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인터뷰 1에 이어서

활발한 카이 씨도 살다 보면 지치고, 우울할 때도 더러 있을 텐데요. ‘나 이럴 때 힘들다’ 하는 순간이 있다면요.

“저보다 열심히 하지 않는 배우가 (저보다) 더 잘될 때 사실 좀 힘이 들어요. 무대에서 선보이는 역량도 부족하고, 무대 예술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잘될 때는 솔직히 화가 났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속상한 건 제 스스로 추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죠.

잘 안 되는 부분을 100번 이상 연습하고, 반복했지만 무대에서 또 안 될 때 스스로 바보처럼 느껴지고 화나죠. 30대에는 이런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어요. 늘 연습이 끝나도 새벽 12시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물론 그런 노력들이 헛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제는 일과 쉼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어요. 때론 스스로를 풀어 줄 여유가 필요하더라고요. 훨씬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인터뷰②]카이 “선한영향력? 제겐 일종의 면죄부기도 해요.”

꽃을 무척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고마운 팬들은 물론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꽃이 있다면요.

“(바로) 단연 수국이죠. 잠깐 뮤지컬 <베르테르>의 상징인 해바라기를 말할까 고민했지만 역시 전 수국이 좋아요. 무더운 여름철 더위를 뚫고 나오는 작지만 강한, 그리고 지고지순한 수국을 선물하고 싶어요. 평소에도 전 가족이든 애인이든 동료든 소중한 사람들에게 꽃 선물을 자주하는 편인데, 어떤 분들은 ‘왜 시드는 꽃을 선물하느냐’고 하시잖아요? 전 되레 꽃이 시드니까 선물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언젠가 죽으니까 인간이고 꽃도 시들기에 아름다운 것 아닐까요. 저는 그런 자연이 좋아요. 쉴 때마다 제주도로 향하는데 그곳에선 편하게 맨발로 다니거나, 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죠. 자연의 품에서 자연스럽게 살고자 해요.”


벌써 데뷔 12년 차에 접어드셨어요. 그 시간 동안 본인이 생각하기에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잃은 건 없어요. 되레 스스로 만족하는 점은 하나 있어요. 제가 2014년에 <카이 인 이태리(KAI IN ITALY)>란 앨범을 LP로 재발매했어요. 그때 녹음했던 노래들을 올해 단독콘서트 <벨칸토(Bel Canto)>에서 부르려고 다시 녹음하게 됐죠. 비록 코로나19로 콘서트는 무산됐지만 이번 기회에 6년 전 제 목소리와 지금 목소리를 비교해 보니 거의 똑같더라고요. 정말 기뻤죠.


제가 늘 노래하는 데 있어서 강조하는 부분이 ‘신은 우리에게 한평생 쓸 수 있는 목의 사용량을 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성대를 아끼고, 후배들에게도 이 부분을 항상 강조해요.

물론, 저도 팝페라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초기엔 여러 고충이 많았어요. 주변에서도 뮤지컬 배우로서 더 많은 장르를 하려면 창법을 바꾸라고 권유도 자주 받아서 스트레스도 컸어요.


그러던 중 노영주 보컬트레이너를 2011년쯤 만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됐어요. 선생님은 ‘카이야, 네가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남들이 쉽게 하기 힘든 성악을 배우고, 연마했는데 그 목소리를 왜 다시 바꾸려고 하느냐’고 하셨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씀이더라고요. 저는 제가 성악 발성을 사용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클래식을 고수할 생각이에요. 남들이 다하는 창법이 아닌 저만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고, 좋은 소리를 내도록 노력할 거예요.”


연기도 곧 예술이잖아요. 과연 이것이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일각에서는 ‘예술은 결코 열심히 해서만 되는 게 아니다’라고 하죠. 그런데 저는 후배들에게 늘 이야기해요. 그 말에 절대 속지 말라고요.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해요. 열심히 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연기력을 향상시키고자 많은 선생님들도 찾아뵙고, 훌륭한 연기자들의 VCR도 돌려보면서 공부하고, 제가 가진 단점을 보안해 나가면서 죽도록 노력한 것이 성장의 근원이 됐어요. 연기라는 건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거든요.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믿는 것, 그리고 매순간 고도의 집중력으로 최선의 연기를 끌어내는 것. 그게 배우로서 제가 할 몫이죠.”

카이 하면 ‘선한 영향력’이란 키워드가 따라오더군요. 정작 본인은 이런 수식어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개인적으로 선한 영향력이란 말을 썩 좋아하진 않아요. 제가 그렇게 선한 사람도 아닐뿐더러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요.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일종의 면죄부라고 생각해요. ‘이런 거라도 해야 그래도 내가 뭔가 세상에 바로 설 수 있지 않을까’라고요.


제 스스로 부족한 사람임을 알기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기’에서 출발한 셈이죠. 또한 오늘날의 뮤지컬 배우 카이가 있기까지 저 스스로도 참 많이 노력한 부분도 크지만 그게 오롯이 제 힘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에요. 기적과도 같은 수많은 만남과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뒷받침 됐기 때문에 지금에 제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감사함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