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88호 (2021년 01월)

기록소년단 BTS, 그래미를 바라보다

기사입력 2020.12.24 오전 07:58


[한경 머니 기고 = 문현선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대학원 초빙교수]한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명제를 두고 찬반 여론이 나뉜 적이 있다. 물론, 어느 쪽도 100% 정답이라 말할 수 없다. 단, 현재 전 세계 대중음악의 K-팝 인베이전의 최전방에 있는 방탄소년단(BTS)은 양쪽 명제를 다 충족하는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다. 과연 BTS의 저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사진 한국경제DB
기록소년단 BTS, 그래미를 바라보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 4년 연속 수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3년 연속 수상, 그리고 마침내 미국의 대중음악 산업을 대표할 뿐 아니라 사실상 거의 전 세계 대중음악에서 가장 위상이 높고 권위 있는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손꼽히는 그래미 시상식까지도 2020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보이밴드(World’s Hottest Boy Band)’의 디지털 싱글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로 발표했다. 비틀스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아시아 동쪽의 작은 기획사(Big Hit)’에서 출발한 힙합 아이돌 그룹 BTS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에서 온 이 작은 소년들(these little boys from Korea)’은 이제 팝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그랜드슬램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고,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들도 너 나 없이 ‘K-팝 인베이전(invasion, 침공)’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보이밴드’라는 수식어에 일종의 조롱이 섞여 있다고 말한다. K-팝은 여전히 반쪽의 성공일 뿐이며 음악 자체의 생명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공장형 아이돌 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 산업적인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대중음악의 유구한 역사와 음악적 깊이, 장르적 다양성을 내세우는 미국에서 K-팝의 경쟁력은 너무도 허약하며 지속 가능한 한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음악성의 창의적인 경신이 필요하다고 미심쩍어한다. 


BTS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반한 팬덤의 우세함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폄하하는 헤이터(hater)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의 팝 스타 할시(Halsey)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시원스레 지적한 바와 같이, 그들은 “전체적인 흐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so far behined on the whole movement)” 것이다.
기록소년단 BTS, 그래미를 바라보다

아미는 세상으로부터 방탄을 지킨다
BTS는 2017년부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4년 연속으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았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도 3년 연속으로 ‘페이보릿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이 상들은 기본적으로 SNS 등 온라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에게 수여되며, 쌍방향적 소통을 통한 상호 신뢰 위에 구축된 팬덤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유튜브 사상 24시간 최다 시청 유튜브 비디오 기록 보유, K-팝 가수 최다 억대 뷰 뮤직비디오 기록 보유, 빌보드 역사상 한국 가수 최초 싱글차트 1위 & 한국어 노래 최초 싱글차트 1위 등등 글로벌 슈퍼스타가 된 BTS의 성과는 사실상 그들의 팬덤이 이루어 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TS 멤버들이 “4년 동안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모두 아미(A.M.R.Y)의 덕분”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래서 BTS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공격자들은 이들의 성과가 전적으로 팬덤의 극성에 의존한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음악이 대중을 위한 음악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음악이야말로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팬덤은 대중과 유리된 존재가 아니며, 엄연히 대중 안에 존재하는 그 핵심(core)이다.


2013년 6월 13일 공식적으로 데뷔한 BTS는 여전히 신인이었던 데뷔 이듬해부터 북미 시장에서 착실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개최된 케이콘(KCON)에서 신생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유일한 아이돌 그룹이었던 BTS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례적인 팬덤의 열기는 오히려 적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대규모의 자본과 미디어 네트워크를 확보하지 못한 소규모 기획사는 SNS를 활용한 보다 소박하고도 친밀한 홍보 방식을 선택했고, 외향적인 화려함에 치중하지 않으며 멤버 개개인의 진짜 이야기를 담는 진정성을 내세웠다. 


빅히트 수장인 방시혁 의장의 말에 따르면 “하나의 특수가 보편으로 변화하면서 누군가의 영혼을 울리는 순간”을 기대한 것이다. 그리고 성장 중이었던 이 보이밴드가 토해내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는 메시지들, 거칠지만 솔직한 음악의 위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언어의 장벽을 초월했다. 


친근한 일상의 공유, 소규모 게릴라 콘서트의 밀착된 경험을 통해 밑바닥부터 다져진 코어 팬덤은 곧 ‘나 자신(myself)’으로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소년들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그 꿈의 성취를 위해 결집했다. 


스스로 자기 세대의 ‘방탄’이 돼 거친 세상에 뛰어든 아이돌(idol)을 수호하기 위한 자발적인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검정 티셔츠와 보라색 아미 밤으로 상징되는 방탄의 팬덤은 말 그대로 BTS를 수호하는 군대처럼 보인다. 


BTS는 음악을 통해 팬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고, 아미는 꿈의 성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세상의 편견과 악의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 그래서 BTS의 멤버들은 모든 영광의 순간, 그리고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팬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다. “땡큐, 아미!”


‘다이너마이트’, BTS가 뒤흔들어 놓은 것
지구가 작정하고 인류에게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이른 폭염과 지루한 장마, 끊임없는 역대급 태풍 등이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혔던 2020년 여름, BTS는 팬들을 힘들게 만드는 미적지근한 열기를 한 방에 날려 버리려는 듯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출동했다. 
사랑스러운 외모와 놀라운 재능을 지닌 7명의 멤버가 예사롭지 않은 복고풍의 패션을 자랑하며 동화처럼 상쾌한 비비드 컬러의 배경 속에 나타나 롤링스톤스와 킹콩을 소환하고 앨비스의 로큰롤을 떠오르게 하는 제스처,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발차기(kick)와 문워크(moon walk)를 펼쳐 보일 때, 전 세계의 아미들은 글자 그대로 ‘폭발(boom)’했다. 


“힘든 상황이지만 각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춤과 노래를 통해 자유와 행복을 찾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폭발에는 전성기의 올드 팝과 디스코 그루브를 뜨겁게 사랑하는 미국의 대중들도 동참했다. ‘다이너마이트’의 뮤직비디오를 본 어떤 아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 노래가 전하려는 것이 행복이라면, 그들은 벌써 나를 행복하게 해 줬다”며 그 메시지에 화답했다.


‘다이너마이트’는 명실상부한 서머 송(summer song)으로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미국 대중음악 시장의 공고한 철옹성에 균열을 일으키고 K-팝 진입의 한계들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발랄한 펑크, 경쾌한 비트, 중독적인 훅, 자막이나 번역이 필요 없는 영어 가사를 앞세운 ‘다이너마이트’는 발매 후 24시간 동안 무려 1억110만 뷰를 기록함으로써 3개 부문에서 기네스 신기록을 세웠고, 한국 가수의 노래로는 빌보드 역사상 최초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빌보드 라디오 차트에서도 처음으로 10위 안에 진입했다. 


미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음반 판매량과 주류 라디오 매체에서의 방송 횟수는 특히 중요하다. 이 두 가지는 전통적인 인기의 지표로서 철저한 자본 논리의 지배에 따르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K-팝 기획사들은 장기적으로 라디오 차트를 점유하기가 어려웠다. 
기록소년단 BTS, 그래미를 바라보다
대형 음반사나 프로모터의 유착관계에 의해 결정된 플레이리스트가 차트의 인기를 유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종종 온라인 네트워크에만 의존하고 있는 K-팝은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지닌 산업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는 이런 구조를 보기 좋게 흔들어 놓았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K-팝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BTS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따라 추게 만들었다.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은 이제 음반이나 라디오 같은 전통적인 지표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으며, 때로는 보다 발 빠르게 시장에서의 선점을 돕고 있다. 이런 변화를 계속 무시하는 것은 결국 전체적인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라이프 고즈 온’, 이 시대 청춘의 메시지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봄은 기다림을 몰라서/ 눈치 없이 와 버렸어/ 발자국이 지워진 거리/ 여기 넘어져 있는 나/ 혼자 가네 시간이/ 미안해 말도 없이, yeah”
‘다이너마이트’로 지금은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행복’을 외쳤던 소년들은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에서는 조금 더 사적이고 내밀한 속삭임을 들려준다. 언제나 즐거운 척 ‘행복’한 춤과 노래를 선물했지만, 그들 자신의 일상 역시 전과는 달라졌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끝이 보이지 않아/ 출구가 있긴 할까/ 발이 떼지질 않아, 않아 오/ 잠시 두 눈을 감아/ 여기 내 손을 잡아/ 저 미래로 달아나자”


2020년 새해 벽두부터 휘몰아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광풍은 비행기 티켓만 있으면 지구촌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시대를 끝장냈고, 전 세계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며 콘서트 투어를 했던 소년들은 방 안에 모여 앉아 배달된 피자를 먹으며 게임에 몰두하다 나른해진다. 


‘일상’이었던 콘서트 투어는 이제 가장 비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이 재난이 도대체 언제나 끝날지,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한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게 하는 ‘감기’ 속에서도 시간은 가고 또 하루가 지나간다. 아프고 두렵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일어난다. 


돌아보니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일상’을 기억하며 조심스럽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아직은 막막하지만 희망이란 원래 절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하얀 조약돌 같은 것이다. BTS는 그렇게 아직 포기하지 않은 희망을 말한다.


“이 음악을 빌려 너에게 나 전할게(ey)/ 사람들은 말해 세상이 다 변했대(yo)/ 음음음음, 다행히도 우리 사이는 아직 여태 안 변했네/ 늘 하던 시작과 끝 ‘안녕’이란 말로 오늘과 내일을 또 함께 이어보자고/ (우우우우우) 멈춰 있지만 어둠에 숨지 마/ 빛은 또 떠오르니깐”


아미가 아니더라도 ‘라이프 고즈 온’을 듣는 모든 사람은 ‘지금, 여기, 나 자신’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듣고 위안을 얻는다. 그것은 갈가리 찢어진 일상의 이쪽과 저쪽을 연결시켜 주고, 스스로를 격리하는 일상에 고립된 사람들의 영혼을 다독이는 선한 영향력이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사랑하십시오(I love myself. You love yourself).” 자기 자신 외에는 믿을 것이 없는 이 시대에 청춘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없을 것이다.


올드스쿨 힙합, K-팝이 되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던 비틀스는 단정하지만 개성 있는 패션이나 모범생 같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대중음악의 신화가 된 것이 아니다. 비틀스의 음악에는 이미 상업화된 로큰롤에서는 사라진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추구했던 록이라는 음악 장르의 반(反)문화적 지향이 그들 세대의 시대정신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저항정신이 브리티시록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 속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K-pop의 아이콘 BTS>를 쓴 안드리안 베슬리는 SNS라는 21세기의 테크놀로지를 타고 미국 대중음악 시장에 틈입하기 시작한 K-팝의 기원을 ‘서태지와 아이들’로 소급한다.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영미 팝 스타에게 열광했던 대중음악 팬덤을 고스란히 이 새로운 ‘우리’ 아이돌에게 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실 이들이 선보인 랩댄스 음악은 당시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는 상당히 낯선 장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 타이틀 곡 ‘난 알아요’는 4명의 심사위원에게서 10점 만점에 평균 7.8점이라는 역대 최하점을 받았다. 그러나 대중음악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결국 대중이 내린다. 당시의 청춘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했다. 


‘난 알아요’가 실린 1집 앨범은 데뷔 음반으로는 최다 판매량인 17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댄스 그룹은 신인상에서 가수왕까지 그 해 가요계의 모든 상을 휩쓸었으며, 네임리더인 서태지는 훗날 ‘문화대통령’이라 일컬어지게 됐다. 


서태지는 록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댄스로 전향하면서는 랩을 선택했다. 흥미롭게도, 댄스와 랩의 결합은 이후 K-팝의 음악적인 기초가 됐다. 록과 힙합은 서로 다른 장르지만 둘 다 반문화적 성격을 강하게 띠면서 기성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고 청춘의 입장을 대변한다. 
한 마디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발언의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청춘들의 장르다. 힙합아이돌을 표방하는 BTS의 음악이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나 K-팝 아이돌의 시조새라 불리는 H.O.T의 ‘전사의 후예’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지 모른다. 언제나 새로운 세대의 대중음악을 이끄는 것은 할 말이 있는 청춘인 것이다. 


로큰롤이 바다 건너 영국 땅에서 비틀스를 만났을 때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꽃이 피어났던 것처럼, 힙합과 댄스가 이 땅에서 절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서 BTS가 이끄는 K-팝 인베이전의 싹도 틔워졌을 뿐이다. 그러니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보이밴드, BTS’가 미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면, 그 자랑스러운 성취에 대해 그동안 그 작은 싹을 틔워 낼 토양을 만들어 온 모든 이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문현선 교수는…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대학원 초빙교수이자 인문연구모임 문이원 연구원, 이야기 공작소 파수(破守) 스토리텔러 & 캐릭터 프로파일러다. <무협>, <삶에서 앎으로 앎에서 삶으로>를 썼고, 다수의 동양 고전과 중국 문학을 우리 글로 옮기고 풀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는 작업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문턱이 낮은 인문학’, ‘알고 싶어지는 인간학’을 향한 모험을 즐기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8호(2021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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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12-24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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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188
연금부자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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