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發 미·중 ‘쩐(錢)의 전쟁’

[한경 머니 기고=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사후 평가와 함께 이에 따른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이에 미국과 중국은 경제 주도권을 차지하고, 시중에 푼 막대한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한 날선 ‘쩐(錢)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세계 경제와 국제통화질서가 ‘뉴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뼛속까지 느끼게 한다. 뉴노멀이란 종전의 이론과 규범,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통하는 노멀과 대비시켜 붙여진 용어다. 미래 예측까지 어려우면 ‘뉴 애브노멀’로 구별한다.

코로나19가 세계보건기구(WHO)에 정식 보고된 지도 5개월이 넘었다. 초기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던 모든 세계인의 심리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아이(I)’자형으로 대공황보다 더 어렵다고 예상됐던 세계 경기도 ‘브이(V)’ 혹은 ‘유(U)’자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세계 주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저점 대비 평균 30% 이상 반등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하면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리는 과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사후 평가와 함께 이에 따른 책임론이 불거진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세계 경제는 성장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됐다. 현안별로는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중 간 마찰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5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각국의 국격과 최고통수권자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코로나19 사태를 잘 대처한 한국은 ‘방역 선진국’이란 평가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 반대로 최대 피해국인 미국은 ‘방역 후진국’이란 수모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위상은 추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대선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영속성’이란 면에서 보면 야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대선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도 이 점을 파고들고 있다. 당초 바니 샌더슨 대선 후보가 주장했던 법인세 인상까지 수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연일 외치고 있다.

워싱턴 정가를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연임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가가 어려울 때일수록 국민과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가’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우선하는 전형적인 ‘정치꾼’인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제2의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절실한 상황이다.

협상의 달인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제2의 옥터버 서프라이즈 대상국으로 중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대선의 최후 버팀목이 될 것으로 여겼던 경기와 증시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던 코로나19의 진원지이자, 취임 이후 주력해 왔던 무역협상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보복 대상국으로 중국을 택했다면 달러 약세 유도, 보복관세 부과, 첨단 기술 견제 등 지난 3년 동안 가용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을 다 쓴 상황에서 ‘어떤 카드를 가져갈 것인가’가 그다음 고민거리다. 시기적으로 대선이 불과 5개월도 안 남았다. 중국의 핵심 심장부 즉, 정곡을 찌를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중국 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지난해 성장률이 1990년 이후 29년 만에 가장 낮은 6.1%로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피해가 집중되면서 올해 1분기 성장률은 -6.8%까지 추락했다. 반세기 만에 처음 겪는 마이너스 성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1.2%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또 하나의 바이러스 전염병인 아프리카 돼지열병 피해로 오르기 시작한 물가가 잡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3%로, 시진핑 정부가 세운 물가 목표치 3%를 여전히 웃돌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성장률이 떨어진 폭을 감안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얼마나 높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성장률(소득)이 떨어지는 와중에 물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중국 인민이 느끼는 경제 고통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고통지수를 구성하는 3가지 항목(경제고통지수=실업률+소비자물가상승률-성장률)이 모두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고통지수도 중국 경제가 개방을 추진한 199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지방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인민은행이 무려 17차례에 걸친 긴급유동성 지원에도 최대 현안인 신용경색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지방 제조업 경기 부진으로 800개가 넘는 지방 은행에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다. 지방 인민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태세다. 그 수위가 날로 높아지면서 도시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다간 ‘제3의 톈안먼 사태로 번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코로나19發 미·중 ‘쩐(錢)의 전쟁’
코로나19發 미·중 ‘쩐(錢)의 전쟁’
◆미·중 날선 신경전…정치적 속내는

가장 당혹스러운 사람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제3의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다면 자신의 축출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976년 1차 톈안먼 사태 이후 덩샤오핑 실각, 1989년 2차 톈안먼 사태 이후 자오쯔양에서 장쩌민으로 권력 이양이 발생했다. 부패 척결 과정에서 밀려난 권력층을 중심으로 시진핑 퇴출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문도 끊이질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져갈 수 있는 대중국 보복 수단은 명확하다. 코로나19 책임론을 빌미로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상환을 거부하는 이른바 ‘미국판 모라토리움’ 방안이다. 이 구상이 알려지자마자 중국은 앞으로 닥칠 신용경색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서둘러 매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판 모라토리움 방안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가’ 여부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양대 핵심 대책은 무제한 국채 매입을 통한 달러 공급과 제로(0)금리를 바탕으로 한 뉴딜 정책이다. 중국이 미국 국채 매각으로 맞설 경우 달러 유동성이 경색되고 국채 금리가 올라가 미국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해외투자 정책 방향을 ‘네거티브(원칙-자유, 예외-규제)’에서 ‘포지티브(원칙-규제, 예외-자유)’로 전환하고 위안화 절상을 유도해 차이나 머니를 회수해 왔다. 대상은 미국에 투자했던 부동산과 국채, 달러화다. 이때부터 차이나 머니와 달러계 자금 간 ‘쩐(錢)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제시됐다.

최악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판 모라토리움 방안을 밀어붙일 경우 ‘중국이 과연 국가 부도라는 최대 봉변을 당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1조 달러 내외인 반면 외환보유액은 3조 달러가 넘는다. 어떤 경우든 간에 중국이 부도가 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고민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앞서간다는 결과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의 입장을 180도 바꾸는 2가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하나는 세계화의 종언을 표방하면서 “중국과의 모든 거래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에 마이너스 금리 추진 압력까지 넣으면서 고집해 온 달러 약세 입장을 철회하고 “지금은 달러 강세가 맞는 시기다”라고 강조했다.

시장의 반응도 의외였다. 글로벌화와 수출에 익숙했던 노멀 시대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다우존스지수를 1000포인트 이상 급락시킬 수 있는 대형 악재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최대 피해 지역인 뉴욕 주지사가 단계별 경제활동 재개를 제시하는 등 호재가 겹치면서 주가는 올랐다. 시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경제 분야에서 가장 먼저 현실로 닥치고 있는 변화가 세계화의 퇴조다.

세계화의 속도가 둔화된다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에 이어 ‘탈세계화(deglobalization)’ 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 상품의 이동도 제한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급자족(autarky)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범세계주의’보다 ‘보호주의’가 지속되는 추세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수출’보다 ‘내수’, ‘오프쇼오링’보다 ‘리쇼오링’, ‘아웃소싱’보다 ‘인소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극우주의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코로나19發 미·중 ‘쩐(錢)의 전쟁’
코로나19發 미·중 ‘쩐(錢)의 전쟁’
◆코로나19 책임론 불거지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하면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리는 과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사후 평가와 함께 이에 따른 책임론이 불거진다.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사망지수가 줄어들기 시작함에 따라 마치 입을 맞춘 듯이 각국이 ‘뉴딜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자급자족 성격이 강해지는 여건에서는 재정 정책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채무가 위험 수위에 도달해 뉴딜 정책 추진에 따른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하기가 힘든 여건이다. 국가 부도 위험을 무릅쓰고 적자 국채를 발행해 마련한 재원을 지출한다 하더라고 경기 부양 효과가 종전만 못하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재정지출 승수효과는 1930년대 3.5배에서 1.5배 내외로 낮아졌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유일한 희망이 실물경제에 유입되지 않고 떠다니는 그 많은 돈이다. 금융위기 이후 헬리콥터 밴식으로 뿌려진 막대한 돈이 회수되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많이 풀렸다. 미국 연준은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기까지 ‘최종 대부자 역할(lender of last resort)’을 포기해서라도 무제한 돈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각국이 돈을 끌어들이는 ‘쩐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무기가 있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은 캐리트레이드 성격이 짙다. 이론적 근거는 환율을 감안한 어빙 피셔의 국제 간 ‘자금이동설(m=rd-(re+e), m: 자금유입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리거나 환차익을 제공해야 한다.

‘쩐의 전쟁’에 승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금리는 더 이상 동원할 수 없는 용도 폐기된 수준이다.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제로 혹은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차선책은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려 환차익을 제공하는 무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화 종언과 함께 달러 강세를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도 ‘쩐의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국의 통화가치를 올려서 자국 내 돈 이탈을 방지하고 다른 국가에서 돈을 빼어 와야 한다. 환율전쟁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글로벌화와 수출에 익숙한 노멀 시대에 있어서 환율전쟁은 ‘평가 절하’ 경쟁인 데 반해 탈글로벌화와 내수를 지향하는 뉴노멀 시대에 있어서는 ‘평가 절상’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