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에 흔들리는 건 여심(女心)만이 아니다. 이 시대 자산가들 역시 안전한 자산도피처(safe haven)인 보석에 뜨거운 구애를 보낸다. ‘정복할 수 없는 돌’의 치명적 유혹은 현재 진행형이다.

“난 보석이 좋아. 사람들 모두 나이가 들면 매력을 잃지만 다이아몬드는 변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어.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야.”

마릴린 먼로가 대표작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에서 사랑을 갈망하는 남성들을 물리치며 외치는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제일 친한 친구(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장면. 사랑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재기발랄하게 풀어낸 이 장면은 끊임없이 뮤지컬과 영화 등으로 패러디되는 명장면이다. 신사가 미녀를 사랑하는 것이 본능이라면, 여성들의 보석 사랑 역시 원초적 본능일터.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처럼 시대를 넘어 전설이 된 그녀들의 사랑 이야기가 두고두고 보석과 함께 회자되는 까닭이다.

기실 보석이 일반인에게도 보편적으로 사랑받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왕관의 가장 높은 곳에서 최고 권력자의 권위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대중에게까지 보석 사랑이 전파된 것은 19세기 무렵. 남아프리카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고 새로운 채굴 기법이 개발되면서다. 여기에 1947년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캠페인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다이아몬드가 결혼 예물의 대명사가 됐다.

허나 다이아몬드를 위시한 값비싼 보석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희소하다. 다이아몬드(diamond)란 이름이 ‘정복되지 않는다’는 그리스어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된 것처럼, 갖기 어려운 그 희소성이 끊임없이 미녀와 자산가들의 소유 욕망을 자극한다.

희귀 다이아몬드에 꽂힌 슈퍼리치
최근 금융시장의 불안과 위기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보석에 대한 고액자산가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여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돈을 쓰는 보석’에서 최근에는 ‘돈을 투자하는 보석’으로 부자들의 주요 재테크 리스트에 올랐다.
영국 바이클레이스가 고액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귀중품 자산 중 보석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 전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현재 값비싼 보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순위를 차지한 그림은 49%에 그쳤다.

여성 자산가들의 보석 사랑은 더욱 지극하다. 남성들은 순자산 가운데 평균 9%를 보석에 투자하는 데 반해 여성들은 11%를 투자했다. 여성 자산가들은 보석의 미래 투자 가치에 심미적 가치를 더했다는 풀이다.

그렇다면 실제 보석은 재테크 수단으로서 얼마나 가치 있을까. 다이아몬드의 국제 시세 사이트 라파포트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빛났다. 특히 다이아몬드의 크기가 클수록 상승률이 가팔랐다.

5캐럿(ct) 다이아몬드는 지난 10년간 무려 131.4%나 상승했다(2014년 12월 기준). 3캐럿 다이아몬드도 94%나 올랐다. 이에 반해 1캐럿 다이아몬드는 27.7%, 0.5캐럿 다이아몬드는 4.9% 상승했다.

같은 등급의 다이아몬드라면 캐럿이 클수록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특성 때문이다. 예컨대 고가 해외 명품 보석 브랜드의 경우 최상급(D/1F) 1캐럿 다이아몬드는 8000만~9000만 원 하는데, 2~3캐럿 이상이 되면 최상품은 10억 원 수준으로 훌쩍 뛰고 5캐럿 이상이 되면 30억 원을 호가하는 수준으로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가 보석 시장 가운데서도 유색 다이아몬드 시장의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는 첫날에 16.8캐럿짜리 핑크 다이아몬드가 무려 2870만 스위스프랑(330억 원)에 팔렸고, 다음 날엔 12.03캐럿짜리 블루문 다이아몬드가 4860만 스위스프랑(560억 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영국 텔레그래프가 고가 다이아몬드 딜러인 덧슨 락스의 자료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2년 1캐럿에 1만 달러 수준이던 핑크 다이아몬드 가격은 2014년엔 7만8000달러까지 치솟았다. 12년 만에 6배가 껑충 뛴 것이다. 핑크 다이아몬드 외에도 브라질의 레드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러시아의 퍼플, 남아프리카의 블루와 오렌지, 브라질의 그린 다이아몬드 등은 주요 경매에 등장했다 하면 최고가를 경신한다. 다이아몬드와 더불어 루비, 에메랄드, 블루 사파이어는 시대와 스타일을 초월해서 사랑받는 4대 귀보석이다.

이러한 보석은 절세 면에서도 이점이 많다. 증여세를 피하면서 재산 상속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석은 고이 장롱 속에 모셔두는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착용함으로써 만족감을 높이는 투자라는 고유의 특성도 돋보인다.

신동일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일부 자산 배분의 목적 외에도 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어 보석에 관심을 갖는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성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주얼리 컨설턴트)는 저서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를 통해 “보석을 통해 부를 과시했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옮겨 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표현대로 ‘진귀한 보석은 감성과 자산 가치 측면에서 모두 값진 유산’인 셈이다.

미국·중국, 양대 마차가 끄는 세계 보석 시장
슈퍼리치들의 보석 사랑에 기대어 보석 시장이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세계 부(富)를 좌지우지하는 G2(미국, 중국)를 중심으로 글로벌 보석 시장이 재편되는 양상이 뚜렷하다. 일본 등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과 유럽 시장이 주춤한 대신, 경제 회복세에 힘입어 보석 시장에서도 기지개를 켜는 미국과 신흥 갑부를 내세운 중국 ‘큰손’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것.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와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주얼리 시장 규모는 2008년 243억 달러에서 2013년 527억 달러로 5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했다. 세계 1위 주얼리 시장인 미국에서도 2011년 520억 달러, 2012년 550억 달러, 2013년 594억 달러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유럽 시장은 2010년 189억 달러에서 2011년 177억 달러, 2012년과 2013년엔 160억 달러로 떨어지고 있고, 일본 또한 2011년 111억 달러에서 2012년엔 95억 달러, 2013년엔 98억 달러로 하향 안정화된 모습이다.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주얼리 시장 리서치 2015’ 보고서를 통해 “유럽의 경기 약세와 일본의 장기 경제 불황에 따른 주얼리 시장 축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 시장의 상승세를 타고 세계 주얼리 시장은 전년 대비 17.%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배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