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특별한 추억’을 원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는 없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부자들일수록 나만이 할 수 있는, 남들과 차별화된 경험을 원한다. 그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힐링하며 나아가 영감을 얻기 위함이다. 단체 패키지여행에서 소규모 프라이빗 투어로, 일반 관광지 탐방에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목적성 활동으로, VVIP 여행의 진화가 눈부시다.
[Korean Super Rich Report] ‘억대’ 해외여행 시대, 내 손으로 직접 추억을 디자인하다
1990년대 여행 형태가 ‘기성복’이라면 2000년대 이후의 로열 투어는 ‘맞춤복’이죠.”

VVIP 여행만 20년째 담당하고 있는 한 여행사 관계자의 말이다. 2000년대 이후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부자들은 ‘남들 다 가는’ 일반적인 여행이 아닌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해진 패키지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여행도 원하는 대로 디자인한다는 뜻에서 ‘여행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2006년 처음 등장했다.

가고 싶은 장소와 일정, 항공사, 숙소까지 말만 하면 그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1% 슈퍼리치들을 위한 프리미엄 맞춤형 여행 상품도 이 무렵 대거 선을 보였다.
[Korean Super Rich Report] ‘억대’ 해외여행 시대, 내 손으로 직접 추억을 디자인하다
[Korean Super Rich Report] ‘억대’ 해외여행 시대, 내 손으로 직접 추억을 디자인하다
풀빌라 즐비한 아일랜드 여행 각광

2010년 고급 맞춤 여행을 표방하며 출시된 하나투어의 ‘제우스’는 2012년 2220명을 대상으로 총 70억 원의 상품을 팔았다. 이는 전년 대비 6배 정도 성장한 수치다. 모두투어의 프리미엄 브랜드 ‘JM’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7% 늘었다.

해외여행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도 고가의 맞춤형 투어가 대세다. 하나투어가 2007년에 내놓은 ‘내나라 여행’의 경우 출시 당시 가격이 100만 원대였음에도 예상 밖의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내부적으로도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내나라 여행’은 전국을 동부권, 서부권, 중부권으로 나눠 지역 문화를 체험하고 최상급 숙소에 묵으며 향토 별미를 맛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VVIP 대상 맞춤형 여행 디자인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여행사 트래누보의 최준혁 대표는 “여행은 명품이나 차, 집과 같은 과시의 대상이 아니라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슈퍼리치들은 즐길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할 경우 아무리 비싸도 지갑 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슈퍼리치들은 어떤 여행지에서 무엇을 할까. 여행은 관광, 레저, 휴양, 문화 체험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지만 공통적으로 사람이 붐비지 않고(특히 한국인이 많지 않고) 조용하며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을 선호한다. 그런 측면에서 고급 풀빌라가 즐비한 발리나 몰디브, 푸껫 등은 여전히 사랑받는 여행지다. 일정을 빠듯하게 잡기보다는 럭셔리하고 이름난 호텔이나 풀빌라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힐링한다. 섬 전체가 고급 리조트로 조성된 푸껫 나카 아일랜드나 캄보디아 송사 프라이빗 아일랜드는 최근 인기가 급부상하고 있는 ‘핫 플레이스’ 중 한 곳이다.

부자들에게 여행은 생활의 연속이기 때문에 숙소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가령, 한국에서 198~264㎡대에 사는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서도 스위트룸처럼 넓은 공간을 선호한다. 젊은 층은 브랜드를 따지기보다 부티크 호텔 혹은 디럭스급 디자인 호텔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평범함을 거부하고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심리 때문이다.
[Korean Super Rich Report] ‘억대’ 해외여행 시대, 내 손으로 직접 추억을 디자인하다
[Korean Super Rich Report] ‘억대’ 해외여행 시대, 내 손으로 직접 추억을 디자인하다
5000만 원 프러포즈 여행·20만 달러짜리 우주여행까지

최근에는 음악, 미술, 등산, 요가 등 한 가지 주제로 전문가와 함께 하는 여행도 인기다. 한진관광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칼팍’은 지난해 여름 한 음대 교수와 함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떠나는 음악 여행을 1650만 원에 판매했다.

하나투어는 지휘자 금난새와 함께하는 스페인 클래식 여행(1000만 원), 레스토랑 창업 전문 지원회사인 ‘마리아나’ 원영성 대표와 함께 도쿄로 떠나는 고품격 미식 여행, 슬로시티 전문가인 이기철 서울대 박사와 떠나는 이탈리아의 미식 여행(600만 원) 등으로 히트를 친 바 있다. 관광마케팅 전문 기업 유니홀리데이는 오페라 드라이빙 고객경험관리(CEM)를 소개했다. 15인승 밴을 타고 이탈리아 베로나를 둘러보고 경력 20년의 베테랑 이탈리아 문화예술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세계적인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 참석하는 ‘특별한’ 투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도 일반 투어와는 천차만별이다. 공식 관람 시간이 끝나고 문을 닫은 박물관은 본격적으로 나만의 공간이 된다. 개인 가이드와 동행해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을 둘러보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문화 여행은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비즈니스 차 외국을 방문하면서 부인을 동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모님’들은 관광지를 둘러보는 흔한 투어보다는 해외에서도 특별한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여행을 하면서 우아하게 취미생활도 겸할 수 있으면 일석이조다. 골프는 가장 흔한 투어 유형이다. 여기에 플러스알파(+α)로 ‘타이거우즈와 함께 골프치기’, ‘브리티시오픈이 열렸던 장소에서 골프치기’ 등 옵션이 붙으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뛴다. 그 밖에도 알래스카에서 사냥하기, 히말라야 둘레길 투어 등 액티비티 여행이나 봉사활동과 여행을 접목한 자원봉사 여행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부자들은 필요에 따라 영화에서 볼 법한 ‘통 큰’ 여행도 망설임 없이 즐긴다. 사파리를 통째로 빌리거나 전용기를 타고 해외로 가서 프러포즈를 하는 프로그램은 최상급 여행이다. 하나투어 제우스는 8인승 전용기를 이용해 홍콩에서 프러포즈할 수 있는 상품을 5000만 원에 판매한다. 프리지아 꽃으로 꾸민 전용기를 타고 홍콩에 도착하면 360도 파노라마 전망이 가능한 빅토리아 피크 갤러리 내에서 둘만을 위한 파티가 준비된다.

아직 국내에서는 수요가 없지만 우주여행 상품도 이색적이다. 지구에서 몇 시간 훈련 받은 뒤 우주로 떠나 2시간가량 머무는 데 드는 비용은 20만 달러 정도다.

최 대표는 “자신이 정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럭셔리하게 즐길 경우 4인 가족 기준으로 억대 여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Korean Super Rich Report] ‘억대’ 해외여행 시대, 내 손으로 직접 추억을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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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1·2세는 소박한 여행, 3세들은 최고급 선호

부자들은 무조건 비싼 여행만을 추구할까. 한 VIP 여행전문기업 관계자는 의외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비용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꼼꼼히 따져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흥미로운 점은 세대별로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컨대 재벌 1, 2세의 경우 알뜰정신이 투철해 의외로 소박한 여행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일례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배낭 메고 기차를 타고 다니며 값싼 여인숙에서 잠을 자면서 비용을 아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조 회장의 검소함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어서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에도 일부러 미국의 중소 도시만을 여행하며 싸구려 모텔에서 묵었다고 한다.

반대로 해외 유학 경험이 많은 재벌 3세들의 씀씀이는 남다르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흔히 알려지지 않은 휴양지의 최고급 풀빌라를 빌려 가족, 연인과 주말이나 휴가를 즐기고 남과 다른 경험을 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연예인들은 어떨까. 한 관계자는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여행사나 관광청의 협찬을 받아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일부는 개인 경비를 들여 초호화 여행을 즐기기도 하는데, 톱스타의 여행은 더욱 조심스럽게 꾸려진다. 숙박, 항공, 투어, 쇼핑까지 철저히 사생활 보호가 우선시된다.




이윤경 기자 ramji@kbizweek.com
사진 하나투어·가루다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