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되는 시점부터 우리 경제로 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가전제품과 태양광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상호 호혜세 부과 방침 발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재확인, 안보와 연계된 철강제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 방침 천명 등이 그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인 ‘트럼프노믹스(Trumpnomics=Trump+Economics)’의 총체적인 기조는 ‘미국의 재건’이다. 직전 오바마 정부가 태생적 한계였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크게 손상된 국제 위상과 주도권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온 경제정책이다. 한 마디로 글로벌 이익과 미국 국익 간에 상충될 때에는 후자를 중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트럼프노믹스를 구체화하기 위해 조직과 인선도 정비됐다. 최우선 과제인 손상된 국익을 복구하기 위해 국가안보위원회(NSC)와 동급 위상의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했다. 인선도 월버 로스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시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처럼 중국을 비롯한 대미국 무역 흑자국에 강성 기조를 갖고 있는 인물로 채워졌다.
보호주의 색채로 본다면 ‘역대 최고’라고 평가된다. 트럼프 정부의 대외 통상정책이 ‘극단적 보호주의’로 흐를 것으로 우려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 1년 동안 보여준 대외 통상정책에 있어서는 이전 정부와 구별되는 네 가지 특징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첫째, 미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부담과 책임만 지는 국제규범과 협상에 대한 우선순위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WTO)와 범태평양경제협의체(TPP) 탈퇴 의사, 파리 신기후협상 불참 통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FTA 폐기 혹은 재협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국가별로는 무역적자 확대 여부에 따라 이원적 전략(two track)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대미국 흑자국에 성장과 고용을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따라서 무역적자 확대국에 대해 통상 압력을 가해 시정하고, 다른 국가와는 공존을 모색하는 ‘차별적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문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심상치 않다. 무역, 통상, 지적재산권 등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등 경제 외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특히 환율 분야가 심하다. 세계 경제 양대 축인 두 국가 간 마찰은 그 파장이 의외로 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셋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통상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등 WTO 규범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수단뿐만 아니라 미국의 통상법에 근거한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다. 심지어는 미국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발동할 수 있는 슈퍼 301조까지 동원한 태세다.
넷째, 통상정책을 다른 목적과 결부시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미국 통상법 232조에 근거해 통상을 안보와 연계시킨다든가, 대북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국에 대해 집중적으로 통상 압력을 높이고 있다. 한국 등 해당 국가가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쉽게 대처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주요 교역국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이 먹힐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도의 협상 전략가다. 성공한 기업인 출신답게 참가자 모두가 이익을 취하는 ‘샤프리-로스식 공생적 게임(non zero-sum game)’보다 참가자별 이해득실이 분명히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시식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즐긴다.
트럼프 입장에서 중국, 한국 등을 대상으로 한 ‘통상 압력’ 카드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중국은 진퇴양난 여건이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에 반발한다면 수출이 둔화되면서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 우려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대로 수용한다면 시진핑 정부의 ‘팍스 시니카’ 구상은 물 건너갈 수 있다. ◆트럼프노믹스 본격 가동…한국의 숙제는
한국은 중국보다 더 어려운 처지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에 반발한다면 수출이 둔화되면서 ‘구조적 장기 침체론[엘(L) 자형 장기 침체, 일본식 잃어버린 10년 혹은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론]’이 급부상하고 남북 관계를 풀어 나가는 데 난항이 예상된다. 반대로 수용한다면 중국과의 관계 등에서 어려운 국면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범 이후 1년 동안 미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극단적인 보호주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오히려 확대됐다. 올해 11월에 예정된 중간선거 이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트럼프 정부가 궁지에 몰릴 수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올해가 트럼프노믹스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첫해라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는 내부적으로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과제를 올해 연두교서에서 밝혔다. 규모도 당초 예상(1조 달러)보다 많은 1조5000억 달러에 달한다.
올해부터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 등 대폭적인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도 추진됐다. 트럼프 정부의 감세정책은 2차 오일쇼크 여파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라는 정책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미국 경제를 구해냈던 1980년대 초반 ‘레이건노믹스(공급 중시 경제학이라고도 부른다)’를 연상케 한다. 감세정책의 이론적 토대인 ‘래퍼 곡선(Laffer Curve)’을 보면 세율과 재정수입 간 정(正)의 구간을 ‘표준 지대(normal zone)’, 부(負)의 구간을 ‘비표준 지대(abnormal zone)’라 부른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 출마 이전부터 너무 높아 경제효율을 떨어뜨리는 세 부담을 낮춰줘야 경기가 살아나고 재정수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미국 경제는 무역적자가 확대되면 재정적자까지 확대되는 ‘쌍둥이 적자’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재정수입 면에서 감세정책과 재정지출 면에서 뉴딜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면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것은 볼 보듯 뻔하다. 이런 여건에서 교역국을 상대로 무역적자마저 줄여 놓지 않으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남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최대 복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종전과 다른 트럼프 정부의 네 가지 통상정책 특징과 기준에 전부 걸리기 때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국제교역상의 상호주의 원칙을 근거로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중국의 우회 기지로 한국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기적으로 3월부터 두 달 동안은 주목해야 한다. 한국과 관련된 트럼프 정부의 통상 일정이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3월 말 국별 무역장벽(NTE) 보고서 △4월 초 미국 통상법 232조 근거한 철강 보고서 △4월 중순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 △4월 말 지적재산권 관련 스페셜 301조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의 네 가지 이전 정부와 다른 기준에서 보듯이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에 일단 대응하기가 힘들다. WTO 분쟁처리기구(DSB)에 제소하는 등 대책을 발표하고 있으나 확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확정된다 하더라도 트럼프 정부가 따르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런 만큼 우리 스스로 트럼프 정부와 통상마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근본 원인부터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 트럼프 정부의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은 궁극적으로 중국을 지향하는 만큼 우리의 대외정책이나 남북 관계 등을 풀어갈 때 미국과 중국 간 중간자로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국과의 무역흑자를 포함한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의 환율심층 혹은 관찰대상국 지정요건(베네·해치·카퍼 의원의 첫 글자를 따 BHC 요건) 중 하나인 대미국 무역흑자 200억 달러 기준 밑으로 축소해 놓았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때 국제적으로 약속해 놓은 ‘경상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4% 룰’이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응 방식도 미국 등 주요 교역국의 통상정책 기조 변화에 맞춰 ‘옴니버스 방식’으로 바꾸는 문제도 검토해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통상정책을 남북 관계 등의 다른 정책과 분리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나 트럼프 정부가 다른 목적과 연관시켜 통상정책을 추진하는 움직임과 불일치로 의외로 효과가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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