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베니스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방문했을 법한 도시다.
중세의 분위기를 간직한 물의 도시, 베니스는 오래된 건물들과 좁은 골목들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베니스에 갈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이 파도바(Padova)다. 서양 미술사를 빛낸 거장들이 남긴 걸작을 찾아가는 예술 여행을 시작한다.
함혜리 아트 앤 컬쳐 전문 저널리스트

베니스에서 서쪽으로 40km 지점에 있는 중세의 도시 파도바에는 르네상스 회화의 선구자 조토 디 본도네(1267~1337년)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스크로베니 예배당이 있다. 자그마한 예배당의 내부 벽 전체를 장식한 프레스코화는 서양 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라고 인정받는 것으로 조토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몇 해 동안 벼르고 별렀지만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2016년 여름 베니스비엔날레를 참관하고 피렌체로 이동하는 중간에 파도바에 들를 수 있었다. 도시에 들어가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교수로 있었던 유서 깊은 파도바대와 성 안토니오 대성당 등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고 스크로베니 예배당만 방문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선구자로서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조토는 1267년 피렌체에서 22km쯤 떨어진 토스카나의 콜레 디 베스피냐노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농부인 아버지를 따라 양을 돌보던 소년 조토가 어떻게 화가의 길을 걷게 됐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피렌체의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가 1452년 남긴 글에 따르면 피렌체 출신의 명망 있는 화가 치마부에가 바위에 앉아 양을 그리고 있는 어린 조토를 보고 감명 받아 아버지를 설득해 피렌체에 있는 자신의 아틀리에로 데려가 제자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피렌체의 한 양모 상인 밑에서 도제로 있던 조토가 치마부에의 아틀리에를 자주 기웃거리며 그림에 관심을 보이자 치마부에가 그림을 가르쳐줬다는 것이다. 아무튼 치마부에의 제자로 그림을 시작한 건 확실하고 스승을 능가하는 재능을 일찍부터 인정받아 생전에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치마부에의 아틀리에에서 그림 수업을 받으며 도제생활을 하던 조토가 특별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아시시에서 프란체스코 성인의 삶을 프레스코화로 그리는 작업에 참여한 것이 기회가 됐다. 치마부에가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는 작업에 참여하러 아시시를 비우면서 조토는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었다.

아시시의 프레스코화 <성 프란체스코의 전설>은 성인의 생애를 시각적으로 설명해 놓은 연작으로 이 작업을 하면서 조토는 사실적 표현 등 이후 그만의 혁명적인 표현법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전통적인 종교적 주제를 다뤘지만 그는 과거의 정형화된 종교화에서 벗어나 인물과 풍경을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그렸고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입체감 느껴지는 혁신적 화법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화법으로 유명해진 조토는 30대 중반에 이른 1302년 파도바의 거부 엔리코 스크로베니로부터 특별한 작품을 의뢰받는다. 아버지 레지날도 스크로베니는 당시의 교회가 죄악시한 대금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사람이었다.

단테가 <신곡>의 ‘지옥 편’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으로 묘사했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고리대금업자 아버지와 그 대를 물려받아 대금업을 하는 가문의 죄를 속죄하는 행위로 가족 예배당을 건립하기로 한 것이었다. 교회당은 1303년에 건립하기 시작했으며 조토는 1305년부터 1306년 사이에 프레스코화를 완성했다.

지정된 입장 시간 이전에 도착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드디어 차례로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푸른빛으로 감싸인 신비스런 분위기에 숨이 멎는 듯했다. 푸른빛은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색깔로 안료의 값도 무척 비싸서 성모의 가운 같은 특정한 부분을 채색하는데 사용했지만 이곳은 천장을 비롯해 벽화의 기본 바탕을 푸른빛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내부의 공기방울마저 푸른빛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직사각형의 긴 벽이 마주하고 있는 단순한 구조의 건물 내부는 3개의 벽면과 높이 13m의 궁륭형(穹窿形) 천장까지 벽화를 그릴 면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단순한 구조다. 다른 장식이 없이 온전하게 벽면과 천장에 프레스코화로 가득하다.

조토는 남쪽 벽 위 칸에 <성 요아킴과 성 안나의 생애>를, 북쪽 벽 위 칸에 <마리아의 생애>를 각각 그렸고, 두 번째 칸과 세 번째 칸에 <예수의 생애>를 그렸다. 평면적이고 상징적인 이전의 종교화와 달리 조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입체감이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 분노 등 내적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성서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배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도 이전의 비잔틴 회화에서는 없던 조토의 혁신적인 화법이었다.

죽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놓고 비통해하는 순간을 묘사한 ‘애도’는 가장 극적이다. 미술사가들이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그림으로 꼽는 이 작품에서 아들의 죽음을 접한 마리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에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천사들은 통곡하고 주변의 성인들도 근엄함을 벗어던지고 인간적인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얼굴과 목에서는 깊은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입구에서 볼 때 맞은편이 서쪽이다. 서쪽 벽면은 사후세계에 예수가 심판자로서 천국과 지옥으로 갈 사람들을 나누고 있는 <최후의 심판> 장면이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로 분리해 왼쪽은 구원받는 자들을, 오른쪽에는 지옥 불에 떨어져 무시무시한 고통을 받는 이들을 그려 놓았다.

다층적인 구성으로 극명한 대비
다층적인 구성으로 극명한 대비를 정교하고도 강렬하며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 그림은 회개하면 천당에 가고, 죄를 지으면 지옥행이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수는 열두 제자가 배석한 가운데 화려한 황금빛을 배경으로 무지갯빛 후광에 둘러싸여 앉아 있다.

예수는 확고부동한 최후의 심판자이자, 최후의 승리자로서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십자가 바로 왼쪽에 무릎을 꿇고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성 카타리나에게 성당을 바치는 스크로베니의 모습이 보인다. 전통에 따라 화가인 조토도 구원받는 사람들에 포함됐다.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흰 모자를 쓴 사람이 조토다.

프레스코화는 회반죽으로 벽에 초벌칠을 하고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그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석회수에 안료를 섞은 프레스코 안료로 채색하는 기법이다. 수백 년을 견딘다고 하지만 워낙 오래되고 소중한 작품이라 훼손을 막기 위해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엄격하게 통제된 상태에서 관람하도록 하고 있다. 예약은 필수이며 제한된 시간 15분에 제한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 가기 힘들고 방문 절차도 까다롭지만 ‘꼭 한번 봐야 할 명작’ 리스트에 올려야 할 인류의 유산이라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파도바 안팎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은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프레스코화를 완성한 이후 조토는 그야말로 인기의 절정을 달렸다. 이후 20년간 유럽 곳곳을 다니며 교황과 고위 성직자는 물론 왕과 귀족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나폴리에서는 궁정화가가 돼 높은 급여와 보조원, 화구까지 지원받았다.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성을 쌓은 그는 말년에 고향인 피렌체에서 아틀리에를 열고 제자들과 함께 부유층의 회당 장식을 주로 맡아 그렸다.

1334년 피렌체시는 조토에게 ‘위대한 거장’이라는 칭호를 하사하고, 두오모 성당의 장식 작업을 하는 석공조합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는 두오모 옆 종탑 건설의 책임도 맡았다. 조토는 직접 종탑을 설계하고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공사를 시작할 무렵인 1337년 1월 8일 조토는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 입구 안쪽에 안장됐다. 그가 설계한 거대한 종탑은 이후 두 명의 감독이 이어가며 25년간에 걸쳐 완성됐다.
함혜리 저널리스트는…
30여 년 신문사 기자 경력의 아트 앤 컬처 전문 저널리스트. 서울신문 파리특파원과 논설위원을
거쳐 문화부 선임기자로 미술을 담당했다. 저서로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 <아틀리에, 풍경>, <미술관의 탄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