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OF THE WOMAN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요즘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때도 없었다. 기업에서 사람을 고용하는 일이 중요해지면서 채용 시 구직자의 평판을 조회해주는 전문 업체가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정혜련 대표는 글로벌 평판 조회 전문 기업 ‘퍼스트 어드밴티지’의 한국지사장을 맡아 2008년부터 무서운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 20대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운명처럼 평생의 업을 만나고, 모든 것을 쏟아낸 끝에 30대 젊은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된 그의 스토리는 흡사 잘 짜인 각본과 같다.
정혜련 퍼스트어드밴티지 한국지사 대표 “한국도 확실한 인사 검증 필요… ‘클린 소사이어티’ 기여하고파”
“일본에서 별명이 ‘일벌레’였어요. 그만큼 정신없이 엄청난 양의 일을 한 것 같아요. 제가 회사 문을 열고 밤에 다시 문을 잠그고 나왔으니까요. 그땐 신이 났는데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정도예요.”

서울 논현동 ‘퍼스트어드밴티지’ 사무실에서 만난 정혜련 한국지사 대표는 ‘옛날이야기’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 퍼졌다. 친근하고 서글서글한 얼굴 이면에는 다부진 성격도 묻어났다. ‘평판 조회 대행업’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 호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인 산업이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사람을 채용할 때 평판에 대해 조회하는 것을 법으로 정해놨기 때문에 관련 시장이 제법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글로벌 평판 조회 기업 ‘퍼스트어드밴티지’는 활발히 인수·합병(M&A)을 하며 급격하게 사세를 넓혀나가고 있다. 1889년 ‘퍼스트아메리칸’이라는 보험사가 전신으로, 보험사기꾼 등을 막기 위해 평판 조회 시스템을 운영해왔는데 인사 조회의 비중이 더 커지면서 지난 2000년 별도의 독립 회사로 분리했다. 연매출이 우리 돈으로 약 1조5000억 원에 달하며 2008년에는 가장 빨리 성장하는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 대표는 2002년 일본인 남편과 결혼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할 만한 일을 알아보던 중 평판 조회 업무를 접하게 됐다.

“영어와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이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당시 첫아이를 낳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차에 채용공고를 보고 도전 정신이 꿈틀거렸죠. 제 성격이 원래 액티브한 데다 뭐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해서 평판 조회라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마치 운명과 같았어요.”

젊은 아기 엄마, 낯선 일본에서 평판 조회 기업을 만나다

그때 나이가 고작 30대 초반이었다.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처음에 입사한 곳은 일본에서 평판 조회 업무를 하는 브룩컨설팅이란 회사였다. 당시 2000년대 초반 한류 바람이 열도를 뒤덮을 때였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한국인을 채용하는 기업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요청 건수도 계속 늘었다. 회사 내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그에게 일이 몰렸고, 당시 정 대표는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해냈다.

2006년 브룩컨설팅이 글로벌 기업 퍼스트어드밴티지에 M&A가 됐고, 기업이 커지면서 그의 역량도 덩달아 성장했다. 이후 한국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던 미국 본사는 2008년 정 대표에게 한국에서 사업 기반을 조성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보수적인 일본에 비해 이직과 구직에 따른 평판 조회 시장이 상대적으로 활발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저의 성실성을 눈여겨봐 주신 것 같아요.‘네가 아니면 한국지사를 세우지 않겠다’는 글로벌 대표의 말에 감명받았죠. 이미 일본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터였지만 다시 모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본의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법인을 설립하는 일부터 사무실을 구하는 것까지 쉽지 않았지만 그는 특유의 근면성으로 헤쳐나갔다. 일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전적으로 도맡았다. 사진을 업(業)으로 하는 남편의 이해와 든든한 외조가 아니었으면 여성 리더로서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정 대표는 말했다.

“우리나라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게 육아죠. 그런 면에서 ‘미스터 맘’을 둔 저는 정말 복을 받은 것 같아요. 가사와 육아까지 남편이 힘써주고 있어요. 현재 일곱 살, 네 살인데 제가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데려오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면 사업에 이렇게 집중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여성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기 위해서는 육아나 가사 업무 분담에 대해 가족끼리 잘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혜련 퍼스트어드밴티지 한국지사 대표 “한국도 확실한 인사 검증 필요… ‘클린 소사이어티’ 기여하고파”
30대 초반에 한국지사장…‘검증 광풍’ 타고 승승장구

30대 초반에 맡겨진 CEO라는 직책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도 행운의 여신은 그를 향해 웃었다. 경제 호황기였던 2007년엔 기업들의 채용도 대거 이뤄졌다. 마침 2008년 신정아의 학력 위조 사건이 불거지면서 ‘검증 광풍’이 온 나라에 몰아쳤다. 최근에는 구직자 가운데 유학생들이 급증하면서 해외에서 획득한 학력과 경력을 조회하려는 수요도 상당하다.

이 여세를 타고 퍼스트어드밴티지 한국지사의 매출은 출범 이후 꾸준히 20~30%대 성장을 거듭했다. 퍼스트어드밴티지의 고객사는 외국계 기업, 대기업, 정부기관 등으로 다양하다. 기업의 사전 고용 조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부터 비영리단체, 심지어 결혼정보업체의 학력 조회까지 인재 검증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퍼스트어드밴티지는 올 초 정보 보호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 인증으로 알려진 국제정보보호표준(ISO27001)을 획득했다.

구직자의 평판 조회는 합법적인 정보 접근이 중요한데, 전 세계 35개국 50개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확실히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정 대표는 “해외 네트워크가 서로 협력해 국가별로 다른 개인정보보호법이나 고용법 등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퍼스트어드밴티지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퍼스트어드밴티지 평판 조회 서비스의 영역은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학력, 경력부터 신용 파산 조회, 법원 범죄 조회까지 천차만별이며, 대상도 신입사원부터 임원급까지 폭넓다. 외국인의 경우 여권, 외국인등록증부터 해외 기록 조사까지 가능하다.

가격은 포함되는 서비스에 따라 최소 30만 원에서 최대 100만 원대 중후반. 평판 조회는 당사자 동의 아래 합법적으로 진행된다. 채용 마지막 단계에서 클라이언트가 의뢰를 해오면 구직자의 동의를 받은 뒤 조회에 들어간다. 설마 이력서를 거짓으로 쓰겠냐고 하겠지만 실제 의뢰가 들어온 5~6건 가운데 1건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정 대표의 말이다. 심각할 경우 채용 취소까지 가기도 한다.

“외국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밟은 것으로 알았던 직원이 알고 보니 고졸로 밝혀진 웃지 못 할 일도 있었어요. 법망을 피해 애매모호하게 이력서를 쓰면 기업의 인사팀에서도 걸러내지 못합니다. 간혹 범법 기록이 있는 사람도 있고요. 만일 회사에서 이런 인력을 채용한다면 어떻겠어요. 극단적으로 채용을 취소하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죠.”
정혜련 퍼스트어드밴티지 한국지사 대표 “한국도 확실한 인사 검증 필요… ‘클린 소사이어티’ 기여하고파”
학력부터 범죄 기록 조회까지…최근에는 채용 시 ‘도덕성’ 중요

요즘 ‘포스코 라면상무’나 ‘윤창중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채용 시 구직자의 도덕성이 과거에 비해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 퍼스트어드밴티지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피고용인의 이전 직장 슈퍼바이저에게 확인하는 등 3단계의 깐깐한 과정을 거친다. 우리나라는 아직 온정주의가 만연해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지요. 그러니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게 아쉽습니다.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당사자들도 채용 시 평판 조회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홍콩만 해도 레퍼런스를 냉정하리만큼 확실하게 합니다. 일본은 조작 건수가 거의 안 나와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국민성이 거기서 나타나죠. 우리나라도 이런 검증 시스템이 자리를 잡는다면 고용 사기와 같은 문제도 서서히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대기업에 비해 인사 시스템과 인재풀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 평판 조회가 더욱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턴이나 계약직, 용역직 모두 심사 대상에 포함돼야 하는데, 검증되지 않은 인력이 사무실의 문턱을 넘나드는 자체가 리스크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향후에는 외국인 비자 발급과 같은 업무에서도 평판 조회를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 밖에 CEO포럼이나 전문가협회 등 각종 단체, 교육기관 등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이 시장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예측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서비스가 클린 소사이어티(clean society)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어요.”



정혜련 대표는…
1975년생. 서울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2003년 일본 브룩컨설팅 입사. 퍼스트 어드밴티지 일본지사 오퍼레이션 매니저. 2008년~현재 퍼스트어드밴티지 한국지사장.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