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배원준 세계화폐연구소장은 그저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지금은 화폐전문가로 신한은행 외환업무지원부에서 위조지폐를 감별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은행업무를 보면서 자연히 세계 각국 화폐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국내 은행이 취급하는 전세계 260여 개국 모든 화폐 종류를 수집하고 있다.

배원준 세계화폐연구소장 “전세계 헌 돈 수집, 숨은 이야기 다양해”

“원래 그저 친절한 은행원이었어요. 제가 처음 은행에 입행할 때만 해도 해외여행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기였거든요. 자연히 다른 나라의 돈을 만지기는 쉽지 않았죠. 간혹 들어오는 외국 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연구할수록 그 매력에 빠지게 됐죠.”


“화폐를 몇 장이나 모으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배 소장은 당혹스러워했다. 정확하게 세어 본 적이 없다는 것. 다만 예전에 모 기업의 후원으로 대형 운동장에서 화폐를 전시하자는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보유하고 있던 모든 화폐를 전시하기에는 축구장 크기의 대형 운동장이 부족했던 것이다.


“44개국 모든 화폐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테마별로, 주제별로 따로 화폐를 수집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이 담긴 화폐’를 주제로 한다든가, ‘동물을 주제로 한 화폐’나 ‘건축물이 있는 화폐’ 등 주제를 넓혀 가다 보면 전시하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한 화폐를 여러 장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대신 그는 신한은행 광교점 영업부 1층의 로비 공간에 작은 화폐박물관을 꾸렸다. 정기적으로 주제를 달리해 가지고 있는 화폐를 전시하는 것. 모든 일은 배 소장 혼자서 계획하고 진행한다.


“주말에 혼자 나와서 화폐를 교체해요. 전시장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의 화폐의 가치를 보여 주는 표도 상설전시 중인데 분기별로 매매기준율에 따라 금액을 조정해 줘야 하죠. 간단치만은 않은 일이지만 제가 모은 화폐를 전시하는 일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은행에서 근무하니 다른 수집가보다는 해외 화폐 수집이 수월하지 않았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이 무색하게 그는 화폐 수집에 몸품, 발품을 많이 팔았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 이베이에서도 거래를 많이 하지만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각국의 대사관을 거치거나 여행자를 통해 수집을 해야만 했던 것.


특히나 체코 화폐는 그에게 더욱 각별하다. 체코 화폐는 현지에서 민박업을 하는 한인을 통해 구했다. 가장 큰 화폐 단위인 5000코루나(약 25만 원)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잘 통용되지 않아 은행지점에서도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한국은행 격인 체코은행으로 인편을 보내서 구해야 했다. 가장 큰 화폐 단위까지 구입하는 데 당시 금액으로 총 30여만 원이 들었는데 한국까지 배송 오는 운송비만 20만 원이 넘게 책정됐다. 배만큼 큰 배꼽인 셈이었다. 배 소장은 결국 인편을 수소문했는데 항공사 기장을 수소문한 끝에 한국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그가 수소문한 항공사 기장도 항공편이 취소돼 항공사 기장이 부탁한 승무원을 통해 어렵사리 한국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체코의 한인에게 화폐를 구입하고 그의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7개월 남짓이 걸렸다.


“원래 제가 수집한 화폐는 잘 되팔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요. 그래도 가끔 스위스 프랑처럼 화폐가치가 큰 것은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팔았다가 다시 사기도 해요. 하지만 체코 화폐만은 절대로 팔지 않아요. 이 돈에 담긴 저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각국 대사관을 통한 수집도 해외 화폐를 수집하는 주요 통로가 됐다. 현재는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많아 대사관을 통하는 여행자가 없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을 위해서는 각국의 비자가 꼭 필요했던 것. 대사관을 통해 해외에 다녀오는 사람을 수소문해 남는 화폐를 사거나 대사관 직원에게 직접 화폐를 사기도 했다.


아프리카 감비아(Gambia) 대사가 줬던 화폐도 그가 소중히 여기는 화폐 중 하나다.
“제가 화폐 수집가로 전 세계 화폐를 수집한다고 하니 감비아 대사께서 지갑을 열어 감비아 지폐 석 장을 꺼내 주셨어요. 전 제가 돈을 드릴 테니까 나중에 대사님이 감비아에 다녀오실 때 다른 돈도 얻어 오실 수 있는지를 부탁드렸었지요. 하지만 감비아 대사님은 10년 넘게 본국에 돌아가지 않고 계신 걸 그때야 알았죠. 감비아는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대사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자기 부담으로 다녀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비아까지 오가는 항공료 부담 때문에 가족과도 떨어진 채 10년간 타지 생활을 하고 계신 거였죠. 제가 받은 감비아 지폐에는 그런 사연이 숨어 있었습니다.”

(위) 2008년에 발행된 네팔의 1000루피. 네팔왕조가 붕괴된 후 민주정권이 들어서자 갸넨드라 왕의 얼굴을 화폐에서 지웠다. 오른쪽 위조감식 부분에는 급히 카네이션 그림을 넣었다.  (아래) 1973년도에 발행한 1만 원권. 지폐 왼쪽의 위조감식 부분에 앞면의 세종대왕 초상이 드러나야 하지만 석가여래좌상이 비쳐 보인다.
(위) 2008년에 발행된 네팔의 1000루피. 네팔왕조가 붕괴된 후 민주정권이 들어서자 갸넨드라 왕의 얼굴을 화폐에서 지웠다. 오른쪽 위조감식 부분에는 급히 카네이션 그림을 넣었다. (아래) 1973년도에 발행한 1만 원권. 지폐 왼쪽의 위조감식 부분에 앞면의 세종대왕 초상이 드러나야 하지만 석가여래좌상이 비쳐 보인다.
대부분의 화폐수집가들은 이렇게까지 수집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 화폐수입상을 통해 거래를 하면 저렴한 가격에도 충분히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현지에서 사용했던 화폐를 모으는 것을 더욱 중시한다.


“저는 사용하지 않은 돈은 죽은 돈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조금 더러울지언정 현지인들이 사용하고 경제를 흘러가게 만든 돈이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돈이라고 느끼죠. 또 어차피 제가 모은 돈들은 제가 만져 보고 살펴보고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새 돈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수집한 화폐는 그저 수집함에 넣어만 두지 않는다. 그의 수집 활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화폐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이 시작되는 것. 화폐에 담긴 그림을 찾아 인물을 찾고 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기도 한다. 또 이전에 가지고 있던 화폐와 비교하면서 달라진 점을 찾는 것도 주요 임무다.


“달라진 화폐들을 찾는데 주로 위조 감식을 위한 것들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죠. 띠를 넣거나 위조 방지 스티커를 넣는 거예요.”


왕조나 정권이 바뀌어 그림이 달라지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네팔의 화폐는 네팔 왕족이 그려져 있었는데 2001년 왕세자 총기 난사 사건으로 모든 왕족이 멸족을 당했다. 그 후 국왕의 동생이었던 갸넨드라 왕자가 새로운 왕좌에 올라 새로운 화폐의 얼굴을 담당했다. 그러나 갸넨드라 왕의 초상화가 네팔 화폐에 찍힌 건 단 7년에 불과했다. 2008년 왕정이 폐지돼 네팔연방민주공화국으로 선포돼 화폐에서도 왕의 얼굴이 종적을 감추게 된 것이다. 원래 있던 갸넨드라 왕의 얼굴 대신 에베레스트산으로 대체됐다. 다만 워낙 시급히 왕권이 폐지된 탓에 용지는 교체하지 못했고 위조 감식을 위해 비춰진 면에는 급하게 카네이션을 프린트해 갸넨드라 왕의 얼굴을 지워야 했다.


“‘왜 이곳에 카네이션이 있지’ 하고 연구하다 보면 숨겨진 역사를 만날 수 있게 돼요. 이게 바로 화폐 수집으로 얻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1973년부터 1만 원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는데 원래는 지금의 앞면 세종대왕, 뒷면 근정전이 아닌 앞면 석굴암, 뒷면 불국사로 제작됐다. 당시 인쇄 기술만 있고 용지에 그림을 넣는 기술은 없던 우리는 석가여래좌상과 불국사 그림이 입혀진 용지를 일본으로부터 제작해 수입했다. 대통령의 발행 허가까지 났지만 불교계에서 반발했다. 어찌 돈에 신성한 불상을 넣느냐는 것이었다. 반대로 기독교계에서도 불상을 넣는 것이 종교적으로 공평하지 못하다고 반대했다. 결국 석굴암 대신 세종대왕 초상화로 도안을 바꿔서 발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수입한 용지는 버릴 수 없었기에 밝은 면에 비춰 보면 세종대왕 얼굴 대신 석굴암 보살상이 보이게 됐다.


돈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배 소장. 그는 국내에서도 새로운 화폐가 만들어지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럼 그가 원하는 새로운 도안은 어떤 그림일까.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한 게 있어요. 돈은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기 마련이잖아요. 한 나라의 문화가 그대로 담겨 있는 거죠. 저는 여기에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담으면 어떨까 생각해요. 원화를 가지고 돌아가는 외국인들이 ‘여기 봐봐. 나는 이 나라의 여름에 다녀갔는데 너무 아름다웠어. 이 나라는 사계절이 모두 뚜렷하고 아름다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을까요?”


배 소장은 화폐수집가를 넘어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신한은행에서 위조화폐감별사로 활약하며 실제적인 업무를 통해 단련한 것들을 토대로 위조지폐 감별에 관한 백과서적을 집필할 만큼 전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인 연구 영역을 넘어서 보다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대학원(경찰행정학)에 진학했다. “혹자들은 얘기해요. 돈이 곧 없어질거라고. 제가 공부하는 것들이 무의미한 일이 될 거라고요. 하지만 저는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자신해요. 아무리 전자화폐가 통용되는 세상이지만 인간의 소유 욕구는 어쨌든 돈을 만져 보고 가져 보고 싶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단골집에 가서 절대 카드 안 쓰는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웃음)


배원준 소장은…
위조지폐 감별 전문가로서 2008년 제일은행에서 명예퇴직을 한 후 신한은행 외환사업부에 근무하고 있으며, 세계화폐연구소장이다. 1999년 금융 분야 신지식금융인 선정됐고, 2008년 6월 HSBC로부터 국내 최초 위조지폐 감식 공인인증을 취득했으며, 2008년 10월에 세계화폐연구소를 개소했다. 저서로는
<야호, 돈이다!>, <화폐로 배우는 세계의 문화>, <화폐로 보는 세계의 문화>, <화폐전문가의 위조지폐 감별 이야기>, <주요 외화 위조 식별 교육자료>, <세계화폐감별백과> 등이 있다.

배원준 세계화폐연구소장 “전세계 헌 돈 수집, 숨은 이야기 다양해”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