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얼마나 행복감을 줄까

[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의 저자이며 주식투자 전문가인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주식투자에 있어 심리가 미치는 영향이 9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마음을 읽어야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돈, 사랑, 관계 등 우리 삶에 중요한 콘텐츠에 대해 내 마음이 복잡하게 작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뜻의 인류를 가리키는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관련 책들이 유행하고 있다. 국내외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으며 왜 인기일까 생각해 보았다. 먼저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여러 분야의 연구 결과, 즉 사실을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는 작가의 주관적 상상과 해석이 책에 더 가득해도 ‘진짜인가 봐’ 하고 몰입하게 된다. 또 예언서처럼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위기를 담고 있다는 점도 흥미를 끄는데,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힘든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하며 관찰자의 입장에서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을 살펴보고 싶은 동기를 제공하지 않나 싶다. 또 ‘남의 탓’이란 심리 방어가 가능한 점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문제가 아니라 내 영혼이 담긴 호모사피엔스라는 하드웨어 자체에 뿌리 깊은 단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든 호모사피엔스가 유행이라는 것은 내가 나를 잘 모르고 있었음을 느낀 것은 아닐지, 내게 보이지 않는 마음속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호기심이 증대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돈 있으면 편리하게 폼 잡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 돈은 얼마나 개인에게 행복감을 줄까. 생존에 필요한 단계까지는 수입이 늘면 행복감도 함께 커진다고 한다. 그러나 먹고 살 만해진 이후엔 행복과의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왜 그럴까.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할 것 같은데, 자족(自足, self-sufficiency)이 증가하기 때문이란 연구 결과가 있다.


돈이 많으면 남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음도, 남을 도와줄 마음도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행복의 원천인 사람과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 나도 자족감이 증가해 외로워질 만큼 돈 좀 벌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필자의 마음에도 격한 공감이 일어난다.


‘나’를 위한 감사 행동


돈 많으면 부러운 마음은 들지만 그것만으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갑질’, 사회·경제적 지위가 곧 존경받을 나의 가치란 속물적 착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데 나를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아’라며 폭력적인 언행을 자기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기는 약자에게 쉽게 내뱉고 사랑과 존경을 강제로 요구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줄 수 있지만 진짜 애정과 존경은 상대방을 가치 있게 먼저 존중해 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손님이 왕’이란 말,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이야기겠지만, 거부감이 든다. 손님도, 서비스 제공자도 모두 소중한 인간이다. 요즘 손님의 갑질에 마음 상한 서비스 제공자들의 사연이 가득하다. 서로 역할을 바꿔 가며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없어 외로운 듯하지만 외로움은 갖고 태어난 사람을 향한 본능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로울 때, 나를 더 사랑해 달라며 자기중심적 요구를 하는 것보다 남을 배려하고 도울 때 찾아오는 행복감이 더 크다고 한다. 헬퍼스하이(helper’s high)라 하는 이 쾌감이 마음 건강을 넘어 심장까지 튼튼하게 지켜준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나를 위한 보약인 셈이다. 이 보약은 상대방도 나와 같은 소중한 인간이라는 마음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다.


“인생 목표가 어떻게 되세요”란 질문에 금방 대답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전자도 생존을 밀어붙이는데 학교 교육이나 사회생활도 ‘더 열심히 완벽을 향해 달려, 달려’라 내 마음을 채찍질하다 보니 ‘무엇을 위해 생존하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생존 자체에 매몰되기가 쉽다. 단체사진 찍을 때 빠지지 않는 구호, 파이팅(fighting)이 영어권 사람들을 못 알아듣는 ‘콩글리시’라고 한다. 미국 사람한테 ‘파이팅’ 하면 한 판 싸우자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얼마나 생존을 위해 전투적으로 살았으면 힘내자란 구호가 ‘파이팅’이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행복’을 인생 목표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행복이 인생 목표면 오히려 행복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목표는 도달할 때 만족감이 오는데 행복이란 목표는 소박한 듯싶지만 굉장히 높은 수준의 목표이고 기준을 설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행복이 감정인 것인지 성취인 것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행복에 도달한 것인지 기준 설정이 어렵다. 행복은 목표보다는 내가 세운 행동 목표를 실천했을 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결과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어떤 행동 목표가 행복을 마음에 잘 가져오는지에 대한 연구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 하나를 소개한다면 ‘감사 행동’이다. 감사 일기를 쓰도록 한 그룹과 불평 일기를 쓰도록 한 그룹에 대한 비교 연구를 보면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건강했다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감사할 게 있어야지 감사하지란 생각도 들겠지만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나를 위한 감사 행동’은 연습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마음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행동이 일어나지만 반대로 행동이 내 마음에 행복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