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사회가 변하면서 가족의 형태와 역할, 지위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법과 제도가 그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다. 그 예로 제사주재자 결정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가족 변화, 제사주재자 결정 괜찮나
호주제도가 유지되고 있었던 시기에 우리 관습에 의하면 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와 관계없이 적장자가 제사상속인이 됐다. 하지만 이런 관습은 발전된 사회와 맞지 않았고, 특히 호주제가 폐지되고 새로운 가족제도가 만들어지면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이에 2008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공동상속인들의 협의에 의해 제사주재자를 결정해야 하고, 만약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남의 아들, 즉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했다.

종래 대법원은 공동상속인 중 종손이 있다면 그에게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상 종손이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해 왔다.

일반적으로 종손이라 함은 ‘장자(長子)계의 남자손으로서 적장자(嫡長子)’를 지칭하고, 종래 우리의 관습은 상속인들 간 협의와 무관하게 우선 적장자가 제사상속인이 되고 적장자가 없는 경우에는 적손(嫡孫), 중자(衆子), 서자(庶子), 중손(衆孫), 서손(庶孫)의 순서로 제사상속인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기존의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종래의 관습에 터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한 사회 생활규범으로서의 관습 내지 관습법이라고 할지라도,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전체 법질서에 반하여 정당성과 합리성이 없는 때에는 이를 법적 규범으로 삼아 법원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2003. 7. 24. 선고 2001다48781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고 하면서 기존의 대법원 판결을 폐기하고, 원칙적으로 제자주재자를 공동상속인들의 협의에 의해 정하라고 판시한 것이다.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는 논리로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했다.

【 1 】 우리 민법은 사적 자치의 원칙을 그 기본 원리로 하고 있고, 그동안 상속인들 사이의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민법이 개정돼 왔으며, 통상 하나의 법률관계에서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견해가 대립될 경우에는 일단 협의에 의하는 것이 가장 조리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공동상속인들이 있는 경우에는 그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제사주재자가 정해져야 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 2 】 그러나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남의 아들, 즉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원래 제사용 재산은 전통적인 제사상속제도에 수반되는 것으로서 선조에 대한 제사의 계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통의 상징이 되는 정신적·문화적 가치를 갖는 특별한 재산으로서 가문의 자랑이자 종족 단결의 매개물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중략)

▲그런데 제사와 제사용 재산의 승계제도는 과거의 조상숭배를 통한 부계혈족 중심의 가계계승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서, 오늘날 제사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위와 같은 종래의 가계계승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개인별 가치관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 있고 지역별 전통이나 문화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장남 내지 장손자가 제사주재자가 되고 아들이 없으면 딸이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점에 관한 인식이 널리 용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동등한 조건과 지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장자를 우선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이자 일반적인 사회통념이며, 위와 같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나 전통이 현재의 전체 법질서에 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 ‘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전수안’은 제사주재자는 우선 공동상속인들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다수결에 의해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고, ‘대법관 김영란, 대법관 김지형’은 민법 제1008조의 3에 정한 제사주재자라 함은 조리에 비추어 제사용 재산을 승계받아 제사를 주재하기에 가장 적합한 공동상속인을 의미하는데, 공동상속인 중 누가 제사주재자로 가장 적합한 것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제사주재자의 지위에 관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민법 제1008조의 3의 문언적 해석과 그 입법 취지에 충실하면서도 인격의 존엄과 남녀의 평등을 기본으로 하고 가정평화와 친족상조의 미풍양속을 유지·향상한다고 하는 가사에 관한 소송의 이념 및 다양한 관련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 사건에서 당사자들의 주장의 당부를 심리·판단해 결정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따르면, 한 남성이 혼인해 딸 2명을 두었으나 그 이후 다른 여자와 내연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들을 낳고 사망하자 내연관계의 여성이 주도해 장례를 치르며 망인의 유해를 한 추모공원에 봉안한 사례에서, 망인의 유해는 제사용 재산이니 원칙적으로 공동상속인들(배우자, 딸 2명, 내연관계에서 태어난 아들) 사이의 협의에 의하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연관계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귀속된다. 이와 같은 결론에 동의하는가.

이처럼 협의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사안에서 다수의견과 같이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에게 우선적으로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반대의견과 같이 다수결에 의해 정하거나 법원이 결정해야 옳을까. 어떤 결론이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한 현 가족제도와 현재 사회 구성원들의 법적 확신과 일치할까.

다시 한 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읽어본다. “어떤 경우에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것인지에 관하여는, 제사제도가 관습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관습을 고려하되, 여기에서의 관습은 과거의 관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형성돼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관습을 말하므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화와 그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관습을 고려해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