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순인 LG전자 책임연구원·<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 | 사진 한국경제DB·보잉·지페이 제공] ‘코이’라는 잉어가 있다. 이 잉어는 작은 어항에서는 8cm, 연못에서는 25cm, 강물에서는 120cm까지 자란다. 생태계의 한계가 성장의 크기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알 수 있다. 모빌리티 생태계가 한계를 넓힌다. 시간도 잡고 효율도 잡고 환경오염도 잡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20분 걸리는 플라잉카가 온다.

[CEO가 알아야 할 IT 트렌드] 에어 모빌리티, 성공의 조건은
(사진) 포르쉐-보잉 플라잉카.

키포인트는 ‘수직이착륙·소음·배터리’

자동차 회사, 항공기 회사, 정보기술(IT) 회사, 공유자동차 회사, 반도체 회사 등 현재 플라잉카를 개발 중인 기업은 굉장히 많다. 복잡한 도시에서 플라잉카를 운영하려면 세 가지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수직이착륙, 소음, 배터리다.

도심형 플라잉카는 활주로가 없어도 현 위치에서 수직이착륙이 돼야 한다. 플라잉카를 운영하기 위해 활주로 공간까지 따로 필요하다면 복잡한 도심에서 공간 효율성이 너무 떨어질 테고, 플라잉카 상용화는 어렵다. 플라잉카는 일반 자동차 수준으로 신속하고 유연하게 승객이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어야 한다.

소음 역시 기존 항공기에 비해 월등히 적어야 한다. 도시에 수많은 플라잉카가 날아다닐 때 항공기 수준의 소음이 난다면 사실상 상용화가 불가능하다. 현재 많은 회사들이 헬기 대비 반 이상으로 소음을 줄이고 있다. 전기 플라잉카라면 소음을 잡는 데 더욱 유리하다.

배터리 충전이 얼마나 빨리 되는지, 한 번 충전으로 얼마나 갈 수 있는지, 그리고 배터리가 얼마나 무거운지에 따라 플라잉카의 성능이 갈린다. 그렇다고 무조건 더 강력한 배터리를 만들면 폭발의 위험이 높아지고, 무게도 더해져서 플라잉카의 기동성에 문제가 생긴다. 이 요소들을 다 만족시키면서 배터리를 최적화하는 데 현재 전문가들이 가장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미국 항공기 회사 보잉(Boeing)은 2019년 1월 23일 버지니아주의 한 공항에서 자율주행 항공기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길이 9m, 폭 8.5m의 프로토타입 항공기는 수직으로 떠올라 약 80㎞를 비행했다. 프랑스 항공기 회사 에어버스(Airbus)는 2019년 5월에 4인승 드론 택시인 시티에어버스(CityAirbus)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시티에어버스는 시속 120㎞로 80㎞를 주행할 수 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공항과 도심 간 이동에 시티에어버스가 활용될 예정이다.

다임러, 아우디, 포르셰,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 길리자동차,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를 비롯해 제조업체, IT 업체들이 플라잉카 시장에 뛰어들었다. 도심의 교통 체증 및 전 세계적인 환경문제에 플라잉카가 해결사가 될 것이다.

한국 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개발 중인 플라잉카가 상용화되면 서울시 자동차의 평균 이동시간을 약 70% 줄일 수 있다. 보잉은 출퇴근 시간이 90분 이상 소요되는 도시의 교통 정체를 플라잉카로 약 25% 완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주는 것도 당연하다.

카메라 기술, 라이다 기술, 레이더 기술 등 센서 기술은 기본이요, 주변 물체가 사람인지 자동차인지 빌딩인지 나무인지 인식하고 분석하는 기술은 에어 모빌리티도 동일하게 필요하다. 드론과 플라잉카는 궁극적으로 무인 자율주행이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플라잉카는 도로 자율주행차에 비해 상용화가 쉽다. 도로 자율주행차는 도로 상황, 다른 차량의 상황, 사람 상황, 교통 시스템 상황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고도의 센싱 기술, 인공지능(AI) 기술, 네트워크 기술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플라잉카는 복잡한 도로가 아닌 탁 트인 하늘을 난다. 설정된 항로만 이탈하지 않으면 주변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늘은 지상보다 복잡하지 않고 인프라 구축 규모도 적은 데다 중앙관제소가 통제하기 용이하다. 그래서 자율주행 에어택시가 완전 자율주행차보다 더 빨리 상용화될 가능성도 높다. 관건은 수직이착륙 기술, 소음, 배터리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는 데 달렸다. 전문가들은 플라잉카가 2025년 상용화되리라 예상한다.

하이브리드 플라잉카는 도로를 달릴 수도 있고 하늘을 날 수도 있는 자동차다. 도로에서는 네 바퀴로 달리다가 공중에 뜨면 접혀 있던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는 이 콘셉트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꿈꾸던 ‘탈것의 로망’이었다.

중국 자동차 기업인 길리 테크놀로지그룹 산하 에어로푸지아 테크놀로지(Aerofugia Technology)의 최고경영자(CEO)는 “순수 전기, 수직이착륙, 자율비행이 항공 산업의 미래”라며 “우리의 목표는 도로를 달리고 하늘을 나는 ‘하이브리드 카’를 만드는 것이다”고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도 비행과 도로 주행을 필요에 따라 전환하며 이동하는 플라잉카 드론을 연구하고 있다.

[CEO가 알아야 할 IT 트렌드] 에어 모빌리티, 성공의 조건은
(사진) 포르쉐-보잉 플라잉카.

에어 모빌리티가 성공하려면

드론과 플라잉카가 성공하려면 공통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하다. 5세대(5G) 이동통신, 배터리, 온디맨드(on-demand)다. 그동안 들어왔던 모빌리티 키워드와 큰 차이가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만큼 모빌리티 산업이 꽃을 피우는 데 필요한 기본 기술은 동일하다. 앞으로 어떤 모빌리티가 대세가 되건 이 세 가지는 중요하다.

① 5G

드론이나 플라잉카가 다른 운송수단 및 교통 시스템과 상호 통신하려면 블루투스, 와이파이(Wi-Fi), 위성통신, 롱텀에볼루션(LTE) 혹은 5G 중 하나에 연결돼야 한다. 블루투스는 느리고 고용량 자료 전송이 곤란하다. 고정밀지도(HD map)처럼 자율주행에 필수인 자료 전송이 어렵다. 와이파이는 고속이지만 통신 범위가 제한적이다. 위성통신은 간섭이 없지만 비용이 비싸서 공공 모빌리티 상용화에 맞지 않다. LTE는 이 모든 제한이 없지만 결정적으로 데이터 송신 지연 때문에 무인 자율주행을 할 수준이 아니다.

5G는? 문제가 없다. 딱이다. 고용량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고 4K, 8K 등 고화질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다. 화질이 선명할 뿐 아니라 사람, 동물, 기기, 자동차, 배, 비행기 등 물체를 정확히 구분해서 인식할 수 있다. 5G는 사물을 보고 판단, 액션하기까지 지연 시간이 1밀리세컨드(ms) 즉, 1000분의 1초밖에 안 걸린다. 초저지연이다. 무인 자율주행에서 5G의 존재 이유다. 쉽게 말하면 시속 10km 속도로 비행하는 드론이 갑자기 멈춰야 할 경우 LTE는 3m를 비행한 뒤 멈추지만 5G는 30cm 내에서 멈춘다. 앞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 급히 멈춰야 하는 경우라면 드론이건 자동차건 플라잉카건 다 마찬가지로 5G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② 배터리

배터리는 전기자동차 시대에 단연 핫이슈다. 전기차, 드론, 플라잉카, 하이브리드 플라잉카, 그리고 로봇도 배터리가 필요하다. 배터리 용량이 충분해서 한 번 충전하고 최대한 멀리 운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배터리가 가벼워서 기동성도 좋아야 한다.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배터리업계의 미션이다.
배터리 시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활황의 끝을 알 수 없다. 궁극적으로 ‘자율주행 전기 공유차’가 미래 모빌리티의 콘셉트이기 때문이다. 모든 모빌리티는 전기 배터리가 필요할 것이다. 배터리 용량, 배터리 무게, 배터리 소재, 배터리 충전 속도, 배터리 충전 장소 인프라, 배터리 안전성, 배터리 호환성이 중요해지고, 이를 다루는 업계가 주목받게 된다.
이 전기 배터리 중 리튬황 배터리라는 것이 있다. 리튬황 배터리는 기존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하는 차세대 배터리 가운데 하나다. 리튬황 배터리는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1.5배 이상 높으면서도 무게는 가볍다. 희귀 금속이 사용되지 않아 가격도 저렴하다. 2020년 8월 30일 LG화학이 국내 최초로 이 차세대 배터리를 활용한 무인기 최고 고도 비행에 성공했다. LG화학은 2025년부터 리튬황 배터리 양산에 돌입한다.

[CEO가 알아야 할 IT 트렌드] 에어 모빌리티, 성공의 조건은
(사진) 농업용 드론 전문 업체 지페이의 드론이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

③ 온디맨드

에어 모빌리티는 우리의 이상형 모빌리티다. 더 안전하고, 더 빠르고, 더 저렴하고, 더 편리하고, 더 날씨에 상관없고, 더 지속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이상적인 모빌리티에 조건 하나가 더 생겼다. 바로 ‘온디맨드’다. 자동차가 소유가 아닌 공유, 제품이 아닌 서비스가 됐다. 이제는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수단을 선택해서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에게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가 되려면 고객의 마음을 꿰뚫어 적재적소에서 ‘온디맨드’형으로 선택지를 주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하이브리드 플라잉카처럼 평소에는 도로를 달리다가 필요할 때는 바로 수직이착륙이 되는 것도 대표적인 유연함이다.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는 자율주행차를 타고 가다가 특정 지점에서는 내가 가지 않고 드론을 날릴 수도 있어야 한다.

언택트 시대에 드론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사람이 직접 가는 대신 드론을 띄워 물품을 배송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감염 위험도 줄어든다. 비대면 방역, 비대면 음식 배달, 비대면 의약품 배달에 드론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2020년 두산 그룹은 공적 마스크 판매처가 없는 제주도 부속 섬인 가파도, 마라도, 비양도에 드론을 띄워 마스크를 배송했다. 배송 거리는 왕복 20㎞이고 배송한 마스크 무게는 3㎏이었다. 소형 제품이기에 다른 운송수단보다 드론이 비용 면에서도 최적의 선택이었다. 미국 아마존 제품도 86%가 5파운드 이하다. 소량·경량 제품이라면 사람의 배송, 자율주행차 배송, 자율주행 로봇 배송보다 드론 배송이 압도적으로 간편하고 빠르고 효율적이다.

드론이 농업에서는 어떤 효과를 낼까. 사람은 사무실이나 집에 있고 드론은 농경지에 순찰을 나간다. 드론은 카메라로 현장을 찍어서 스마트폰이나 개인용컴퓨터(PC)에 전송한다. 사람은 현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지금 농약을 더 뿌려야 하는지, 물을 줘야 하는지, 언제쯤 수확할지, 야생 동물 때문에 농경지가 훼손되지는 않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의 시간과 노동력이 절감된다. 헬리콥터를 쓰면 어떠냐고 물으신다면 드론은 헬리콥터보다 더 가볍고, 더 빠르고, 인건비와 운영비도 훨씬 적게 든다.

사실 드론은 활용되지 않는 분야를 찾는 것이 더 어렵다. 화재 현장에 급히 파견가야 하는 기자 대신 카메라를 들고 가는 드론, 수해 현장의 길을 찾아주기 위해 상공에서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드론, 바다를 순찰하는 드론, 긴급 의약품 배송을 하는 드론, 도심에서 보안 가이드를 하는 드론, 강추위·태풍·폭우를 뚫고 배달하는 드론 등 그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도로망이 구축돼 있지 않거나 현재 도로망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에 드론이 최선의 대안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8호(2021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