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만든 고전들_열일곱 번째 조정래 ‘태백산맥’②
해방 50년이 아닌 분단 50년. 소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을 시작으로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어떻게 분단을 잉태하고 있는지 기록한다. 형제간 복수와 살육의 서사를 보여주는 염상진과 염상구는 그렇게 같고도 다른 삶의 두 줄기를 보여준다. 이들을 비롯해 분단의 한국사에서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여기 있다.![[GREAT TEACHING] 분단 60년, 그 통한의 역사](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76250.1.jpg)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형제간 복수와 살육의 서사가 어쩌면 우리 역사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난한 숯장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염서방이라고 불렀다. 다른 이들이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염서방(염무칠)만은 사람답게 사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그러려면 신분이 높아져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똑똑하게 잘 배우기만 한다면 ‘선생’ 소리 들어가며 살아 갈 수 있다고 말이다. 맏아들 상진만 보면 이 꿈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상진은 사리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영특하기도 해서 어렵지 않게 사범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염서방은 이 맏아들을 귀하게 여겼다. 그런데 둘째 아들 상구는 상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염서방이 상진을 애지중지할수록 상구는 그에 비례해서 점차 삐딱하게 나아갔다. 그렇지만 상구조차 육감적으로 알았다. 인정받을 수 있는 삶으로서 잘 사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염무칠의 두 아들들에게 ‘잘 사는 것’에 대한 해석은 달라 보인다. ‘태백산맥’에는 이 둘의 삶이 나란히 줄기를 만들고 있다.
카인과 아벨, 상진과 상구의 ‘잘 사는 것’
전남 보성군 빨치산 대장 염상진, ‘의심의 여지없는 영웅’이다. ‘산 같은 무게’로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보고 싶은’ 대장이다. 그런 염상진이 ‘잘 사는 것’에 대해 고민했을 즈음 조선 반도를 휘감은 사회주의 사상을 만난다. 일제강점기 책 좀 읽는다는 학생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책을 읽으며 민족 전체의 앞날에 대해 생각했고 잘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 결과 지리산을 누비며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산 속에 있으면서도 ‘애비로서의 죄스러움과 책무감’에 슬퍼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인물이며 동료들의 가족과 그 마음결 하나하나를 챙기는 말 그대로 믿음직한 ‘형님’이다. 염상진은 그 어느 누구와도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의리와 정을 느끼는 대장이다. 그는 조선에 도래한 사회주의를 신념으로 삼아 살아간다. 그가 빨치산이 아니었다면 그저 믿음직한 형님으로 보일 법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친동생 염상구의 생각은 좀 다르다. 염상구는 ‘온몸에 서늘한 살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무자비한 살육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잔악한 고문에 앞장서고, 겁탈을 일삼으며 좌익세력을 소탕하는 데 늘 앞장선다. ‘형이 가담해 있으니까 더욱 적이었다’라고 할 정도로 복수와 증오가 가득하다. 그는 염무칠 밑에서 오로지 형만 한 아우 없는 그런 자식으로 자랐다. 그럼에도 그 또한 단 한 가지 ‘잘 사는 법’에는 민첩했다. 노력과 열정, 선의와 도전을 통해 이루는 삶이 아니라 강탈과 침입, 폭력과 강짜를 통해 삶을 사는 인물이다. 그것이 출세와 인정의 길이기만 하다면 그 또한 괜찮았다. 하지만 ‘짐승의 탈’을 쓴 그조차 때때로 가슴 찌르르한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빨치산의 부인인 외서댁을 범하고 그 아이까지 배게 했으나 정작 외서댁이 남편이 죽은 후 몸져눕자 “맘 써 볼라구” 한다. 그런 그의 입체성은 염상진의 시신을 거두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염상진의 목이 거리에 내걸리지만 ‘빨갱이 염상진 사살’이라는 글씨 아래에서 이도저도 하지 못한다. 이때 염상구가 나타나 하는 말 “살아서나 빨갱이지 죽어서도 빨갱인가”라고 말하는 것, 수류탄 자살로 ‘몸이 걸레가 된’ 염상진의 시체를 보자마자 경찰과 싸워 시체를 거둔 것이다. 평생 죽고 죽이는 관계 속에 있지만 염상진의 시체 앞에서 그가 되뇌는 말은 이처럼 “살아서나 빨갱이지”라는 말이었다. 그에게 ‘잘 사는 것’이란 정글의 세계 속에서 더 그악하게 잡아먹거나 먹이가 되는 것, 그렇게 정글 속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 그러나 이미 살기를 포기한 사람 앞에서 혹은 이미 죽어 시체가 된 몸 앞에서 그는 잠시 인간임을 깨닫기도 한다.
이 속에서 카인이 누구이고 아벨이 누구인지 묻는 것은 난센스일지도 모르겠다. 상진과 상구, 그들은 한번도 서로를 적수로 여기지 않았다. 적이 돼 싸웠지만 그들 앞에 놓인 것들과 싸웠을 뿐이다. 잘 살고 싶었을 뿐, 그 방법에 대한 생각이 달랐을 뿐이다. 물론 싸움을 부추기며 부질없는 적수를 만들어냈던 사람과 조건들, 그 역사가 바로 ‘통한’의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카인과 아벨이 아니라 ‘뽈갱이와 건달패’를 만들어내면서 그 속에서 수많은 것을 잃었다. 적수는 없었지만, 전쟁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완장은 얻었지만 사람은 잃었다.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카인과 아벨의 상상력, 혹은 ‘내가 아니라며 네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세계 속에서 염상진은 이 모든 싸움이 사라지는 유토피아를 꿈꾸었고 염상구는 이 싸움에서 정정당당한 룰을 지워버렸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염상진은 죽어 무덤 속 시체로 남았고 염상구는 더 나은 자리에 올랐다.
분단의 한국사에서 기억해야 할 사람들
이 두 형제의 얽히고설킨 역사의 틈바구니 속에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는 김범우를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염상진처럼 마땅한 이념을 위해 제 한 몸을 내던지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와 무심하게만 살아가는 인물도 아니다. “스테이트가 아니라 네이션이 먼저”라고 말하며 세상의 일들로부터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자다. 창궐하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서양식을 흉내 내는 언행’은 마땅찮았고, 미국과 소련에 기대어 민족의 앞날을 얘기하는 것에는 비판의 날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는 미군의 일원으로서, 또 남로당 공작원으로서, 또 고향에 내려가서는 선생으로서 한순간도 멈추지 않으며 굽이굽이 험난한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인물이다. 적어도 그에게 분노는 있을망정 ‘증오’는 없었다. 그에게 ‘잘 사는 법’에 대한 열망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김사용이 그러했던 것처럼 ‘잘 사는 법’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도리’만이 있었을 뿐이다.
김범우는 상처를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 50년, 아니 60년이 흘렀다. 어쩌면 염상진의 무덤 앞에서 그의 뜻을 기리는 하대치와 출세를 거듭하며 승승장구한 염상구의 출세담이 계속 전승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식민의 삶에서 발아해서 전장 속에서 생명력을 이어간 이 기억은 잠시 미뤄두어도 좋을 것이다. ‘태백산맥’의 역사 속에 염무칠의 아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독립운동에 제 몸을 던진 범준과 역사의 격랑을 구차하지 않게 버티어낸 범우, 이들도 있었다. 또 김사용, 마음의 빚으로 기억되는 어른도 이 역사 안에 있었다. ‘분단’의 한국사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역사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의 50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위해서.
박숙자 경기대 교양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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