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최근 정치권에서 수년째 급증한 미성년자 증여 이슈를 연달아 쏟아내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같은 이른 증여가 자녀들에게 독이 아닌 득이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미성년자 증여, ‘독’ 아닌 ‘약’ 되려면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먼 훗날의 상속보다는 증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 미성년자에 대한 증여 증가는 단연 두드러진다. 국세청이 지난 10월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증여세 결정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미성년자에게 증여된 총 재산가액은 1조2579억 원으로 2016년 6848억 원 대비 83.7% 증가했고, 관련 증여세는 1254억 원에서 2732억 원으로 117.9% 늘었다.

또한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미성년자는 2016년 1891명에서 2018년 2684명으로, 이들이 낸 부동산 임대소득은 380억 원에서 548억 원으로 급증했다. 뿐만 아니다. 미성년자에게 돌아간 배당소득 규모가 4년 새 2배로 늘어났다. 미성년자 한 사람이 받은 배당소득은 2018년 기준 145만 원에 달했고, 특히 돌도 지나지 않은 0세 아기들은 1인당 평균 294만 원씩 배당을 받기도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5일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미성년자 연령별 배당소득 현황’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의 배당소득은 2647억 원으로 2014년 대비 114.6% 급증했다.

배당소득을 받은 미성년자는 2018년 18만2281명으로 2014년(16만5506명)보다 10.1% 늘었다. 특히 태어나자마자 배당을 받은 ‘0세 주주’의 수는 2014년 155명에서 2018년 373명으로 4년 만에 14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성년자 증여, ‘독’ 아닌 ‘약’ 되려면
‘0세 주주’의 배당소득은 같은 기간 2억5300만 원에서 10억9800만 원으로 4배 넘게 증가했다. 양 의원은 “미성년자 배당소득 증가는 늘어난 조기 증여의 영향으로 판단된다”며 “미성년자 상속·증여에 대한 과세가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국세청이 꼼꼼하게 관찰·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른 증여, 부작용 막으려면
이처럼 미성년자를 위한 증여가 더욱 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 상당수는 ‘부동산 정책 변화에 따른 세금 부담의 증가’를 주된 요인으로 보고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최근 부동산 보유 부담을 낮추기 위한 증여 상담이 많다. 특히, 다주택자들의 세금 부담이 커지고,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들이 막히면서 증여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지난 7월에 부동산 증여가 급증한 것은 부동산 증여에 따른 취득세 변경이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서건석 헤리티지코리아 대표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보유 비용이 증가하고, 매도 조건 등이 쉽지 않아 자연스럽게 증여 증가로 이어지는 것 같다”며 “실제로 미성년자 증여는 자산을 이어주어 향후 절세의 근거가 되고, 자산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상속재산을 줄여 상속세 절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자산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부동산의 경우, 과표를 낮추기 위해 매각보다 증여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단, 주의할 점도 적잖다. 단순히 절세효과만을 고려해 무분별하게 이른 증여를 할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배 센터장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증여가 증가하는 현상은 다분히 정책 변화에 따른 절세효과만 따져서 증여 시기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재산을 받을 자녀의 상황은 고려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분히 자녀의 재무적 상황, 재산 관리 능력 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증여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듯 자녀들이 갑작스럽게 재산을 물려받아 우리 사회 통념상의 평균적 노력 없이도 재산을 취득하게 되면 삶의 노력과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조차 극복할 의지가 없어지는 경향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증여는 자녀의 경제활동에 밑거름이 되면서 절세효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덜컥 큰 재산이 생김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데 힘이 떨어지는 계기가 된다면 지혜라고 생각했던 증여가 자녀에겐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증여는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고 오랫동안 재산이 지켜지거나 삶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좋을 것입니다.”

재무 관리에 대한 지혜만큼이나 인성 교육도 중요하다. 자본력이 소유나 결정을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인성이 결여된다면 물질주의의 ‘자본력’만 맹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재산은 사용하는 것에 따라 좋은 도구일 뿐이고 이를 행복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또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어떤 것이 바른 것인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 대표는 “재산의 증여에서도 부모의 일방적 절세 실행이 아닌 왜 하는지, 어떻게 키워 가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자녀들과 소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자녀의 삶에 영향이 가는 재산이 되며 최종적으로는 미래의 상속재산이기 때문이다. 증여를 통해 세금을 줄이고 관리함으로써 보이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보이지 않는 바닷속 빙산 무게처럼 상속의 가치가 확대되고 중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성년자 증여, ‘독’ 아닌 ‘약’ 되려면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