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행복한 CEO’로 통하는 송경애 BT&I 창업주는 최근 사회적 기업 대표로 변신했다. 새로운 꿈에 도전하고 있는 송 대표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청년창업센터인 ‘마루180’에서 만났다. 청년 벤처사업가들 틈에서 30년 차 경영자인 송 대표의 인생 2막이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홀로하팩토리는 사회적 기업가인 임민택 대표가 설립한 ‘홀로하’에 송경애 대표의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역량이 결합돼 만들어진 사회공헌 전문 마이스 기업이다. 송 대표는 이곳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이 필요한 기업들과 연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기업의 활동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비정부기구(NGO)나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면 경영하기에 벅차고 영세한 이미지인 것 같아요. 저는 재미있고 유쾌한 사회공헌 사업을 펼치고 싶습니다. 지속적이면서 진짜 울림과 감동이 있는 그런 활동 말이죠. 제가 30년 마이스 전문가잖아요. 그런 일이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죠.”
송 대표는 새 명함이라며 붉은 바탕의 명함을 내밀었다. 직함과 연락처가 쓰인 명함 뒤편에 있는 ‘당신 하나면 충분합니다’라는 문구가 시선을 끈다. 그가 유독 관심 있어 하는 분야는 바로 자살 방지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무려 40명이에요. 매일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죠. 그러니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1년 동안 1위를 달리고 있죠. 그동안 이 문제가 방치돼 왔던 거예요. 지금은 저와 같은 사회공헌가는 물론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만큼 시급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는 자살 방지를 위해 무엇보다 인성교육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봤다. 성적을 비관하며 자살하는 중고등학생들, 행복의 잣대를 자신의 기준이 아닌 타인에게 맞춰 끊임없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현대인들, 각박한 성공의 프레임에만 갇혀 눈앞의 행복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죽겠다’는 얘기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것 같아요. 행복의 기준이 남과의 비교에서 오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전 광고 문구 중에 ‘난 소중하니까’라는 문구를 참 좋아해요. 어떤 조건 때문에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닌 그 자체로 소중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전 그래서 홀로하팩토리를 통해 초등학교부터 자존감을 높이는 인성교육 관련 서적을 발간할 생각입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데는 개인적인 시련도 맞물려 있다. 사업가로서 30년을 달려 왔지만 최근 폐경이 오면서 우울증까지 겹쳤다. 오랜 기간 동안 앞만 보면서 달려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나 후회가 밀려왔다. 여기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자살 소식은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행복한 최고경영자(CEO)를 얘기했는데 자신 주변의 삶은 전혀 그렇지 못한 데 대한 자괴감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그를 기업가에서 사회공헌가로 변신하게 한 전환점이 됐다.
“임민택 대표는 그동안 기부로만 도와왔어요. 이제는 제가 직접 일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죠. 이번에는 저의 재능과 노하우를 기부하는 셈이죠.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일이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앞으로 어떤 일이 주어진다고 해도 제게 생기는 이익은 모두 사회를 위해 내놓을 생각입니다.”
그는 BT&I 대표 시절부터 나눔을 강조하던 CEO였다. 고(故) 김석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과 북한에 다녀온 인연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사로 활동하며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기업의 이익도 아낌없이 어려운 이웃에게 내놓았다. 이런 그의 마음은 직원들도 움직였다. 전 직원이 급여의 일정액을 모아 나눔을 실천한 것. 인턴사원 1004원부터 임원급
5만4원까지 직급에 따른 급여 일정액을 매월 ‘나눔펀드’로 조성해 기부의 생활화를 이뤄냈다. 참여 인원은 BT&I를 비롯해 계열사인 투어익스프레스, 지트래블러, 호텔트리스 등의 임직원 190명에 달했다.
“기부는 즐거움이에요. 기부에 책임감이나 의무감 등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하죠. 날마다 기부하고 생활 속에서 기부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해요.”
그의 독특한 기부 방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생일을 비롯해 아이들의 생일, 결혼기념일에는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기부를 실천해 온 것. 예를 들어 2010년 자신의 생일인 2월 14일에는 2010만214원을 기부하고, 남편의 50번째 생일에는 2010만828원을, 결혼 20주년 기념일에는 2010만1117원을 기부했다. 그렇게 기부한 금액은 어느덧 1억 원을 돌파해 여성 최초로 2011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이 됐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이벤트 기부가 너무 유치한 발상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기부를 엄숙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의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의도도 있었죠. 실제로 제가 기부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겠다고 한 사례도 있었어요. 그때 느꼈어요. 좋은 일을 하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쉬쉬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도 있다는 것을요. CSR 활동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일들을 점점 전염시키는 거죠. 앞으로 제가 그 일에 두 손 걷어붙이고 일할 생각입니다.”
행복을 전파하는 CEO “BT&I를 경영하면서 여행업으로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봤어요. 여행업은 제게 참 잘 맞았고 제 마음을 뛰게 하는 것 같아요.”
송 대표의 기업 경영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물다섯의 나이, 단돈 250만 원으로 차린 ‘이태원여행사’를 시작으로 투어익스프레스, 호텔트리스 등을 인수하며 외형을 확장했다. 2012년에는 SM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문화 기업에 인수돼 문화콘텐츠 사업까지 펼치며 그의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렸다. 지난해에는 항공권 판매 매출액만 3300억 원을 달성할 만큼 국내 여행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BT&I 시절부터 행복한 CEO로 통했다. 그의 행복은 곧 직원의 행복과 연결됐다. 직원 복지를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3년을 일하면 1년 치 연봉을 더 주는 ‘3+1제도’를 도입해 애사심을 돋우는 한편 안정적인 인사 개발을 할 수 있었다. 워킹맘, 여성 직원 우대 정책을 펼쳐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경영 인증을 받기도 했다. 직원의 미래를 위해 펀드매니저 역할까지 자처해 직원의 급여 일부로 펀드를 운용해 목돈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손해는 물론 송 대표 자신이 보상한다는 조건이 따랐다.
기업 경영 30년 차 베테랑 CEO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아들의 대학원 진학과 함께 자신도 경영학 석사 학위(MBA)에 도전한 것.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그동안은 ‘감’으로 일했다고 봐도 무방하죠. 공부를 다시 하면서 제가 지금껏 경영해 온 방법이 맞나 점검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84명 동기 중 제가 맏언니인데요, 젊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기도 하죠. 저는 원래 대단한 완벽주의자라 대학 때는 B학점 맞으면 잠을 못잘 정도였는데 이제는 B만 맞아도 감사하죠. 제가 더 철이 들었나 봐요.(웃음)”
그는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으로 할리우드 배우 오드리 헵번을 꼽는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봉사하면서 향기를 내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그. 성공이 아닌 행복을 이야기하는 송경애 대표의 긍정 바이러스가 인생 2막에 더욱 빛을 발하길 기대해본다.
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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