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 아이비(39)가 올해로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이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기간 그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뮤지컬을 통해 삶의 참 의미와 행복을 배워 가고 있다는 배우 아이비를 만나 이야길 나눠 봤다.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
아이비 “뮤지컬은 저를 성장시키는 학교죠”
아이비의 시작은 거대한 섬광 같았다. 그 빛이 너무나 뜨겁고, 강렬해서 아직도 아이비 하면 으레 ‘섹시 디바’의 잔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잖다. 하지만 2005년 연예계에 입문한 그가 가수보다 왕성하게 활동한 영역은 ‘뮤지컬’이다.

2010년 <키스 미, 케이트>로 뮤지컬에 입문한 아이비는 이후 뮤지컬 <시카고>, <고스트>, <유린타운>, <위키드>, <아이다>, <벤허>,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레드북>, <지킬 앤 하이드>, <렌트> 등에서 탁월한 가창력과 댄스 실력, 풍부한 감정 연기를 쏟아 내며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다.

올해만 해도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세 작품에 연이어 활약하면서 데뷔 10주년,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다.

이번 연말도 7년 만에 재회한 뮤지컬 <고스트> 공연으로 분주하다. <고스트>는 죽음을 초월한 샘 위트(패트릭 스웨이지 분)와 몰리 젠슨(데미 무어 분)의 절절한 사랑을 그린 영화 <사랑과 영혼>(1990년)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011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탄생했다. 2013년 우리나라에서 초연돼 애틋한 러브스토리는 물론 최첨단 무대 연출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이비는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여자 주인공 몰리 역으로 분해 전 시즌보다 깊어진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아이비 “뮤지컬은 저를 성장시키는 학교죠”
하지만 이처럼 빛나는 커리어와 달리 아이비 본인이 진짜 내면의 행복을 느낀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2년 전 운동과 카운슬링(면담)을 시작해, ‘나’를 찾는 여정에 집중하면서 이제야 진정한 의미의 성장통을 지나고 있다는 아이비. 그래서일까. 인터뷰 내내 특유의 명랑하고, 호쾌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가면서도 내면의 이야기를 꺼낼 때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중함이 묻어났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인간미 넘치는 배우 아이비의 이야기를 담아 봤다.

우선, <고스트>에 다시 참여하게 된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스트>는 무대의 스케일이나 연출력 등에 감탄해요. 지금도 리허설을 할 때마다 신기해요. 그만큼 자부심도 크고요. 무엇보다 이 어려운 시기에 <고스트>란 대형 작품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쁩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요.”

이번 시즌에서 달라진 점이나 연기하는 데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작품보다는 함께하는 각각의 배우에게 변화가 있었죠. 그 사이 주원이는 군대를 갔다 왔고, 우형 오빠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됐어요. 또 초연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던 지연이가 이젠 성숙미가 느껴지는 배우로 성장했고요. 뭐랄까. 다들 좀 더 무르익은 느낌이에요. 변하지 않은 건 팀워크죠. 새로 만난 분들과도 마치 오래 공연했던 것처럼 편해요. 사실 뮤지컬 <고스트>는 워낙 기술적으로 촘촘하게 이뤄진 작품이라 하나라도 큐를 놓치면 실수가 커지거든요. 그래서 지난 시즌엔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신경을 쓰기보다 공연 중 실수하면 안 된다는 걱정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그 긴장의 끈은 놓지 않고 있지만 확실히 전 시즌에 비해서는 여유가 생겼어요.”

몰리 역을 맡으셨는데 본인과 닮거나 다른 점이 있다면요.
“다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작에 비해 뮤지컬 속 몰리는 자신감이 넘치고 사랑하는 연인의 부재 속에서 다시 새로운 삶으로 돌아가고자 강인하게 노력하는 인물이죠. 그런 모습이 저와 외연은 좀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내면은 상당히 달라요. 사실 전 의외로 자신감이 부족하거든요.”
아이비 “뮤지컬은 저를 성장시키는 학교죠”
정말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네. 다들 그렇게 보시더라고요. 저도 예전에 제가 늘 당당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최근 들어 제 자신에 대해 깊숙이 알아갈수록 저란 사람은 자신감도 좀 부족하고, 나약한 구석도 많다는 걸 깨달았죠. 이제야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겪는 인생의 고민과 번뇌를 마주한 셈이죠. 저는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부모님과 떨어져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고, 가수로 데뷔했어요.

데뷔하자마자 스타가 되고 주목을 받다 보니 늘 주변엔 제게 참된 조언을 해 주는 사람보다는 그저 칭찬만 해 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말들에 도태되기 쉬운 게 연예인의 삶이기도 하죠. 그렇게 10여 년을 살다 보니 저도 제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이지를 몰랐던 것 같아요. 다행히 그런 고민들을 이제라도 하고 있고, 뮤지컬이란 장르에 도전해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걸 배웠죠. 뮤지컬이 제겐 학교가 돼 준 셈이죠.”

올해 뮤지컬 데뷔는 10년이 됐어요. 특히 감사했던 순간이 있나요.
“요즘이요. 관객들에겐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그 마음이 더 절실해졌죠. 무엇보다 제가 관객 입장이 돼 보니 더 잘 알겠더라고요. 올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봤어요. 그때 처음 마스크를 쓰고 관극을 한 셈인데 긴 공연 시간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게 생각보다 힘들고 무척 답답한 일이더라고요. 동시에 이러한 수고를 감내하면서까지 공연장을 찾아주시는 관객들의 열정이 정말 대단하고,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뮤지컬 배우로 살아간다는 게 진짜 제 사명처럼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려고 해요.”

뮤지컬을 하면서 여전히 이건 정말 힘들다하는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전 기사에서 공연 전에 안정제를 복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뮤지컬 <아이다>를 공연하면서 무대공포증이 생겨서 약을 복용해 왔는데, 지금도 혹시 몰라서 공연 전에 복용해요. 2년 전 <시카고> 공연 당시 복용하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가 큰일이 생길 뻔 했거든요. 당시 <시카고>는 제겐 많이 익숙해진 작품이라 약을 안 먹고 무대에 올라도 괜찮겠다 싶어서 그냥 무대에 올랐는데 일종의 공황장애가 왔나 봐요. 심지어 무대에서 제가 틀린 줄도 몰랐죠.

그냥 뭔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아예 멈췄어요. 다행히 그때 무대에서 함께 있던 선배들의 자연스런 애드리브로 상황을 가까스로 모면하고 나서야 제가 잘못된 걸 알았어요. 그래서 그 신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가자마자 물도 없이 약을 씹어 먹었죠. 그때 이후로는 만약을 대비해서 무대에 서기 전에 약을 복용해요. 그리고 2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심리 상담도 받고 있어요. 솔직히 지금은 걱정이 없는 편인 데도 1~2주에 한번은 꼭 가요. 건강은 관리하는 게 중요하단 걸 알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내면이 건강해야 위기가 왔을 때 대처할 수 있더라고요.”

원래는 운동도 엄청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나요.
“네. 과거에는 운동을 극렬히 싫어했어요. 실제로 한 달 이상 꾸준히 어떤 운동을 해 본 적이 없었죠. 그렇게 운동을 싫어하면서도 그나마 몸매 관리가 됐던 건 제가 활동량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만으로는 유지가 안 됐어요. 특히, <시카고>를 하면서 몸을 잘 안 풀고 (안무를) 하다가 골반 쪽을 다쳤는데 한동안 아빠다리(양반다리)로 앉지 못했어요. 그래서 친한 동생 추천으로 2년 반 전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꾸역꾸역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아빠다리도 되고,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일주일에 2~3회 정도는 꾸준히 운동해요. 그렇게 운동도 하고, 상담도 받고, 지난해에 경기도 양평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요. 지금의 삶이 훨씬 더 편하고, 행복해요.”

가장 화려했던 가수 시절보다요.
“그럼요. 가수를 할 때는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많아요. 제 생활이 하나도 없고,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일단, 너무 피곤했고, 행복했던 기억을 말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반면에 뮤지컬을 시작하고선 얻은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정말 잘 한 선택이자, 축복이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목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제가 의외로 바른생활을 하는 편이에요. 술을 마시면 몸이 바로 처져서 거의 안 마시죠. 딱히 어떤 관리를 한다기보다 굳이 나쁜 걸 안 하니까 당연히 몸에 무리가 안 오고, 저절로 관리가 되는 것 같아요. 잠도 무조건 하루에 8시간 이상은 꼭 자고요.”

10년 후, 20년 차 뮤지컬 배우 아이비는 어떤 배우가 돼 있을까요. 그리고 그쯤 하고 싶은 배역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글쎄요. 10년 뒤에도 뮤지컬을 하고 있다면 정말 좋겠죠. 사실 앞으로 맡고 싶은 배역을 특정해서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래도 만약 10년 뒤에도 이 일을 한다면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맘마미아>의 도나 역을 해 보고 싶습니다. 최정원 선배와 더블 캐스트 될 날이 올 수 있을까요?(웃음)”

본인의 유튜브를 통해 예전에 쇼핑했던 신발들을 소개하며, 신발 취향이 참 ‘한결같다’고 했던 게 기억나요. 신발 외에도 한결같은 자신만의 취향을 꼽자면 무엇일까요.
“식성이 아닐까요. 소시지나 햄, 고기 등 육류를 엄청 좋아해요. 몸에 좋은 식습관은 아닌데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먹어서 그런지 바꾸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요즘에는 쇼핑을 진짜 거의 안 해요. 대부분 일에 집중하고, 쉬는 날엔 양평 집에 가 있으니 굳이 비싼 물건을 살 필요가 없더라고요. 매일 슬리퍼나 살충제 같은 것만 구매해요.(웃음)”

혹시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특별히 버킷리스트를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나마 최근 생긴 소원이 있다면 제가 강아지를 키우는데 노후에는 ‘강아지운동장’ 같은 시설을 운영해 보고 싶어요. 지금 제 유일한 꿈이에요. 실제로 애견인들이 강아지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외부시설이 의외로 많지 않아요. 카페는 그나마 있는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찾기 힘들죠. 그래서인지 나중에 애견인을 위한 일종의 힐링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비 “뮤지컬은 저를 성장시키는 학교죠”
행복하기 위해 이것만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요.
“살다 보니 완벽한 행복은 없더라고요. 어렸을 땐 그런 행복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 들수록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만, 오히려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가진 능력을 나누고, 발휘했을 때 얻는 보람과 행복이 굉장히 가치 있고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를 이용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해요. 가능한 제 재능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팬들과 한경 머니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모두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요. 그리고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들이 가족과 시간을 더 자주 보내셨을 텐데, (힘든 한 해였지만) 한편으론 그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길 바랍니다. 더불어 올 연말에 사랑하는 분들과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고스트>도 많이들 보러 오세요. 그리고 풍성한 새해 되세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7호(2020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