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허브, 홍콩 지고 싱가포르 뜨고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밀어붙이자 미국도 그동안 홍콩에 부여한 관세,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며 맞불을 놓았다. 이에 홍콩에서 빠져나간 글로벌 자본이 싱가포르로 몰리며 아시아 금융 허브에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은 홍콩 자치권의 관에 대못을 박는 것이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민주화 세력과 반중 시위에 참여한 시민뿐만 아니라 결국 홍콩에서 자유롭게 활동 중인 비즈니스맨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홍콩은 지금 정치적 권리를 침해받는 것을 넘어 경제적 자유도 위험에 빠진 상황이다.”

홍콩의 야당인 데모시스토당의 조슈아 웡 비서장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비판한 내용이다. 웡 비서장은 2014년 홍콩 도심을 79일간 점검했던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을 이끈 주역이다. 이미 세 차례나 투옥됐던 웡 비서장은 “중국이 1984년 영국과 체결한 홍콩 반환협정에 따라 홍콩에 대해 2047년까지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 두 체제)’를 보장해야 하지만 이를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웡 비서장은 “중국이 홍콩을 독재정권에 동화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된다면 홍콩에 부여된 특별지위에 대해서도 각국이 재고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홍콩 죽이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 5월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홍콩 국가보안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878표, 반대 1표, 기권 6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최종 승인 절차를 거쳐 조만간 발효될 예정이다.

중국 전인대가 홍콩에 대한 법을 직접 제정하는 것은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처음이다. 홍콩의 법률은 헌법인 기본법에 따라 의회인 입법회를 통해 제정된다. 하지만 중국 전인대는 일국양제에 따라 국방과 외교 분야의 법률을 만들어 이를 홍콩의 기본법에 부칙으로 삽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홍콩의 기본법 제18조에는 중국의 주권 영역인 외교와 국방 등에 관련된 중국 본토 법규를 기본법 부칙 제3조에 삽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홍콩은 일국양제에 따라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한다는 보장을 중국으로부터 받았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이런 약속을 깨고 일국양제에 따라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일국양제에 사망선고를 내린 셈이다.

◆중국, 일국양제 결국 폐기?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의 외교와 국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이 법을 제정한 이유는 지난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와 같은 반중 시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해 6월 9일부터 연일 수만 명에서 200여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송환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당시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면서 개정에 반대했었다. 결국 홍콩 정부의 최고책임자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해 9월 4일 송환법을 철회했었다. 당시 시위 사태는 ‘홍콩의 중국화’를 가속화하려는 시 국가주석과 공산당 지도부의 야심을 저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홍콩에 대한 전면적인 감독과 통제를 위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것이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에 두 체제, 다시 말해 국가는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이지만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 체제 등에 따른 각종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2014년 홍콩을 중국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 실천’이란 제목의 백서에서 일국양제를 새롭게 규정했다. 백서는 “일국양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경제 체제의 원칙을 가리킨 것일 뿐, 정치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특히 백서는 ‘양제’는 ‘일국’에서 비롯된다면서 홍콩이 법에 따라 고도의 자치를 시행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중앙(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감독권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의도는 홍콩의 정치 체제로 민주주의를 결코 용납하지 않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를 홍콩에 도입해 ‘홍콩의 중국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도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이런 전략을 추진하게 된 것은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시킬 경우 대만과의 통일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티베트, 위구르 등 소수민족들의 독립과 자치권 요구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베트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는 그동안 중국 정부에 홍콩처럼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해 줄 것을 촉구해 왔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의 홍콩화’가 촉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민주화 세력이 서구식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할 경우 자칫하면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금융, 무역, 관광 등으로 볼 때 홍콩이 아직까지 ‘황금 알을 낳은 거위’임에도 불구하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통해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총 7개 조로 구성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일국양제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제1조에서는 국가 분열과 국가 정권 전복, 테러리즘 조직 결성 및 활동 등 국가 안보를 해치는 행위와 활동을 예방·제지·처벌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당초 국가 안보를 해치는 ‘행위’였다가 전인대 심의 과정에서 ‘활동’을 추가해 처벌 범위를 넓혔다. 반중 행위자뿐 아니라 단순 시위 가담자도 처벌이 가능해 대규모 시위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 분명하다.

제2조는 모든 외국과 역외 세력이 어떤 방식으로든 홍콩에 개입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3조는 홍콩의 행정·입법·사법부가 보안법에 따라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를 처리하도록 명시했는데, 이는 홍콩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제4조에는 중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기관을 필요에 따라 홍콩에 설립하고, 법 집행을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따라 중국 공안기관이 홍콩에 상주하면서 반중 활동 및 외세 개입·결탁을 감시하고 관련 인사를 검거할 수 있게 됐다.
금융 허브, 홍콩 지고 싱가포르 뜨고

◆홍콩 대탈출, 금융 허브 바뀌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역대 정부는 그동안 1992년 제정된 ‘홍콩정책법’에 따라 관세,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과는 달리 홍콩의 특별지위를 보장해 왔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제정된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에 따라 홍콩의 자치 수준을 매년 검증해 최소 1년에 한 번 의회에 보고해야 하고,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9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강행은 중국이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라며 “중국은 약속한 일국양제 원칙을 일국일제로 대체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홍콩에 특별대우를 제공하는 정책적 면제를 제거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할 경우 외국 자본들의 ‘홍콩 대탈출(exodus)’이 벌어지고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 허브 지위를 상실할 것이 분명하다.

홍콩에선 이미 자본과 인력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헥시트(Hexit)’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헥시트는 홍콩(Hong Kong)과 엑시트(exit)의 합성어를 말한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6월 송환법 시위 사태가 발생한 이후 홍콩 부자들과 외국인들은 400억 달러(50조 원)의 예금을 홍콩에서 인출해 외국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는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한다면 대규모 자본이 빠져나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세계 100대 은행 중 70여 곳이 현재 아시아 거점을 홍콩에 두고 있다.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하고 미국 정부가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면 이 은행들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조 달러(1230조 원) 규모의 글로벌 자본이 홍콩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이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지난 4개월간 홍콩 헤지펀드 시장에선 310억 달러(37조7500억 원)가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헤지펀드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실물자산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목표 수익을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펀드를 말한다. 대표적인 헤지펀드로는 미국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퀀텀펀드를 들 수 있다.

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는 헤지펀드는 420개나 되는데,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910억 달러(109조726억 원)로 아시아에서 헤지펀드 운용자산 규모 2~4위인 싱가포르, 호주, 일본 등의 모든 헤지펀드 운영 자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에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해외투자자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미 헤지펀드 이탈은 가속화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의 이민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이민 컨설팅업체들은 최근 들어 해외 이민을 문의하는 건수가 20배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홍콩의 친중계 신문인 밍바오가 홍콩대 여론조사센터에 의뢰해 15세 이상 홍콩인 8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7.2%가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홍콩 전문직 종사자들이 외국으로 이민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홍콩에서 빠져나간 글로벌 자본이 싱가포르로 몰리고 있다. 싱가포르의 중앙은행격인 통화청(MAS)에 따르면 지난 4월 싱가포르 비거주자 예금이 1년 전보다 44% 급증해 62억 싱가포르 달러(5조3600억 원)를 기록했다. 싱가포르 외화예금도 같은 기간 거의 4배나 뛰어 27억 싱가포르 달러(2조3345억 원)에 달했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로서 홍콩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어 왔다. 영어 사용이 자유롭고 교육, 의료, 치안 수준이 높으며 안정된 정치와 사법 체계 때문에 많은 글로벌 기업이 싱가포르에 아시아 거점을 두고 있다. 싱가포르의 법인세는 17%로 홍콩(최고 16.5%)과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물류의 허브이기도 하다. 지난해 싱가포르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3660만 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상하이(4201만 TEU)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싱가포르 선물거래소는 뉴욕, 런던과 함께 원유 등 국제 상품 선물거래의 3대 축으로 꼽힌다. 싱가포르는 또 지리적으로는 인도와 가깝고, 인구의 17%가 무슬림이라는 점에서 인도와 이슬람 자금을 유치하기에도 유리하다.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6972억 달러로 홍콩 증시의 25% 수준이지만 글로벌 자본이 이동하면 앞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싱가포르가 홍콩을 대체하면서 새로운 아시아의 금융 허브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2호(2020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