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불편하다. 이 불편함을 즐길 수 있어야 주택에 살 자격이 있다. 그런 면에서 부암동 주택은 건축주와 설계자의 궁합이 제대로 맞은 사례다. 인왕산 자락의 하얀 집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진 태두종합건축 제공
[예술이 된 주택 2_부암동 단독주택] 불편함의 미학이 있는 그들만의 휴양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자락 마을에 하얀 외벽에 큰 창을 가진 주택이 들어섰다. 동쪽의 북악산과 북쪽의 부암동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서쪽과 남쪽의 인왕산 자락을 자연풍광 삼은 그곳은 마을의 풍경마저 바꿔놓았다.

이 특별한 건축물이 가능했던 것은 이색적인 건축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컨설팅 회사의 한국법인 독일인 대표이사와 미술을 전공한 한국인 아내는 주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정확했고, 자신들의 기호 또한 확실했다. 그러나 설계자 입장에서는 쉬운 조건이 아니었다. 일단 주거와 그린벨트에 묶여 있어 건축 규제가 까다로웠고, 앞뒤의 고저 차이가 10m 이상 나는 것도 제약이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문제는 ‘소통’으로 해결됐다.
[예술이 된 주택 2_부암동 단독주택] 불편함의 미학이 있는 그들만의 휴양지
부암동 단독 주택 대지 면적: 621.46㎡ | 연면적: 739.70㎡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 외부 마감: 페인트
부암동 단독 주택 대지 면적: 621.46㎡ | 연면적: 739.70㎡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 외부 마감: 페인트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문 완벽하게 열린 공간

설계부터 완공까지 심플함을 추구한 건축주는 주거 공간이지만 마치 휴양지와 같은 특별한 휴식처를 만들고 싶어 했다.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의 집을 연상시키는 이색적인 외관을 갖춘 그들만의 휴양지는 아주 특별한 공간감 안에 그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이색적인 외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다. 일반적인 박스 형태가 아니라 들어가고 나온 부분이 대칭을 이룬 조형물 같은 구조는 여느 주택과는 다른 공간 구성을 가능케 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공간별로 구획을 나누는 대신 열려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전면과 후면 모두 전면 창호를 통해 안과 밖의 경계마저 허물었다. 면적에 따라 높이를 다르게 함으로써 공간감을 형성하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는 점에서도 이 집은 분명 특별함이 있다.

보통의 고급 주택과 달리 외벽을 하얀 페인트로 마감했다는 점에서도 실험적인 부분이 있다. 이 집을 설계한 이필훈 포스코 A&C 대표는 “페인트를 바른 고급 주택은 최초일 것”이라고까지 했다.

층별 공간 구성 또한 일반적인 집은 아니다. 지하층과 지상층은 층별로 각각 기능이 완벽히 분리돼 있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던 주택에서는 볼 수 없던 형태다. 지하 공간은 안주인의 작업실 및 갤러리 혹은 파티 문화가 익숙한 그들에게 연회 장소로 활용되도록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고, 거주를 위한 1층과 2층도 1층은 거실과 다이닝 룸 등 낮의 공간으로, 2층은 침실만 있는 밤의 공간으로 철저히 기능을 나눴다.

이 집의 또 다른 특징은 ‘창’에 있다. 어느 공간에서도 커다란 창을 통해 햇빛을 받고 밖을 감상하는 일이 가능하다. 집 안 곳곳에 조금씩 다른 형태의 휴양 요소를 배치해 기분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인 부분. ‘휴양지와 같은 휴식처’에 방점을 찍었던 건축주의 집에 대한 로망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건축가 이필훈 포스코 A&C 대표
[예술이 된 주택 2_부암동 단독주택] 불편함의 미학이 있는 그들만의 휴양지
“‘디자인드 바이’ 건축물의 힘 보여주고 싶었죠”

이번 건축의 콘셉트가 ‘심플 앤드 펑크셔널(simple & functional)’이라고 들었습니다.
“내부와 외부를 모두 화이트로 마감해 심플함이 느껴지도록 했고, 공간에 있어서도 구획을 하지 않고 열린 구조에 계단을 통해 시각적 연속성을 부여함으로써 단순화했죠. 기능적인 부분은 공간의 다양한 활용성이나 향후 변화가 가능한 부분 등이 해당하겠지만, 사실 동선 등은 그리 기능적이지 않아요. 솔직히 집이 크면 기능적이기 어려운데, 다만 부암동 주택은 규모에 비해 동선을 짧게 처리한 건 있어요. 지하에 아틀리에, 1층을 낮의 공간, 2층을 밤의 공간으로 분리한 것도 그렇죠.”

이번 설계에서 실험적으로 시도된 건 무엇입니까.
“하나는 페인트 마감이에요. 페인트로 마감된 집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 금이 간다는 것인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 여러 번 덧발라 처리하는 등 디테일에 노력을 기울였어요. 페인트 마감인데도 금이 없는 집이 된 거죠. 보통 돌로 마감을 하는데 돌은 오염되면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페인트는 덧칠하면 되죠. 공사비도 비싸지 않고 더구나 안주인이 화가니까 언제든 마음먹으면 새 집처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또 하나는 창을 완전히 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보통 거실 창은 미닫이나 여닫이를 쓰는데 전체의 반 정도만 열리게 돼있죠. 저는 전체를 오픈해서 안팎의 공간이 하나로 느껴지도록 했어요. 지하층과 1층, 1층과 2층이 열려 있는 방식이라는 것도 지금까지의 주택과는 다른 시도였죠.”

주거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가용 예산입니다. 집이 자신을 누르면 안 됩니다. 또 하나 주택을 짓는다는 건 뭔가 다른 자신만의 집을 짓고 싶다는 건데 설계를 하는 건축가의 존재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점에서는 건축의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좋은 건축가를 만나는 게 시작이에요. 객관적으로 보면 건축가가 설계한 집은 팔 때도 수월한 편입니다. 집은 개인적이지만 주변에 끼치는 영향은 공공적인 겁니다. 또 평생 그 집에 살지 않을 수도 있으니 팔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죠. 미국의 부촌을 가보면 똑같은 동네에 ‘디자인드 바이(designed by)’라고 해서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라고 밝힌 집들이 있어요. 그런 집들은 비슷한 집들에 비해 가격이 두 배가 넘어요.”

건축 설계를 하는 데 있어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집은 그림이나 책처럼 미리 그려놓고 팔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건축주가 있어야 움직이기 시작하고 대지가 있어야 하죠. 그런데 건축주와 대지 조건은 늘 달라요. 완벽하게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죠. 그래서 제 원칙은 설계할 때마다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