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은퇴 준비는 어떡하지?” 이는 정년을 앞둔 50대만의 걱정은 아닌 듯하다. 시나브로 늘어나는 수명과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금리. 준비해야 할 은퇴자금은 늘어난 데 반해, 낮아진 금리로 인해 자산을 불리기가 어려워졌다. 이러다 자칫 ‘무전장수(無錢長壽)’ 하는 건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드는 건 밀레니얼 세대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밀레니얼 세대, 왜 벌써 은퇴 준비할까

밀레니얼 세대라고 하면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이들로, 지금 20~30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중에는 이제 갓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들도 있고, 직장생활을 오래했다고 해도 경력이 10년 남짓 정도다. 여태껏 일한 날보다는 앞으로 일할 날이 더 많은 젊은이들이기에 아직 은퇴 준비에는 별 관심이 없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은퇴 자산 축적이 주택 구입 다음으로 중요


지난 5월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밀레니얼 세대의 재무 상태와 투자 특성을 살펴보기 위한 설문을 실시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재무 목표를 물었더니, 응답자 중 31%는 1순위 재무 목표로 ‘주택 구입 재원 마련’을 꼽았다. 최근 급등한 집값의 영향에서 2030세대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나 보다. 요즘 젊은이들은 내 집 마련을 위해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고 하지 않는가.


예상치 못한 일은 설문에 참여한 밀레니얼 세대 중 23%가 ‘은퇴 자산 축적’을 가장 중요한 재무 목표로 꼽았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2030세대가 결혼자금과 자녀교육비 마련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중 15%가 ‘결혼자금 마련’을 가장 중요한 재무 목표라고 답했고, ‘자녀교육비 마련’을 최우선 목표로 꼽은 사람은 겨우 5%밖에 안 됐다.


재무 목표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은 라이프 사이클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하더라도 자녀를 갖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리고 결혼한다고 해서 반드시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 설문조사를 하면서 밀레니얼 세대에게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겨우 31%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아니다’고 답한 젊은이들이 39%로 더 많았다. ‘자녀가 꼭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36%만 ‘그렇다’고 답했고, ‘아니다’라는 대답이 39%로 조금 더 많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으면, 당장 부양할 가족이 없어 홀가분할 수 있다. 반면, 나이가 들어 자신을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노후 준비를 할 수밖에. 이렇게 보면 밀레니얼 세대가 ‘은퇴 자산 축적’에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이 같은 사실을 너무 잘 알고 때문은 아닐까.

밀레니얼 세대, 왜 벌써 은퇴 준비할까
일찌감치 경제적 자유를 얻기 바라다


밀레니얼 세대가 ‘은퇴 자산 축적’에 관심을 갖는 게 노후에 대한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가능하면 이른 시기에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는 ‘파이어’ 운동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파이어(FIRE)’란 ‘경제적 자유(Financial Indepen-dence)’와 ‘조기 은퇴(Retire Early)’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파이어 운동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사회에 진출한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급격하게 확산됐다. 이들은 늦어도 40대 초반에는 은퇴하겠다는 꿈을 꾼다. 그래서 이들은 일찌감치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더 적게 쓰고 더 많이 저축하고 투자하는 전략을 택했다.


파이어족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도록 가능하면 이른 시기에 ‘수동적 소득(passive income)’을 충분히 확보는 것이다. 수동적 소득이란 이자, 배당, 임대료처럼 일하지 않고 생기는 소득을 말한다.


파이어족이 경제적 자유와 조기 은퇴를 꿈꾸기는 하지만, 남은 평생을 해변에서 칵테일이나 마시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보내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경제적 자유란 돈을 벌든 벌지 않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근간이다. 그래서일까. 파이어족 중에는 경제적 자유를 얻은 다음에도 계속해 직장이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다.


보통 노후 준비와 은퇴 준비라는 말을 혼용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은퇴 준비’는 ‘노후 준비’라는 말을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후’에 대한 불안 때문에만 자산을 축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젊어서 하루라도 빨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들에게 ‘은퇴(retire)’는 사회생활에서 물러나서 유유자적하며 사는 게 아니라,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re-tire) 다시 달린다는 의미가 아닐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말이다.

저금리 극복을 위해 투자에 나서다


노후에 대한 불안 때문이든, 하루 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든, 당장 모아둔 것이 많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 입장에서 절약과 저축은 기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건의학 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장기간 저성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시중금리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자금을 은행계좌에 넣어두는 것은 돈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수익률을 높이려면 주식이 됐든 펀드가 됐든 투자는 필수다. 그러면 밀레니얼 세대는 리스크를 무릅쓰고서라도 금융 자산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에 실시한 조사에서 밀레니얼 세대에게 금융 자산을 투자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밀레니얼 세대 10명 중 7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응답자 중 11%는 ‘반드시 투자할 생각’이라고 답했고, 64%는 ‘대체로 투자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주목할 점은 밀레니얼 세대가 애써 금융 자산 투자에 나서는 이유다. 밀레니엄 세대의 투자 의지에 불을 지핀 것은 무엇일까. 이들에게 금융 자산을 투자하려는 이유를 물었더니, 10명 중 8명(78%)은 ‘저금리 극복’을 이유로 꼽았다.


은퇴 자산이라면 무엇보다 안전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식은 고금리 시대에는 통했는지 몰라도, 요즘 같은 제로금리 시대에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 이야기는 초저금리 시대에 자산관리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 잘 알려 준다.


지중해에 있는 섬에 갇힌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아들 이카루스.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만든 다음 아들에게 달아 주며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 때문에 날개의 밀랍이 녹는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다 떨어져 죽는다. 여기까지 얘기를 듣고서 일부 투자자들은 ‘그래, 맞아. 지나치게 고수익만 추가하다 큰일 날 수 있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너무 낮게 날아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바다 수면 가까이에서 너무 오래 날다 보면, 해수면의 습기로 깃털이 무거워지고, 그러면 날갯짓을 못해 추락할 수 있다. 높이 나는 것이 위험하지만, 낮게 난다고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다이달로스가 이카루스에게 한 당부는 요즘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은퇴 자산을 운용하는데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고수익을 얻으려고 공격적으로 투자했다가 실패했을 때 감내해야 할 고통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자산관리를 하다 발생하는 문제는 간과한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원금 보장만 고집하다가 물가상승률도 못 미치는 낮은 수익률로 인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결국 적정한 높이로 날아야 한다.


개별 주식과 해외 투자에 관심을 보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금융 자산에서 어느 정도 수익을 기대할까. 이번 조사에서 밀레니얼 세대 중 58%는 ‘연 5~10%’ 정도의 수익을 원했다. 현재로서는 정기예금 등 원리금 보장성 상품에 투자해서는 이만한 수익을 낼 수 없다. 결국 원하는 수익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개별 주식에 대한 직접투자이지만, 주식형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도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응답자 중 주식 직접투자를 1순위로 선택한 비율이 30%나 됐고, 2~3순위로 주식투자를 선택한 것까지 합치면 그 비율은 60%까지 치솟는다. 개별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에는 못 미치지만 주식형 펀드, ETF와 간접투자 상품을 1·2·3순위로 선택한 사람을 합치면 55%에 이른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관심을 갖는 투자 테마는 무엇일까. 이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4차 산업혁명 이슈인데, 응답자 중 31%가 1순위 관심사로 꼽았다. 이 밖에 환경 및 사회적 책임 이슈, 배당주, 금, 원유, 달러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밀레니얼 세대는 해외 투자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해외 주식투자의 위험에 대해 물었더니, 응답자 중 58%는 “해외 주식투자가 국내 주식투자보다 위험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해외 투자에 대한 관심이 국내 투자만큼 또는 그 이상 된다”고 답한 응답자도 45%나 됐으며, “이미 해외 주식투자를 한 경험이 있거나 고려 중이다”라고 답한 사람도 32%나 됐다.


연금계좌와 퇴직연금 자산 배분에도 관심 가져야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밀레니얼 세대의 투자에 대한 관심이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아직 모아 둔 금융 자산이 많지 않다. 그리고 소득이 그리 많지 않아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아껴도 저축 여력이 많지 않다. 퇴직연금과 연금계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본인 명의로 된 퇴직계좌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용자는 근로자의 계속근로기간 1년마다 한 달 치 급여 이상을 해당 퇴직계좌에 이체해 준다. 근로자들 중에는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를 받을 요량으로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같은 연금계좌에 저축하는 사람도 많다.


연금저축에만 저축하면 한해 최대 400만 원, IRP까지 활용하면서 700만 원이 세액공제 대상이 된다. 세액공제율은 소득에 따라 다르다. 총 급여가 1억2000만 원 이하인 근로자는 세액공제 대상금액의 16.5%, 이보다 소득이 많은 근로자는 13.2%를 연말정산 때 돌려받을 수 있다. 여하튼 400만~700만 원이면, 적어도 한두 달 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퇴직연금과 연금계좌에 적립되는 돈만 합쳐도 한 해 두세 달 치 급여를 은퇴자금으로 적립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런 것 같지 않다. 현재 DC형 퇴직연금 적립금의 80%가 예·적금 등 금리형 상품에 맡겨져 있고, 연금저축 적립금 중에서 펀드에 투자되고 있는 자금은 겨우 10%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제로금리와 직면하게 된 밀레니얼 세대가 이런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을까. 아직 축적된 금융 자산이 많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는 자연스럽게 이들 연금 자산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축에서 투자로, 국내에서 글로벌로 연금 자산을 재배분하는 데 있어 제로금리가 촉매 역할을 할 것이 자명하다. 밀레니얼 세대가 모바일을 활용한 금융거래에 능하다는 점도 이와 같은 자산 배분을 가속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4호(2020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