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 남녀의 성관계는

[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전문가·보건학 박사·유튜브 ‘배정원TV’]출산은 사랑의 결실이지만 남녀의 몸과 마음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온다. 그렇다면 임신 기간과 그 이후의 성관계에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출산하고 아기가 6개월이 됐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내는 곁에 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제가 눈치를 보면 동물이냐고 질색을 합니다.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요?”

아기를 갖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병원에서 임신임을 확인받고,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을 때의 감격은 평생 못 잊을 놀랍고 감사한 기억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의 상징으로서 새로운 생명이 생겼다는 기쁨과 환희는 잠시이고 급격한 몸의 변화와 낯선 변화 때문에 전전긍긍 걱정이 많아진다.

임신 초기 입덧은 밥이나 김치 등 음식 냄새를 못 견뎌서 아예 부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심한 사람은 아무것도 못 먹고 영양제에 의지해 몇 달을 견디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모는 입덧 기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음식을 탐하기도 하고, 혹은 늘 즐겨했던 음식을 “저리 치우라”며 예민해진다.

어떤 남편은 늦게 일을 끝내고 들어와 배가 고픈 김에 라면을 끓여 놓고 냉장고의 김치를 꺼내려 문을 열었다가 안방에서 자는 줄 알았던 아내의 “문 닫으라”는 고함에 놀라 베란다에 나가서 처량하게 맨 라면만 먹은 적이 있다고 입덧의 경험을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임신의 과정은 부부가 함께 겪는 역경이며 또한 즐거움이다.

4개월 정도 지나면 임신의 상황에 서서히 적응이 되고, 입덧도 가라앉으며, 발길질도 하고 구르기도 하는 아기의 태동이 서서히 시작된다. 그때부터는 소변이 전보다 자주 마렵고, 졸음이 쏟아진다. 아기가 커짐에 따라 배도 조금씩 커지고, 임신선도 나타나며 유두의 색이 짙어진다.

27주부터 40주까지의 임신 말기에는 태아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팽창된 자궁이 횡경막을 치받아 호흡이 불편해지기도 하고, 위의 용적도 작아져 소화가 잘 안 될 때가 많다. 또 배가 커져서 내밀어진 체형으로 인해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기도 한다. 방광이 압박을 받아 더 자주 소변을 보아야 하고, 피로하며, 오랜 임신 기간에 지쳐 가며,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변화를 겪고 있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곁에서 아내가 전하는 상황을 전해 듣기만 하는 탓에 사실 실감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내가 왜 그리 졸려 하는지, 왜 그리 생뚱한 음식을 사다 달라고 하는지, 화장실엔 왜 그렇게 자주 가고, 소화가 안 돼 ‘끄윽, 끄윽’ 트림을 해대는지 이해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렇게 긴 임신기를 잘 마치고, 다행히 정상적인 출산을 한 후에도 남편이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신혼기를 충분히 가지지 못하고 허니문 베이비나 결혼 전 혼수로 아기를 장만한(?)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달콤한 허니문을 한창 즐겨야 할 시기에 아내는 곁에도 못 오게 하고 이런 저런 심부름과 요구는 많아졌기 때문에 남편 역시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혼 후 적어도 2년여 정도의 달콤한 신혼기를 지내고 아기를 갖는 것이 좋다. 요즘은 아기를 가지려고 1년 계획으로 몸을 만드는 부부도 많아졌다.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운동을 하고, 영양 섭취를 골고루 하면서 말이다.

◆임신 중 성관계,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렇다면 임신 중에 성관계는 해도 될까. 산모와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 임신과 출산을 겪는 부부들의 고민이다. 답을 드리자면, 초기의 3개월을 안정적으로 지내고, 4개월쯤 되면 임신은 안정기에 들어선다. 그때부터는 성생활을 해도 좋다. 실제로 임신 기간 동안 자주 규칙적으로 성생활을 한 산모는 출산일까지 임신을 건강하게 잘 유지하는 확률이 더 높다고 하고, 출산 후에도 성생활을 일찍 회복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어떤 여성들은 임신 중 오히려 성욕이 증가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골반 주위에 혈류가 많아지기 때문에 성감에 더욱 예민해지기고 오르가슴도 쉽게 느낄 수 있다.

남편과의 성관계는 아기에게 어떤 나쁜 영향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애무나 오르가슴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의 호르몬은 친밀함과 유대감을 높여 유산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를 줄여 주고, 훨씬 안정적인 임신기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이때는 아내의 부른 배를 압박하지 않는 여성 상위나, 측위 같은 체위를 선택해야 하고, 너무 거칠게 해서 아내를 힘들게 하거나 충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

임신 초기와 출산 예정일 한 달 전부터는 성관계를 삼가는 것이 좋다. 양수가 너무 빨리 터졌거나 전치태반, 유산, 조산 경험이 있는 경우는 성관계를 피하는 게 좋고, 혹시라도 성관계 중이나 후에 통증이 있거나, 피가 보이면 의사의 검진이 받아야 한다. 또 임신 중 성관계에서는 가슴애무를 지나치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자의 가슴은 아주 민감한 성감대이고, 유두애무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자궁 수축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신 중에는 오럴섹스를 하면서 여성의 질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색전증으로 쇼크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임신 중이나 출산 후의 성관계에는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정액 안의 호르몬이 자궁 수축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고, 출산 후에는 다시 월경이 시작되기 전에 임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출산 후에는 아기를 가질 계획이 없다면 꼭 콘돔이나 IUD 등의 피임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출산 후에는 대략 6개월이 지나 몸이 회복됐다는 의사의 검진을 받은 후 서서히 성생활을 재개하는 것이 좋다. 보통 첫 성관계에서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수유 시에는 호르몬이 바뀌어 질 건조가 심해지므로 윤활제를 충분히 사용하는 것이 좋다. 출산 후 성관계 없이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섹스리스로 가는 경우가 많으니 애무, 안아 주기 등으로 성생활을 재개하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 출산 후의 아내가 성생활을 재개하도록 하려면 육아를 함께하고, 그녀가 잠을 충분히 자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녀 모두 충분한 잠은 성호르몬의 배출을 돕는데, 특히 아기를 낳고 나면 엄마로서의 일이 너무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지며 무엇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게 된다. 그때 함께 책임지려 하고, 나누려 하지 않으면 아내는 남편을 평생 원망할 수도 있다.

출산 후 아내는 성욕이 저하되고, 성 흥분도 낮아진다. 하지만 자신과 아기를 잘 돌보려고 하고, 자기를 우선으로 배려하는 남편에게 친밀감과 사랑을 느끼지 않을 아내는 없다. 육아를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남편을 둔 아내는 심리적·육체적 회복이 빠르다.

부모가 돼 새로운 생명을 맞고 함께 기르면서 부부의 동지애는 깊어진다. 그에 더해 서로 자주 만지고, 쓰다듬고, 안고, 애무하고, 서로 격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연인으로서의 책무와 권리도 포기하지 않기를.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5호(2020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