계약하자며 찾아왔어요. 자기네하고만 유튜브를 해야 한다면서 얼마를 주겠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도장을 찍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렇게 도장 찍고 나면 다른 일은 일절 할 수 없고 그 일만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주위에서 말리니까 큰일 났다 싶었어요. 다행히 계약금을 받은 건 아니었고, 그분들도 잘 몰랐던 나를 배려해 줘서 계약을 취소할 수 있었어요. 그 후에 지금의 제작자를 만나 자유롭게 촬영하고 있어요. 유튜브 전문 제작사는 아니지만 내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일하는 터라 괜찮아요.”


유튜브를 보면 콘텐츠가 무궁무진합니다.

“일상을 찍기도 하는데 주된 영상은 춤과 노래예요. 취미가 노래라서 노래를 많이 올려요. 방탄소년단(BTS), 카라, 티아라, 채연의 ‘흔들려’, 박진영의 ‘허니’ 등을 좋아해요. 이번엔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를 개사해서 코로나19 시기에 손을 잘 씻어야 한다는 내용을 올릴 거예요. 조금 늦은 감이 있는데, 1명이라도 이걸 봐서 경각심을 얻으면 좋겠어요. 그 외에 정기적으로 하는 방송이 서울 종로를 알리는 거예요. 골목골목 종로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해요.”

[인터뷰] 유튜버 할담비, 화투 대신 유튜브…‘미쳤어’로 인생 반전

(사진_유튜브 할담비 캡처)

수많은 콘텐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지난해 롯데홈쇼핑과 협업으로 괌에 촬영을 갔어요. 차부터 호텔까지 다 대절해 주셔서 너무 편하게 다녀왔는데, 참 좋았어요. 원주민과 춤을 춘 게 특히 기억에 남아요. 쇼가 끝나고 중간에 무대 위에 즉흥적으로 올랐는데 훌라댄스를 막 추었죠. 다들 환호해 주셔서 신나게 즐기다 왔어요. 뭐, 1등 했네요(웃음).”

70대 유튜버라는 점이 이색적입니다.

“내 나잇대 친구들은 화투 치고 놀기만 하지 이런 건 잘 못해요. 끼가 있어야 하는 거라면서 부러워하기도 해요. 저 노인네가 저 나이에 춤을 추면서 어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다들 그러는데 옛날부터 젊은 친구들의 노래를 좋아했어요. 방탄소년단, 카라, 티아라 등. 다 즐겨 부르던 노래였으니까요. 지금은 저처럼 노래하며 춤추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늘어서 참 보람돼요.”

일상을 공유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할 텐데

“부담스럽고 그렇진 않아요. 제 유튜브 주 시청자가 젊은 친구들이에요. 길에서 만나면 ‘할담비다’, ‘미쳤어다’ 하면서 ‘너무 재미있게 봤다’고 좋아하세요. 어린 친구들이 좋아해 주는 게 참 고맙고 신기하죠. 어디에서나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참 좋아요. ‘전국적으로 웃음을 줬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고요. 아무래도 전철 안에서나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자고 하시면 거절을 하기가 어려워 난감한 적은 있어요. ‘춤 한번만 춰 주세요’ 그러면 또 거절을 못해요. 그런 걸 매일, 몇 번씩 하는 게 쉽지는 않죠.”

[인터뷰] 유튜버 할담비, 화투 대신 유튜브…‘미쳤어’로 인생 반전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고 하시던데.

“TV 출연도 하고 광고도 찍고 하니까 모두가 ‘떼돈 벌었겠다’ 그 말을 해요. 다들 유튜버 하면 몇 억씩 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여전히 반지하 50만 원짜리 월세를 살고 있고,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요. 물론 기초수급자였던 전보다는 벌기야 벌죠. 취지가 좋은 곳은 무료 봉사를 가기도 하고, 종로노인복지관에서 나를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기부도 해요. 롯데홈쇼핑 광고로 받은 돈도 전액 기부했고, 지난번에는 국민MC 유재석 씨와 조세호 씨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퀴즈를 맞히면 돈 100만 원을 상금으로 준다고 찾아왔어요. 문제는 못 맞췄는데 추첨선물로 내가 TV를 뽑았어요. 그 자리에서 복지관에 기부했어요. 이 나이에 벌어서 기부하는 것도 복이에요. 요즘은 이런 보람으로 사는구나 싶어요. 기초수급자였던 내가 지원받는 신세에서 세금도 내고, 기부도 하다니 정말 흐뭇하고 좋아요.”


인생의 곡절이 여럿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업에 여러 차례 실패도 했고, 사기도 여러 번 당하고, 보증도 잘못 섰어요. 서울 명동에서 양품점을 할 때였는데 하루는 친구 놈이 사업을 같이 하재. 난 이미 사업을 하고 있었으니까, 마침 여윳돈이 있어 3000만 원을 빌려 줬어요. 그때가 1970년대니까 변두리에 아파트
2채는 살 수 있는 돈이었는데, 믿고 빌려 줬죠. 그러고 얼마 안 가 연락이 두절됐어요.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나. 몇 년 후 한국에 들어와 하는 말이 자기가 브라질로 다시 가서 재기해야 나한테 돈도 갚을 수 있는데, 갈 비행기 삯이 없다고 100만 원만 더 빌려 달래요. 이놈이 미쳤나 싶었지만 터전에 갈 돈이 없다는데 어떡해. 또 빌려 줬지요. 결국 못 받았어요. 외환위기 무렵에는 사업하는 조카 보증을 섰는데 그걸로 살고 있던 아파트가 하루아침에 날아갔어요. 꼬박 6년을 조카 빚 대신 갚느라 고생하다가 지금 사는 월셋집으로 오게 됐어요. 이후에는 알다시피 기초수급자가 됐고요. 내가 사기를 안 당했으면, 보증을 안 섰더라면 매일 그런 후회를 했지만 그 상태에 계속 빠져 있으면 꼼짝없이 죽겠더라고요.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려니까 그렇게 된 거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위로했어요. 마음을 비우고 속병 없이 사는 거죠. 건강이 최고의 자산이니까.”

춤은 어떻게 배우게 되신 거예요.

“다들 내가 춤을 빨리 배운다고 해요. 젊은 애들도 2~3일 촬영하는 거 나는 하루 만에 완성한다고. 18년간 전통 무용을 배웠으니 춤사위가 배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서른일곱엔가 가게를 하다가 한 분을 만났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임이조 선생이라고, 유명한 한국무용가셨어요. 그분이 무용 학원을 열었는데 춤 한 번 배워 보라고, 내 앞길이 트일 거라고 조언했어요. 나이 먹고 배우는 거니 그냥 즐겁게 배웠어요. 허송세월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이렇게 살다 보니 할담비 소리도 듣잖아요.”


할담비의 행보는 모든 이에게 많은 위로를 줍니다. 지 선생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할아버지처럼 해 봐야겠다 그런 말 들으면 너무 보람차요. 할아버지가 했는데 나도 해야지. 그런 위로면 되는 것 같아요. 계획은 없어요. 내가 거짓말 안 하고 솔직하게 하면서, 아프지만 않으면 돼요. 누리꾼들이 ‘할담비는 백 살까지 살아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100세까지 살 이유도 없지만, 그래도 살게 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병수 할아버지는…
1943년 전북 김제 출생. 예능에 끼가 있었지만 흐지부지 청춘을 보내다가 나이 마흔에 비로소 한국무용에 입문하며 적성을 찾았다. 사업에 실패도 하고, 그야말로 쪽박을 찼지만 흥을 잃지 않았다. 2019년 3월 평소대로 부른 노래 1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나이 일흔일곱에 데뷔를 했다. 할담비라는 애칭으로 유튜버를 운영 중이다. 구독자는 1만5400명.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