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e 제 183호 (2020년 08월)

[Special] 韓, ‘아시아 금융허브’ 부상…걸림돌은

기사입력 2020.07.23 오후 01:46

[Special] 韓, ‘아시아 금융허브’ 부상…걸림돌은

[한경 머니= 공인호 기자]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로 아시아 금융허브를 노린 주변국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금융허브는 국가적 위상과도 직결되지만 ‘후진적’이라는 혹평을 받아 온 한국 금융 산업이 퀀텀점프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정부를 향해 ‘아쉽다’는 관전평이 나오는 이유다.


홍콩을 대체할 금융허브의 주된 요건으로는 규제와 세금, 언어적 장벽이 주로 꼽힌다. 하지만 ‘불안정한 금융 시스템’ 역시 선결 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사모펀드 사태 등과 같은 시스템 불안이 지속되는 한 금융허브를 향한 희망은 묘연할 수밖에 없다.

[Special] 韓, ‘아시아 금융허브’ 부상…걸림돌은

홍콩에 대한 미국의 특별지위 박탈로 홍콩을 대체할 아시아 금융허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 역시 유력 후보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고 있지만, 비즈니스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금융 시스템의 안정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정부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으로 심화하고 있는 미·중 갈등이 아시아 금융시장의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그간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 박탈과 함께 홍콩보안법 시행에 관여한 은행까지 제재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홍콩 내 글로벌 기업들의 엑소더스(exodus, 대탈출)가 점쳐지는 가운데 최근 미국의 유력 언론인 뉴욕타임스가 홍콩사무소 일부를 서울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이목을 끌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측은 “홍콩 민주화 세력과 야당을 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홍콩보안법이 아시아 언론의 중추로서 홍콩의 앞날에 불확실성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홍콩은 외국 기업에 대한 개방성과 중국 본토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언어적 이점 등으로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입지를 다져 왔다.

[Special] 韓, ‘아시아 금융허브’ 부상…걸림돌은

뜨거워지는 금융허브 쟁탈전…韓 ‘잠잠’
현재까지 이 같은 요건에 일정 부분 부합하는 나라로는 같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유력한 것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일본(도쿄)과 한국(서울), 호주(시드니)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시아 주요국들이 금융허브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 강화는 물론, 다국적 기업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고용 증가는 물론 소비 진작 효과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한국 진출이 본격화될 경우 국내 자본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아시아 금융허브 선점을 위한 물밑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은 글로벌 금융 인력에 대해 일본 체류 허용 기간 결정 시 일종의 가산점을 제공하는 특례 도입을 추진하는 한편, 영주권 취득에 필요한 체류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외 금융 인재의 일본 유입을 촉진시키는 우대 조치인 셈인데, 홍콩 내 인력 이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도입됐다는 점에서 금융허브를 노린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조만간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 방침에 도쿄를 국제금융도시로 만드는 구상을 담는 방안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대만 역시 지난 7월 홍콩보안법 발효 직후 홍콩 거주민과 기업의 자국 이주를 지원하는 사무실을 개설했다. 특히 대만 정부는 높은 개인소득세율 등 홍콩인들의 이민 유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들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미 올 1~5월 중 대만에 정착한 홍콩인은 지난해 동기 대비 96%나 증가했다는 통계치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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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들의 이런 노력과 달리 국내에서는 금융허브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 참여정부 시절의 뼈아픈 기억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초기 금융투자협회장을 역임했던 황영기 전 회장도 “참여정부에서 동북아 금융허브를 구상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이뤄진 것은 없고 외국계 은행, 증권사들이 철수할 정도”라며 “다만, 국내 자산운용 시장, 펀드 시장이 성장한 만큼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새로운 금융허브 전략을 세울 때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부 차원의 눈에 띄는 움직임은 전무한 실정이다. 지난 7월 16일 열린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에서도 금융허브와 관련된 대응책은 발표되지 않았다.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는 금융위원회 산하 심의·의결기구로, 금융 중심지에 관한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정책 추진 상황 점검 및 관계기관 간 의견 조정 등 필요한 사항을 의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아시아 금융허브를 위해 우리뿐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중국,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금융 중심지 정책을 지속 추진해 왔으나 20여 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는 길은 험난해 보인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의 경우 ‘불투명한 규제’가 금융허브의 최대 걸림돌로 거론돼 왔다. 이와 관련해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일본과 한국은 금융왕관을 차지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한국의 경우 현대화된 비즈니스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음에도 규제 불투명성, 영어에 능통한 금융 전문가 부족, 경직된 노동시장 등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며 “한국 정부는 지난 2009년 이후 외국 금융사 유치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은 위원장 역시 “외국계 금융회사 전문가들은 홍콩, 싱가포르에 비해 높은 법인세, 소득세, 경직된 노동시장, 불투명한 금융 규제 등이 여전히 걸림돌임을 지적하고 있다”며 “그러한 지적에 대해선 겸허히 받아들이며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청취하고 금융 규제 감독상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언급했다.


금융허브 가능성 충분…“금융 안정이 최우선” 
물론 부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영국계 컨설팅그룹 지옌(Z/YEN)은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27차 보고서에서 서울이 15개 도시 중 잠재성 평가에서 5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홍콩(9위)보다 4단계 앞선 것으로 서울이 금융허브 잠재력에서 홍콩을 앞선 것은 9년 만이다. 다만 일반평가에서는 서울이 33위, 홍콩이 6위로 녹록지 않은 현실을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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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국제금융센터는 “주식·외환시장과 달리 채권시장의 경우 홍콩보다 규모가 크고 투자자 수요도 많아 경쟁우위를 점할 여지가 있다”며 “한국이 중장기적으로 금융허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경제금융특구 육성 등 선택과 집중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 내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에 대한 위상 제고가 금융허브 선점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은 위원장도 “세계적으로 K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의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며 “급성장을 거듭하는 신남방·신북방의 인프라 개발금융 수요는 새로운 금융 산업 확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권 내에서는 반복되는 금융사고와 과도한 가계부채 문제 등 시스템 불안이 금융허브 도약을 막는 근본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아시아 금융허브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한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비즈니스 인프라 측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금융 산업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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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거 금융 중심지 후보였던 곳 대부분이 중국계 자금이 주축인 도시이며 싱가포르 시장 역시 화교자본이 상당 규모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 어렵다”며 “반면 한국의 경우 산업 자생력, 즉 비즈니스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다는 점에서 경쟁우위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인데, 이 부분이 보장된다면 원화의 국제화 역시 상당 부분 보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본질은 국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취약성은 한국의 금융 산업이 산업적 측면에서 육성되기보다 경기 부양 등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과도하게 활용돼 왔기 때문이라는 게 서 연구원의 지적이다. 이는 고스란히 과도한 가계부채 및 국내 은행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졌고, 결국 금융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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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연구원은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선결 조건에 대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제고가 우선 과제인데 이를 위해서는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 기조를 바꿔야 한다”며 “이를테면 사모펀드 활성화라든지 개인 간 거래(P2P)금융 확대 등 정부가 주도적으로 산업 육성에 나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금융정책은 철저히 ‘소비자 보호’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여기에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소수 주주가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시스템만 갖춘다면 국내 자본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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