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행동적 항우울제는 먹는 항우울제가 아니라 항우울 효과를 일으키는 행동이다. 마음은 영 의욕이 없어도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해 보면 거꾸로 행동이 생각과 마음에 변화를 줄 수 있다.

항우울 효과를 일으키는 행동은
열등감 때문에 힘들다는 고민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열등감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다. 이기고자 하는 경쟁 욕구가 있기에, 그리고 이기고만 사는 인생은 없기에 열등감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이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이 자존감이다.


내 자존감의 강도가 요즘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타인의 충고나 비판에 반응하는 내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충고에도 섭섭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면 자존감이 약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존감이 삶에 중요한 이유는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다른 사람이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줄 것이라는 자기 확신과 내가 계획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의 혼합물이다.


성취를 해야 자존감이 올라갈 것 같지만 사실은 시작점이 자존감이다. 튼튼한 자존감은 성공 경험에 이르는 지름길이고 그 경험이 자존감을 더 강하게 한다. 또 때론 실패해도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다시 일어나 재기할 수 있게 한다.


반면 성공했는데도 자존감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만 강해 보이는 가짜 자존감을 가진 경우인데, 항상 자신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고, 관심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도 마음의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사람보다 힘에 집착하고 다른 사람의 무관심이나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흔히 보인다. 가짜 열등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백화점에나 음식점에서 사소한 일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 하며 분노하는 경우 자존감이 떨어졌을 확률이 높다. 자기 확신이 줄고 자기 불안이 증가하기에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하는 것이다.


근육 키우듯 자존감을 튼튼하게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자기수용과 긍정적인 관점 갖기가 있다. 자존감은 완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강박적인 완벽주의는 자기불안의 증거다. 자기수용은 나와 내 인생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누구나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 살다 보면 특정 영역에 있어서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나도 강점이 있듯이 저 사람도 나보다 잘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인생의 상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삶의 여유가 자기수용이다. 그리고 자존감은 주관적인 관점이다. 자기수용의 여유로움 속에서 내가 가진 긍정적인 것을 소중히 바라보는 관점을 유지할 때 튼튼한 자존감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는 시간


스트레스 관리를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방법은 성공하기 어렵다. 인생은 끝없는 스트레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보다는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튼튼한 자존감을 유지하는 전략이 더 효율적이다. 오래 세월 이어온 명절의 심리적 유익이 자존감 재충전이라 생각된다.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것도 먹고, 덕담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속상한 과거는 털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힘을 얻는 힐링의 시간인 셈이다. 그런데 명절 스트레스라니 서글픈 일이다. 과도한 가사 노동, 잔소리, 가족 갈등 등으로 명절에 오히려 자존감에 멍이 들고 있다.

항우울 효과를 일으키는 행동은
행동적 항우울제(antidepressant activity)는 먹는 항우울제가 아니라 항우울 효과를 일으키는 행동들을 이야기한다. 마음의 에너지가 소실되는 번아웃(burnout) 상태가 되면 우울과 무기력감이 찾아오면서 만사가 귀찮은 심리적 회피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회피반응이 찾아오면 항우울 행동이 줄어들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 우울하고 더 무기력해질 수 있다. 1년 이상 불을 꺼 놓은 방에서 컴퓨터로 영상만 보며 다른 사회활동은 전혀 안 하는 경우도 있다.


마음이 움직여야 생각과 행동도 따라오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이다. 그런데 거꾸로 행동이 생각과 마음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휴일에 웬 등산이냐’며 짜증난 마음으로 끌려 나갔는데, 마치고 났더니 지친 마음도 재충전되고 등산을 꾸준히 해 보려는 생각까지 들 수 있다. 이를 우울증 치료에 적용한 것을 행동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라고 한다. 행동을 활성화해 지친 마음을 재충전해 보자는 것이다.


마음도 개발이 필요한 것이 지금 나에게 효과가 좋은 ‘행동적 항우울제’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동적 항우울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를 떠올리며 우울한 감정을 만든 행동은 무엇이었는지, 항우울 효과를 지닌 활동은 무엇인지 적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친구에게 전화하지 않고 또 전화가 와도 받지 않는 것이 기분을 우울하게 했다면 우울행동 항목에 적고, 강아지를 산책시킨 것이 기분을 좋게 해 준 것 같다면 항우울 항목에 적어 보는 것이다.


한가위 명절을 활용한 자존감 재충전 행동적 항우울제 팁으로 시간을 내어 한가위 보름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을 권한다. 잠시 내 삶을 주인공이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면서 ‘인간만사 새옹지마’지 하는 자기수용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더불어 가족들과 모여 앉아 올해 행복한 기억을 한 가지씩 이야기 나누기를 권한다. 유치해 보이지만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강화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