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86호 (2020년 11월)

에밀 갈레, 유리공예의 꽃을 피우다

기사입력 2020.10.29 오후 04:33


[한경 머니=백정림 갤러리 이고 대표·<앤티크의 발견> 저자 | 사진 서범세 기자] 찬란하고 아찔하다, 아르누보(art nouveau). 유리공예 르네상스 시절이여. 


에밀 갈레, 유리공예의 꽃을 피우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 핑크톤이 아름다운 화병(아르누보), 핸드 블로운 무라노 수프 볼과 접시(아르누보), 스털링 홀더의 티잔(아르데코), 에나멜 핸드 페인팅의 무라노 와인잔(빈티지).


예술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아르누보라는 말은 아마도 몇 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새로운 예술’이란 뜻으로 19세기 말엽에 시작된 이 예술사조는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미술 운동이다.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는 그 일이 생겨나게 되는 필연성이 있기 마련이다. 아르누보라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기까지 유럽은 격동의 시간을 겪고 있었다. 19세기 중엽에 인류는 제2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많은 문명의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유리공예였다.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많은 중산층들이 생겼고 귀족들의 전유물처럼 이루어졌던 집 안 꾸미기에 대한 욕구가 폭넓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유리공예품 또한 만국박람회를 통해 인기가 상승했다.  


천재 유리공예가의 탄생


인류의 역사에서 유리는 항상 그 시대 최고 수준의 기술, 예술과 연계돼 새로운 문화를 낳았고,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와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융성 또한 유리 산업에 근간이 있었다. 


15세기경부터 새로 개발된 베네치아의 유리거울은 당시 유럽의 귀부인들을 열광하게 했다. 종래의 희미했던 금속거울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평면거울이었던 베네치아의 거울은 당시 최고 화가의 그림 값보다 비쌌다. 예를 들면 당대의 거장인 라파엘로 그림의 3배나 됐다고 한다. 이렇게 귀했던 유리의 몸값은 19세기 중엽에 유리 생산에 획기적 발전이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이어졌다. 


1845년이 돼서야 지금의 특소세 격인 유리세가 폐지됐고, 귀족들의 생활을 따라하는 것을 성공한 삶의 상징으로 여겼던 중산층들도 유리로 된 공예품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많은 돈을 지불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르누보는 유리공예의 르네상스였다.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유리공예 작품들이 짧은 기간 안에 대량 출현했던 시기다. 사실 오랫동안 유럽에서는 음습한 날씨 때문에 야채와 생화를 즐기는 계층이 극도로 제한돼 왔었다. 즉, 꽃과 싱싱한 야채를 식탁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값비싼 판유리로 만든 온실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유리의 가격이 어느 정도 내려가자 유리에 대한 오랜 열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며 유리공예가 주역이 되는 아르누보라는 예술사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바탕으로 해 새로움을 추구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예술 운동인 아르누보는 모든 예술 분야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특히 에밀 갈레, 르네 랄리크와 같은 걸출한 유리공예가를 낳게 됐다.


갈레는 낭시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유리그릇과 도자기를 제작하는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서 자랐다. 그는 화학과 식물학에도 정통했고 이는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화려하게 꽃피워졌다. 그가 제작한 유리그릇의 특징은 불투명 또는 반투명의 색유리에 색의 효과가 잘 나타나게 층을 달리해 장식한 카메오 기법에 있다. 


그는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자포니즘(Japonisme)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작가로, 주요 모티브로 식물이나 곤충, 새 등을 활용해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갈레는 대단히 많은 화병과 샐러드 볼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당시 수요가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귀족 신분이 아니면서 부를 가지게 된 신흥 부자들은 자신의 집을 화려한 유리공예로 꾸미고 식탁은 생화와 샐러드를 담는 화병과 볼로 꾸몄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도자기와 함께 유리공예품은 당시 집 안의 장식품으로 상당한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고, 이렇게 탄탄한 수요는 아르누보의 발전을 지탱하는 저력이 됐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미술품을 수집할 수 있는 대중 사회가 출현하게 된 새로운 세기인 19세기에 아르누보는 그렇게 융성해져 갔다. 


에밀 갈레, 유리공예의 꽃을 피우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에칭 와인잔(아르누보), 스털링 디테일의 컴포트(아르누보), 스털링 오버레이 샐러드 볼(아르누보), 핸드 블로운 무라노 수프 볼과 접시(아르누보). 컷카드 기법으로 스털링을 장식한 루비레드 저그(아르누보), 에나멜 핸드 페인팅의 무라노 와인잔(빈티지). 파스텔톤의 화병(아르누보), 로코코 시대의 풍경을 그린 티잔(빅토리안), 앰버색 물컵(아르누보). 


유리공예, 변화무쌍한 예술로 진화   


갈레의 활동 무대였던 낭시는 옛 로렌공국의 주도로서 로코코 예술이 꽃피웠던 곳이었다. 그는 이런 낭시의 로코코 전통을 바탕으로 로코코적 요소가 가미된 감각적 자연주의와 자연 세부 묘사를 주된 특징으로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주로 세 가지 색으로 보이는 갈레의 작품은 유리를 4~5겹 첩첩히 쌓아 만든 독창적인 카메오 글라스 기법으로 제작됐다. 


갈레의 디자인은 유리를 변화무쌍한 예술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다. 그전까지 유리는 칠이나 그림을 그려 넣는 정적이고 다채롭지 못한 재료였으나, 이후 유리는 색상을 무한정으로 만들어 내면서 다양한 내부 패턴과 표면 질감을 지닌 대상으로 전환됐다. 


갈레는 자신의 유리공예소에 1885년부터 가구 제작과 상감세공 공방을 추가해 상업적으로 경영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그의 사망 후인 1904년까지 공예소는 지속적으로 운영됐다. 이미 1894년 갈레는 유리 제품처럼 가구도 생산의 여러 단계를 기계화함으로써 산업화를 꾀했다. 


그곳에서 책상, 가리개, 작은 걸상, 테이블 세트, 조그만 원탁 등 소품이 매일 생산됐다. 오늘날에도 자연미와 곡선미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을 유럽 곳곳에서 접할 수 있으며, 화려했던 아르누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 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 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그램 yigo_gallery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6호(2020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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