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우리나라에서 유류분은 복잡한 퍼즐과도 같다. 그렇다면 미국 시민권자가 국내에 거주하는 상속인에게 증여를 할 경우, 세법은 어떻게 적용될까.

미국 시민권자의 증여 시 유류분은
젊은 시절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등 외국에 가신 분들의 경우 항상 조국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근면과 성실 하나로 외로움을 견디면서 조금씩 재산을 일구었던 그분들 중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에 있는 부동산을 구입했습니다.

제가 변호사가 된 후 이처럼 미국에서 자수성가해 일가를 이루었고, 서울에도 부동산을 구입하셨는데 캘리포니아주법에 따라 유언장을 작성하고 사망한 분의 상속관계를 처리한 적이 있습니다. 유언서의 주요 골자는 미국 재산을 큰 자녀 2명에게 상속하고, 서울에 있는 부동산은 막내아들에게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유언에 따라 서울에 있는 부동산에 관해 막내아들에게 유증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하려면 우선 그 유언이 유효해야겠죠. ‘국제사법’ 제50조는 유언은 유언 당시 유언자의 본국법에 의한다.

유언의 방식은 유언자가 유언 당시 또는 사망 당시 국적을 가지는 국가의 법, 유언자의 유언 당시 또는 사망 당시 상거소지법, 유언 당시 행위지법, 부동산에 관한 유언의 방식에 대하여는 그 부동산의 소재지법 중 하나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사망 당시 미국 시민권자로서 캘리포니아주에 사셨으니 캘리포니아주법에 따라 유언장을 작성한 것은 유효한 유언의 방식입니다.

“외국법에 따라 외국에서 작성된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에 대한 유언 공정증서를 첨부 정보로 제공해 유증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신청을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우리 등기 선례
[부동산등기선례 제201809-5호(2018. 9. 18.)]는 “① 아일랜드 국민인 갑이 그 나라에서 아일랜드 민법에 따라 그가 소유하는 국내 부동산에 관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한 후 사망했고, 이에 따라 유언집행자와 수증자가 공동으로 그 부동산에 대해 유증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하는 경우, ‘국제사법’ 제50조 제3항에 따르면 유언자가 유언 당시 국적을 가지는 국가의 법에서 정하는 방식에 따라 유언을 할 수 있으므로 아일랜드 민법에 따라 작성한 유언공정증서를 등기원인을 증명하는 정보로 제공할 수 있는바, 다만 이 공정증서에는 아일랜드 정부가 발행한 아포스티유(Apostille)를 붙여야 하고, 공정증서(아포스티유 포함)에 대한 번역문도 제공해야 한다. ② 그리고 이러한 유언공정증서가 아일랜드 민법에 따라 적법하게 작성됐음을 소명하기 위해 해당 법령의 내용과 그 번역문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저는 자녀들 사이에 불평이 있을 법도 한데, 유류분 분쟁은 없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물론 제 의뢰인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궁금함이 계속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미국 시민권자인 아버지가 한국에 있는 부동산을 일부 자녀에게 증여하고 사망하자 자녀 중 1인이 유류분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면서 유류분반환소송을 했고 이 사안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에서 한 판결(서울고등법원 2018. 9. 7. 선고 2018나2005889 판결)이 확정됐다는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나라별 상속 준거법의 차이
이번 사례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망인은 전혼에서 자녀들(원고)을 두었고, 이혼한 후 재혼해 다시 자녀(피고)를 두었습니다. 망인은 1987년경 미국으로 이민해 이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그 후 한국에 제법 많은 부동산을 마련했습니다.

망인은 생전에 위와 같이 마련한 부동산을 피고에게 증여했고, 미국 법에 따라 유언증서를 작성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피고에게 부동산과 금융재산을 유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망인은 이와 같은 내용의 유언증서를 작성하고, 이를 미국 뉴욕주의 공증인을 통해 공증했습니다, 망인과 재혼한 배우자는 뉴욕주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러자 원고가 피고에게 유류분의 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원고의 주장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속에 관하여는 망인의 본국법이 1차적으로 적용되나, 미국 ‘국제사법’의 일반원칙(Restatement of the Law, 2nd, Conflict of Laws) 및 미국 뉴욕주 법률(New York State Law Estates, Powers & Trusts)의 관련 규정에서 상속에 관한 청구에 대하여는 부동산 소재지국의 법률이 준거법이 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부동산 상속에 관한 이 사건에서의 준거법은 ‘국제사법’ 제9조 제1항에서 정한 준거법 지정 시의 반정 또는 그 유추 적용인 ‘숨은 반정’에 의해 대한민국 민법이 된다. 피고가 망인의 전 재산인 각 부동산을 증여받음으로써 원고의 유류분을 침해했으므로, 대한민국 민법에 따라 원고에게 유류분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

상속의 준거법이 한국 법이면 한국의 법률이 적용되고, 상속준거법이 외국법이면 외국의 법 규정이 적용될 것입니다. 여기서 상속은 상속의 개시, 상속재산의 범위, 법정상속인의 범위, 상속인의 순위, 필요적 상속분, 상속의 승인과 포기 등 다양한 문제를 포함합니다. 또 유류분권, 유류분권의 실행 방법, 유류분의 포기도 상속준거법에 따릅니다. 따라서 만약 한국 법이 준거법으로 정해지면 원고는 유류분의 침해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고, 반면 유류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 법이 준거법이 되면 원고가 유류분의 침해를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안의 1심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① 망인은 사망 당시 미국 국적자로서 미국 뉴욕주에 주소를 두고 있었으므로 ‘국제사법’ 제49조 제1항(상속은 사망 당시 피상속인의 본국법에 의한다)에 의해 상속에 관한 준거법으로는 망인의 본국법인 미국 법이 적용돼야 하고, 다시 미국은 지역에 따라 법을 달리하는 국가이므로 ‘국제사법’ 제3조 제3항에 의해 뉴욕주법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② ‘국제사법’ 제9조 제1항[이 법에 의해 외국법이 준거법으로 지정된 경우에 그 국가의 법에 의해 대한민국 법이 적용돼야 하는 때에는 대한민국의 법(준거법의 지정에 관한 법규를 제외한다)에 의한다]은 이른바 ‘준거법 지정 시의 반정’ 법리를 규정하고 있으나, 원고가 그 주장의 근거로 들고 있는 ‘New York State Law Estates, Powers & Trusts’ 제3-5.1조 (b)(1)항은 부동산과 관련한 유언에 대해 그 유언의 효력이 문제되는 경우, 유언 처분의 철회 내지 변경이 있는 경우, 상속 개시 후 부동산이 유언에 의해 처분되지 않은 경우의 승계 방식 등에 관해 해당 부동산의 소재지 관할법원의 법률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Restatement of the Law, 2nd, Conflict of Laws’ 제239조 (1)항은 유언에 의한 부동산의 처분 등과 관련해 준거법 지정의 반정을 규정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을지언정 부동산에 관한 상속 전반에 관한 준거법 지정의 반정을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③ 그런데 원고가 유류분이 침해됐다고 다투는 각 부동산은 망인이 생전에 피고에게 증여한 것이고, 망인이 작성한 유언증서에 의해 유증된 것이 아니다. 이미 생전 증여가 완료된 부동산에 대해 앞의 ‘Restatement of the Law, 2nd, Conflict of Laws’, ‘New York State Law Estates, Powers & Trusts’의 관련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없고, 따라서 이 규정에 의한 반정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숨은 반정이 허용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편 사전증여를 받은 부동산이 대한민국 사전증여 부동산의 소재지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④ 결국 망인의 사망으로 인한 상속에 관한 준거법으로는 미국 뉴욕주법이 적용될 수밖에 없고, 미국 뉴욕주법에는 상속과 관련해 유류분 제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원고의 유류분이 침해됐음을 전제로 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원고는 이러한 판결에 대해 항소했는데, 항소심 역시 미국 ‘국제사법’의 일반원칙(Restatement of the Law, 2nd, Conflict of Laws) 및 미국 뉴욕주 법률(New York State Law Estates, Powers & Trusts)의 관련 규정은 유언에 의한 부동산의 처분 등에 관한 것이고, 망인이 부동산을 생전에 증여한 이 사건에서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민법의 유류분 제도는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 등을 입법 목적으로 한 강행 규정이므로, 외국법이 준거법으로 지정되는 경우에도 ‘국제사법’ 제7조에 의해 이를 적용해야 하고, 이 사건의 경우 유류분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뉴욕주법을 적용하면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명백히 위반되는 결과가 되므로 ‘국제사법’ 제10조에 의해 뉴욕주법을 적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한 원고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유류분반환청구권은 포기할 수 있는 재산상의 권리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유류분 제도가 준거법에 관계없이 적용돼야 하는 대한민국의 강행 규정이라고 볼 수 없고, 피상속인의 본국법이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그 법률을 적용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위배된다고 할 수도 없다.”

이처럼 상속준거법이 외국법이고, 외국의 상속법에 우리의 유류분과 같은 규정이 없을 때, 우리 민법의 유류분 규정이 국제적 강행 법규인지 의견이 대립될 수 있는데 사례와 같이 공서양속 위반이 아니라고 판시한 것입니다. 그 이전에 유류분 규정을 두고 있는 독일에서도 이와 같이 유류분의 제한 없이 처분의 자유를 인정한 미국 뉴욕주법이 독일의 공서양속에 위배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된 사안에서 앞서 서울고등법원 판결처럼 공서양속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하네요.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세계 각지로 진출한 우리 동포를 쉽게 만날 수 있다고들 합니다. 그래서인지 상속 분쟁도 ‘국제사법’적 요소가 많아집니다. 그런데 최소한 뉴욕주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권자가 생전에 증여한 한국 소재 부동산은 유류분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네요. 요즘같이 유류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때에 눈에 띄는 사안이었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