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현대의 대도시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타워나 고층 건물을 지어 랜드마크로 삼는다. 그 꼭대기에는 으레 도시를 충분히 조망할 수 있는 전망 시설이 설치돼 있다. 도시의 전망대 중에서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세운 지 13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세계 제일의 인기를 자랑한다. 에펠탑에 올라 내려다보면 굽이진 센강과 다리들, 반듯하게 정리된 도로와 공원들이 보이고, 빼곡히 들어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서 유명한 역사적 건축물을 찾을 수 있다. 에펠탑은 기술과 도시의 발전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근대적 시각을 일깨운 점에서 문화적 의미가 큰 기념물이다.


로베르 들로네, 샹 드 마르스: 에펠탑, 1911년, 시카고미술관
로베르 들로네, 샹 드 마르스: 에펠탑, 1911년, 시카고미술관
근대 프랑스의 역동적 기념비
에펠탑은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 때 박람회장의 거대한 출입구로 세워졌다. 1889년은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로, 프랑스에서는 혁명정신의 건재함과 국가의 발전상을 만방에 알리고자 성대한 세계박람회를 기획했다. 이 야심 찬 행사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혁신적인 건축물이 필요했다.


채택된 것은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뾰족한 탑 모양의 대형 구조물이었다. 설계자 이름을 따 에펠탑이라 불렸는데, 철재만을 연결해 무려 300m나 쌓아 올린 엄청난 규모였다. 기존의 건축물과 전혀 다른 이 탑은 너무나 생소하고 위험해 보여 계획 때부터 격렬한 반대와 질타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아래쪽 개구부에 아치를 부착해 고전적 미감을 주고 20년 후에 철거한다는 전제로 탑이 완공됐다.


당시 에펠탑은 역사상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이었고, 그 기록은 이후 4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이 놀라운 탑을 보기 위해 외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점차 에펠탑은 흉물이 아니라 첨단 건축물로서 프랑스를 대표하며 대외적인 자랑거리가 됐다. 20년이 지났을 때 에펠탑은 통신에 유용하다는 이유로 철거를 면하고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예술가와 철학자들도 에펠탑에서 큰 영감을 받아 중요한 관점과 사상들을 발전시켰다. 특히 로베르 들로네(1885~1941년)는 근 20년 동안 에펠탑을 수십 번 그려서 ‘에펠탑 화가’로 불린다. 들로네가 1911년에 그린 <샹 드 마르스: 에펠탑>을 보면, 붉은색 거대한 탑이 잿빛 건물들에 둘러싸여 중심에서 솟구쳐 오른다. 탑 주위로 밝은 빛이 둥글거나 각진 파편처럼 내려와 구조물을 선명하게 밝히며, 동시에 윤곽선을 흩어놓는다. 마치 해체했다가 재조립한 것처럼 탑의 부분들이 어긋나 있다. 한 지점에서 대상을 바라본 단일 시점이 아니라 다양한 위치에서 본 여러 시점을 한꺼번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회화에서 다시점(多視點)의 표현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피카소와 브라크가 적극적으로 실험해 분석적 입체주의로 발전시켰다. 그 영향은 미술계에 널리 퍼져 들로네의 에펠탑 그림에도 이어졌다. 들로네는 다시점 기법을 써서 에펠탑이 태양빛 속에서 아른거리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대상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빛과 시점의 이동에 따라 운동감이 생긴다.


붉은 에펠탑은 근대 프랑스 역사와 사회의 역동성을 반영하는 기념비로 활기차게 묘사됐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림 속 에너지와 부서지고 일그러진 형태들에서 오히려 대재앙이나 종말을 상상하기도 했다. 전례 없이 높은 에펠탑이 대중에게 자부심을 주기도 했지만,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었다.


로베르 들로네, 에펠탑과 샹 드 마르스 공원, 1922년, 워싱턴 D.C. 허시혼미술관
로베르 들로네, 에펠탑과 샹 드 마르스 공원, 1922년, 워싱턴 D.C. 허시혼미술관
에펠탑이 생산한 이중적 시각
한편 들로네의 그림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특징적 시각들을 나타낸다. 화면 양쪽 끝에 높은 회색 건물들이 잘려 있어, 도시의 골목이나 창문에서 에펠탑을 올려다본 듯한 느낌을 준다. 파리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는 에펠탑은 복잡한 거리 끝에서 행인의 시선을 끄는 초점이 된다. 반면에 화면 아래쪽 에펠탑 밑에는 건물들이 작게 그려져 있는데, 높은 데서 내려다본 조감법적 시각을 암시한다.


근대에 유행하기 시작한 이 수직적 시각은 도시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고 장악하는 권력의 시선이다. 에펠탑이야말로 그곳에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시를 마음껏 관찰하면서 시각의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이처럼 파리는 대도시로 발전하면서 늘어나는 구경거리로 대중의 시선을 끊임없이 생산했다. 시선들이 교차하는 시각의 중심에는 에펠탑이라는 뚜렷한 상징이 있었다.


후기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에펠탑이 일으키는 이중적 시각을 지적하며 하나의 사물이 갖는 의미는 언제나 유동적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바르트는 우리가 에펠탑을 바라보면 그것은 사물이 되고, 에펠탑을 방문하면 이번엔 망루가 돼 그 밑에 사물들이 모인다고 말한다.


즉, 에펠탑은 보이는 대상이자 보는 눈이다. 여기서는 ‘보기’와 ‘보이기’라는 능동과 수동의 분리가 사라지며, 시각의 주체와 객체라는 구분도 모호해진다. 이 모호함은 탑의 의미가 고정되지 않아 완전히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또 다른 의미가 무한히 첨가될 수 있다. 새로 부여된 의미는 신화를 이뤄 에펠탑을 충만한 기념비로 만들어 준다.


들로네는 1922년에 에펠탑을 훨씬 더 높은 시점에서 다시 그렸다. <에펠탑과 샹 드 마르스 공원>에는 밝은 초록빛 공원에 갈색 에펠탑이 서 있다. 작은 산책로들이 구불구불 노란색 곡선을 그리고, 둘레에 굵직한 대로들이 사선으로 힘차게 뻗어 있다. 잡지에 실린 항공사진을 거의 그대로 모방해 그린 것이지만 사실적이라기보다는 구성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대상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면서 그것은 하나의 풍경이 되고 장식이 돼 점점 가상에 가까워진다. 에펠탑은 높이가 축소되고 단순한 사각형과 선들로 평면화됐다. 화면 위로 솟구쳐 잘려 나간 거대한 그림자만이 탑의 실체를 짐작하게 한다.


유명한 이야기로, 에펠탑을 싫어한 소설가 모파상은 종종 에펠탑에 가 식사를 했다고 한다. 거기라야 파리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인용해 바르트는 에펠탑이 파리 전체 시각 시스템의 유일한 맹점이라고 설명했다. 맹점은 시각의 불완전함을 증명하지만, 오히려 수많은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에펠탑은 도시 한가운데서 보고 보이는 시선들의 즐거운 놀이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 자신을 볼 수는 없다. 거울을 보고서야 자신을 인식하는 우리처럼 말이다. 들로네의 1922년 그림 속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본 실상보다 태양이 간접적으로 생산한 허상이 오히려 현실을 더 잘 반영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마치 우리의 불완전한 시각의 유희를 멀리서 지켜보는 미지의 눈동자가 있는 것처럼. 에펠탑은 근대 사회의 역사적 기념비일 뿐 아니라 ‘본다는 것’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부상한 시대의 시각적 기념비로서 큰 의미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