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소문대로 야무지고, 유쾌했다. 동시에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아름다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이 사람, 배우 정인지(37)를 만났다. 이제는 그동안 품고 있던 질문들의 답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서범세 기자 | 장소 협찬 더웨이카페

예술과 외설을 가르는 건 역시 ‘표현’의 유무 아닐까. 예술이 섬세한 표현의 결과물이라면 외설은 대개 배설에 가깝다. 그렇다. 무언가를 정확히 표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마음인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예술은 그저 뜬구름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겐 예술이 더 필요하다. 내면의 진짜 나를 돌보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 간 연대와 이해가 무너지는 현실에서 문학과 예술이야말로 표현하지 못한 응어리로부터 우리를 정화시키고, 나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무대 안팎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정인지는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고, 노래하고,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지 부지런히 연마하는 배우다. 그간 그가 맡았던 배역들의 면면만 봐도 배우로서의 고민과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007년부터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연기자 데뷔는 1998년) 오른 그는 다양한 작품을 하며 내공을 쌓아 왔다.

특히, 많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분기점으로 연극 <보도지침>과 <추남, 미녀>에 이어 2018년 최고의 화제작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지난해 창작 뮤지컬 <난설>, <테레즈 라캥>에서 주역을 맡으며 변화와 진화를 거듭했다. 최근에는 뮤지컬 <마리 퀴리>에 이어 창작 뮤지컬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와 데미안으로 맹활약 중이다.

세기의 문호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극화한 뮤지컬 <데미안>은 고정된 배역 없이 2명의 배우가 싱클레어도 되고 데미안도 되는가 하면 불량한 친구 크로머,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 싱클레어의 아버지 등도 되는 독특한 형식의 2인 뮤지컬이다. 캐릭터들은 남녀 구분도 없다. 작품은 한 존재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면의 얼굴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려 낸다. 과연 정인지가 표현하고자 하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어떤 모습일까. 어느덧 데뷔 14년 차를 맞이한 그가 마주하고 있는 삶의 조각들을 인터뷰를 통해 조목조목 엿들어 봤다.

올해도 뮤지컬 <마리 퀴리>에 이어 <데미안>, 그리고 <언체인>까지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지난해 말 떠난 영국 런던 여행이 큰 도움이 됐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공연들을 보면서 그간 제가 숙제처럼 가지고 있던 질문들의 답을 풀었죠. 그래서인지 전혀 지치지 않고 올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어떤 질문의 답을 찾았나요.
“언제부턴가 배우로서 제가 너무 ‘결과 지향적’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작품이나 연기가) 어떻게 보일까에만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국내 공연 환경과 시스템에 기인한 점도 있어요. 대개 작품들이 짧은 시간 내 만들어지고 장기간 공연하기 어려운 실정인지라 배우들이 너무 급급하게 무대에 올라가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 지난해까지 달리다 보니까 무언가 허무함과 헛헛함이 느껴졌어요. 이건 단순히 배우가 그 배역을 끝내면서 느끼는 감정이라기보다 결과만을 좇다가 마주한 공허함이랄까요. ‘도대체 어떤 것이 부재해서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라는 질문을 품고 영국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제가 얻은 답은 ‘과정의 부재’더라고요. 영국에서 수많은 공연들을 보며 느낀 건 그들은 매순간 하나의 단어로, 모든 과정을 함께 풀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모든 작품마다 연기면 연기, 연출, 무대조명 하다못해 MD부스까지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 하나의 말을 하고 있더군요. 가령, 한국에서는 창작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단시간에 작품을 잘 만들어서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꼭 해야 할 질문들을 나누지 못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런던에서는 그런 메커니즘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깨달았죠. ‘아, 이게 과정이구나. 내가 정작 한국에서 연습할 때 이런 질문들을 한 적이 없구나. 앞으론 작품 할 때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하고 싶다’라고요. 그게 저한테는 올해 공연하는 데 엄청난 자양분이 되고 있어요.”

뮤지컬 <데미안> 이야길 해 보죠. 일단 캐스팅 형식이 파격적이에요. 2인극이지만 배우들이 ‘데미안’과 ‘싱클레어’를 돌아가면서 맡게 되는데요. 즉, 두 역할 다 숙지해야 하는 셈인데 연습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큰 어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작가님도 이번 작품을 집필하실 때 인물의 성별을 제한하지 않으셨대요. 사실 저도 데미안을 읽었을 때 특정한 성별이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런 모호한 점이 되레 접근하기 쉬웠어요. 다만, 어려움이 있다면 보통은 하나의 역할만 파고들기 때문에 그 배역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더 있죠. 연습이나 공연 기간이 좀 더 길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무엇보다 <데미안>은 고뇌하는 인간 내면을 얘기하는 만큼 연기가 녹록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공연하면서 주안점을 둔 점이 있다면요.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싱클레어는 정말 데미안을 만났을까’, ‘데미안이 진짜 존재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도 매 순간 싱클레어처럼 자신을 인도해 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미안 같은 사람을 찾고 싶잖아요. 저는 그 점을 파고들었어요. 싱클레어는 정말 데미안을 만났을까. 오히려 싱클레어가 성장 과정에서 데미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마치 둘의 관계가 하나의 인격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사유하듯 연기하고자 했죠.”

본인도 싱클레어처럼 내면에 집중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런 순간들이 꾸준히 쌓이는 것 같아요. 가령, 20대에는 정작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조차 몰랐어요. 타인의 선택이 제 취향이 되기도 하고, 또 그 취향을 믿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내적 고민들을 하는) 시간, 경험들을 꾸준히 겪고 나니 진짜 제 취향을 배워 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30대 이후부터는 제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고, 그것에 당당해지고 잘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찌 보면 이것 역시 또 다른 성장 같아요. 비록, 싱클레어와 나이대는 다르지만 저 역시 지금 또 다른 내면의 성장을 하는 거라 생각해요. 이건 결코 어떤 순간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생각, 시간들이 쌓이면서 이렇게 발화되는 것 아닐까요.”

2007년 데뷔하고 벌써 배우 생활 14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 무대에 서면서 가장 행복했던,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에피소드를 꼽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당시 창작 뮤지컬이었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첫 공연이요. 그날 공연 후 관객들이 전석 기립해 주셨죠. 무엇보다 첫 공연 전까지 전 과연 이 작품이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궁금했거든요. 초연인데 상업적 요소가 적은 작품이었고, 노래 가사도 시적 은유가 많은 데다 그 어떤 자극적 요소도 없었어요.

관객들이 이걸 좋아할지 고민이 많은 상태로 무대를 올랐는데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아, 이분들도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관객들도 다양한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싶었죠. 일종의 확인을 받은 순간이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작품을 선정할 때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제어를 두지 않아요. 반대로, 공연하면서 특별히 힘든 순간은 없어요. 무엇보다 한 작품을 위해 많은 분들의 노고가 더해진 만큼 정말 잘 해내야겠다는 의무감, 책임감이 크죠.”

지난해부터는 트위터를 시작하셨는데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인가요.
“네, 맞아요. 팬들과 소통을 하고 싶었고, 소통하기에 적절한 장소를 고민하다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죠. 제가 원래 공연이 끝나면 별다른 퇴근길 이벤트 없이 바로 퇴근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한 팬 분이 지난해 엄청 더운 여름날 (혹시나 하고) 저를 오래 기다리셨대요. 엄청 죄송했죠. 사실 이런 적이 몇 번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느꼈죠. ‘아, 공지를 해 드려야겠다.’

그때부터 간단하게 제 귀갓길 소식을 트위터에 남기면서 팬들과 소통도 해요. 그런데 초반에 제가 트위터에 굉장히 무지했거든요. 맨 처음 퇴근길 공지를 올리고 깜짝 놀란 점이 공지 내용이 엄청 빠르게 퍼지더라고요. 리트윗을 몰랐거든요. 전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 퇴근길 하는 곳에서 팬들이 서로 알음알음 전달해 주는 건 줄 알았어요. (웃음). 그때 ‘아, 세상이 참 빠르구나’ 체감했죠.”

팬들이 지어 준 별명 중 가장 맘에 드는 게 있다면요.
“‘갓인지’라는 별명이요. 지난해 뮤지컬 <난설>을 공연할 때 갓을 써서요(웃음). 정말 맘에 들더라고요.”

아마 중의적 표현이겠죠.
(웃음)

팬은 본인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저에게 팬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력자 느낌이에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도 같이 길을 트는 존재랄까요. 그들과 함께 현재 대학로 문화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요. 가령, 제가 처음 데뷔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 대학로에 오르는 작품의 수나 장르가 다양해지고 많아졌거든요. 지금이야말로 대학로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간극을 벌리는 (저변을 넓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팬들과 저는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동력자인 셈이죠.”

필모그래피마다 선 굵은 배역들이 빼곡하게 차 있어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역할이 없겠지만 유독 더 애착이 가는 역할이 있다면 어떤 역이고, 앞으로 꼭 해 보고 싶은 배역이 있는지 궁금해요. 혹은 만들어 보고 싶은 가상의 배역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최근에 팬들과 댓글로 하는 인터뷰에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과 하이드를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것 외에도 희망사항이 있다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역할을 진짜 해 보고 싶어요. 돈키호테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정말 좋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쾌한 그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거든요. 왜 남자배우들이 저 역을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지금으로선 희망사항이죠. 그래도 요즘은 얼마든지 해 볼 수 있는 시대니까요.”

롤 모델이 되는 배우나 눈에 띄는 신예가 있다면 누군가요.
“저는 현재 동시대에 활동하는 여자배우 모두를 존경해요. 사실 제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여자배우가 마흔이 넘거나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다시 무대에 서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졌죠. 이는 앞서 활동해 온 언니들이 투쟁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물론, 아직도 여자배우들에겐 제약이 많고, 캐스팅 요건의 기준점도 높죠. 노래, 춤, 연기, 발음, 심지어 외모까지 완벽해야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떤 역할을 만나도 완벽히 소화하는 여자배우들이 많아요. 존경스러워요.”

2010년부터 4년간 무대를 떠나서 일반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 공백이 배우 인생에서 플러스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뭘까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현업을 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꿈꿔요. 망설이는 이들에게 응원의 말을 하자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해요. 대개 망설이는 이유가 ‘혹시 늦은 건 아닐까’, ‘아, 이게 나한테 맞을까’라고 두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사실 연기도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 생각이 절 조급하게 만들지 않아요. 제가 배우 활동을 잠시 접고 4년간 다른 일을 할 때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언제고 다른 직업을 만나서 그 길을 가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뭐든 세상에 너무 늦은 건 없더라고요.

무엇보다 저희 이모부가 제겐 귀감이 되셨죠. 이모부는 늘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하세요. 얼마 전 환갑이 되셔서 ‘이모부, 환갑 축하드려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응, 이제부터 나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거야’라고 답하시는 분이죠. 이모부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 제게 주어진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배우를 시작한 지도 이제 고작 20년 지난 거잖아요. 앞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남았죠. 다만, 오랫동안 이 일을 하려면 지금이야말로 제가 더 많이 배워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배우님이 눈을 감고 평화에 관한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어떤 그림이 떠오르나요.
“예전에 아이슬란드에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그렇게 거대한 자연을 본 적은 처음이었죠. 그 광경 앞에서 일종의 공포감까지 느꼈는데 동시에 그 모습이 평화롭기도 했어요. 굉장히 모순적인 감정이죠. 그러면서 문득 ‘아, 내가 뭐라고 아등바등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이 거대한 자연 속에 작은 먼지일 뿐인데’라면서요.

그런 생각을 했던 순간이 굉장히 평화로웠어요. 제가 전쟁을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전쟁의 모순은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피해를 받지 않고, 아이, 여성, 청년 등 사회적 약자에게 아픔이 돌아간다는 거죠. 지금 전 세계적으로 전쟁으로 파생된 난민사태 등을 보면서 도대체 우리 인간이 이토록 서로를 죽이며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요. 더 이상 전쟁을 소비하지 않고 살길 바라죠.”

마지막으로 앞으로 꿈이 있다면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연극, 뮤지컬을 관극하는 데 벽이 좀 높은 것 같아요. 사실 취미활동으로 공연을 보는 게 거창한 건 아닌데 티켓 가격을 생각하면 부담이 되는 부분도 있죠. 따라서 더 많은 관객들이 쉽고, 가깝게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동시에 미국, 영국처럼 좋은 작품들이 장기 공연 할 수 있도록 대관료 문제 등도 개선되길 바라고요. 보태어, 개인적으로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만약 제가 배우를 계속한다면 제 나이대에 맡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배우에게 나이에 맡는 얼굴을 갖고, 그에 맞는 배역을 맡는다는 건 즐겁고 행복한 일이거든요. 저도 그런 배우이자 얼굴을 갖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