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vs 빅테크, 후불결제 전쟁

[한경 머니 기고=길재식 전자신문 기자]2021년부터 도입되는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를 놓고 지불결제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대대적인 공세를 기존 여신업계가 어느 정도 막아 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최근 간편결제로 불리는 각종 ‘OO페이’가 출현하면서 지불결제 시장이 뜨겁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비대면 결제가 인기를 끌면서 스마트폰 내에 깔려 있는 간편결제로 결제하는 소비자가 급증세다. 삼성페이를 비롯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기업이 지불결제 시장에서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역으로 지불결제 시장을 장악했던 여신금융업계는 타격을 받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한발 더 나아가 소액 후불결제를 2021년부터 시행한다. 전통 여신금융사(신용카드사)가 점유했던 플라스틱 카드 대신 결제대금을 일정 기간 이후 납입할 수 있는 후불결제 서비스가 출현한다. 이에 정보통신기술(ICT) 플랫폼을 보유한 새로운 전자금융사업자들이 출격을 준비 중이다.

반면, 카드업계는 후불결제 도입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자칫 미성년자 등의 부정 결제 행위가 늘어날 수 있고, 연체에 대한 대안 마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여신 라이선스가 없는 빅테크에 또 하나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준다는 역차별 주장을 펼친다.
카드 vs 빅테크, 후불결제 전쟁

◆새로운 전장 ‘후불결제’, 국내 시장 영향은

후불결제는 국내 결제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줄 촉매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우선, 지불결제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흔히 ‘OO페이’에 선불 충전을 한 뒤 사용하거나 신용카드를 등록해 쓰는 형태가 99%다. 아니면 계좌이체를 하는 방법도 있다.

반면 후불결제 서비스가 출현하면 소비자는 내 계좌에 돈이 없어도,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않아도 물건을 먼저 구입할 수 있다. 결제대금은 일정 기간 이후에 납입하면 된다. 별도의 연회비나 결제대금 이자도 없기 때문에 현명한 소비가 가능하다. 평균 30일 이내에 쓴 금액을 상환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금융당국은 디지털금융 혁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핵심 내용 중 하나가 30만 원 한도로 후불결제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30만 원이라는 적은 액수로 후불결제를 시작하지만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력은 클 것으로 보인다.

라이선스를 보유한 금융사가 아니어도 이제 자체 결제 플랫폼을 보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해결 과제는 남아 있다. 이 정책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전자금융거래법’ 전면 개정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후불결제 시대가 열리면 1300만 명에 이르는 신파일러(thin filer, 금융 이력 부족자) 계층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신파일러는 신용등급 4등급 이하, 신용카드 등을 만들 수 없는 계층을 의미한다. 사회초년생이나 전업주부, 저소득층이 해당된다. 이들은 현재 현금성 결제수단만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금융 소외계층으로 불리기도 한다. 후불결제는 이를 포용하는 대안 결제 수단이 될 수 있다.
마이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는 신용평가 모델도 구축할 수 있다. 마이데이터는 소비자가 자신의 신용정보나 금융상품을 자유자재로 관리할 수 있는 이른바 ‘포켓 금융(pocket finance)’을 의미한다. 은행이나 보험사, 카드사 등에 흩어져 있는 금융정보를 제한 없이 접근이 가능해지고, 금융사는 이 데이터를 융합해 특화된 정보관리나 자산관리, 신용관리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카드 거래내역이나 투자정보 등을 분석해 파격적인 금융상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전송 환경을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후불결제로 집적되는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또 하나의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 수 있고 대안 금융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카드 vs 빅테크, 후불결제 전쟁

◆취약계층 대안 금융으로 후불결제 부상

신파일러가 금융시장으로 포용되면 많은 변화가 촉발된다. 새로운 금융 이력 형성을 통한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는 물론 마이데이터 산업과 연계한 대안 신용평가 시스템을 만들어 경제 불황으로 힘든 소상공인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신개념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다.

소액 후불결제 기능은 일반 소비자 쇼핑 등 지불결제 편의성을 확대할 뿐 아니라 금융 취약계층을 위한 보조적인 전용 결제 수단이 된다. 이 서비스가 혁신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금융 이력이 없는 이들의 상거래 척도로 재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개인 신용평가는 금융권 신용평가기관(CB)이 제공하는 금융 이력만으로 한도가 정해지고 대출 등 여신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후불결제 시장이 열리면 정보기술(IT) 요소를 융합해 후불결제가 보유한 다양한 결제 데이터를 결합할 수 있다.

신용카드를 만들지 못하는 고객이더라도 대안 신용평가 시스템으로 분석하면 우량 고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을 창출, 소비자 각 개인의 안전한 소비 활동도 지원하고 금융 취약계층을 양지로 끌어올려 사회 비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

후불결제는 간편결제를 제공하는 핀테크(Fin- Tech) 기업을 통해 대금을 선지급 받는 구조다. 신용카드 등에 비해 자금 회전이 빠르고, 매출에서 발생하는 대손 우려도 감소한다. 후불결제 서비스 근간이 되는 비금융 데이터 활용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새로운 금융상품, 서비스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 글로벌 기업, 후불결제 전장으로

한국보다 앞서 미국, 유럽, 호주, 중국 등 해외는 이미 후불결제가 대중화됐다. 새 경제주체로 부상한 ‘MZ(밀레니얼+Z: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세대’를 겨냥해 전통 금융서비스 대비 파격적이고 차별화된 후불결제 플랫폼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스웨덴 클라르나(Klarna), 호주 에프터페이(Afterpay), 중국 알리페이 화베이·징둥닷컴 바이타오, 미국 캐비지(Kabbage)가 대표적인 후불결제 주도 기업들이다.

클라르나는 세계 14개국에 13만 개 후불결제 가맹점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의류 브랜드 H&M과 제휴해 온·오프라인 후불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큰 성공을 거뒀다. 기업가치만 55억 달러(약 6조7000억 원)에 달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 소액대출 기업 화베이도 2019년 미국에 진출, 알리바바닷컴 도매상을 위한 기업 간 거래(B2B) 후불경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유럽에도 진출해 알리익스프레스 고객을 위한 후불결제 서비스를 오픈했다. 추후 후불결제는 국경 없는 크로스보더와 간편송금 영역까지 기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후불결제는 ‘가치소비’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지불결제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MZ세대는 욜로(YOLO)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머지않아 가계소비를 주도하는 핵심 고객층이 될 것이다. 이들은 사회 초년부터 학자금 대출이나 모기지 비용 부담을 안고 생활해 왔다. 부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

한국도 후불결제 도입을 위해 다양한 가이드라인과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법 개정으로 서비스가 시작되더라도 채무 불이행 등 검증할 사안이 많다. 지금이라도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오픈 전에 시스템에 대한 점검에 나서야 한다. 해외 진출이 가능한 혁신 금융 서비스 등 정책적 지원으로 후불결제 시장 경쟁력을 확보, 국내 핀테크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8호(2021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