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우리나라도 비혼, 동거·동성 커플 등 기존의 결혼제도로 묶을 수 없는 가족 유형이 확산되면서 전통적 개념의 유산 상속과 재산 배분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상속·증여에 관한 법과 제도는 어떻게 개선돼야 할까.

다이내믹 코리아. 이 명성만큼이나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의 외연은 물론, 국민 의식과 사회 구조도 달라지고 있다. 그중 가족의 변신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다. 통상 이성 부모와 자녀 둘 이상의 가족을 보편적인 ‘가족 샘플’로 여겼던 시대는 저물고, 1인 가구, 동거·동성 커플 등 새로운 가족 형태의 연대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각종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부모, 다문화, 비혼 등 다양한 가족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60.1%)이 법령상 가족의 범위를 혼인, 혈연뿐만 아니라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넓히는 데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혼인, 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10명 중 7명(67.5%)꼴로 동의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부모, 다문화, 비혼 등 다양한 가족에 대한 수용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이들을 위한 법과 제도 등 지원정책의 필요성에도 국민 다수가 공감했다. 응답자의 66%는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에 대한 차별 폐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현행 민법에서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아동을 ‘혼인 중 출생자’와 ‘혼인 외 출생자’란 용어로 구분 짓는 것을 폐기해야 한다는 문항에 응답자의 75.6%가 찬성했다.

이정옥 여가부 장관은 “이번 조사를 통해 다양한 가족에 대한 국민들의 수용도가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국민의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 변화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족의 구조와 관련이 깊은 상속법의 시계추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상속법’이 되레 가족 간 분쟁의 불씨를 더욱 지핀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율촌 가업상속팀장인 전영준 변호사는 “현실에서는 유산 상속이나 재산 배분의 개념이 기존 결혼제도에서 벗어나서 변화하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법률상으로 뒷받침되지는 않는다”며 “예외적으로 연금 관련 법령에서 사실혼 배우자를 유족연금의 1순위 수급권자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현행법상으로는 법률상 상속을 막기 위해 생전에 증여를 실행하거나 유언을 하면 되지만, 실무상 아직 증여나 유언이 많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률상 동거인에게 재산 분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전에 증여를 하거나 유언을 해야 하고, 따로 상속인으로서의 지위가 인정되지는 않는다. 또한 사실혼관계에 있는 당사자들(동거인과는 구분되는 개념)이 생전에 사실혼관계를 해소하면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되지만, 사망으로 사실혼관계가 종료된 경우에는 재산분할청구권이나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전 변호사는 “예외적으로 망인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자가 없을 경우, 동거인은 생계를 같이 하고 있었던 자 혹은 특별한 요양간호 등을 한 연고자로서 상속재산의 분여를 청구할 수는 있다”며 “다시 말해 사실혼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것은 타방의 상속을 받고 싶지 않거나 타방에게 상속을 해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즉, 현실적으로 사실혼 배우자나 동거인에게는 재산 분할과 관련해 세법상으로는 공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셈이다. 우리와 달리 스웨덴은 사실혼의 타방이 사망했을 경우 상속권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상속재산에서 일정 금액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캐나다의 일부 주는 사실혼의 경우 법률상 혼인 후 이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양권을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도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 그 자체를 인정하는 사례는 드물고, 상속재산 중 일부분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전 변호사의 설명이다.

신탁 활용한 재산 분배 사례↑
그렇다면 현실과 법의 이 간극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실제로 최근 들어 재혼 전에 마련한 재산을 증여하거나 구분해 관리하는 것, 사실혼 배우자와의 재산 분배 문제를 상담하는 건수가 늘고 있다”며 “이 난제를 해소하기 위해 ‘부부재산약정제도’나 ‘신탁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부재산약정제도는 민법상 제도로,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서로의 재산에 대한 관리 방법과 이혼할 경우 재산 분할 방법까지 재산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계약으로 정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지만, 해외 유명인들이 결혼 전에 재산 관리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기사들이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신탁제도다. 부부가 재혼 전에 보유했던 재산은 각자의 노력으로 일군 것이기에 별도로 구분해 관리하기 위해 각자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금전, 부동산, 주식 등 어떤 재산이든 신탁해 자기 뜻대로 관리·운용하고 사후 상속인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영미권 국가에서는 재혼 과정에서 이런 식의 신탁을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

당당한 비혼 세대의 스마트한 재산 배분법으로도 신탁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동반자로 살아가는 비혼 세대의 경우 사실혼 배우자가 아무런 조치 없이 사망할 경우, 동반자는 법정상속인이 아니므로 상속에서는 배제된다. 동반자의 재산을 상속받은 상속인들이 배려해 주기만을 바라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배 센터장은 “이런 문제에 대비해 재산 중 일정 금액을 동반자의 몫으로 신탁해 놓을 수 있다. 자신이 사망할 경우 동반자는 다른 상속인들의 동의 없이 신탁된 금액은 받을 수 있게 되므로 스마트하게 재산을 배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사망 후 상속재산은 인출이 동결되는 반면 신탁된 재산은 계약에 의해 사후 수익자가 바로 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