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오는 국산 고급 자동차의 가격대를 보면 웬만한 수입차를 능가한다. 가격 때문에 국산차를 산다는 건 옛말이 됐다. 국산차와 수입차를 고르는 기준도 많이 바뀌고 있다. 2013년 부자들의 자동차 구매 트렌드는 어떨까?
[Korean Super Rich Report] 부자들은 ‘이런’ 차를 산다. 독일차와 디젤 모델에 꽂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있고 저마다 매력을 뽐낸다. 자동차의 다양성이란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켜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입장을 만족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또는 이들과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수입차는 아무래도 눈치 보이기 마련이다.

국산 고급차 수요는 상당 부분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체어맨이나 현대자동차의 에쿠스 등이 그렇다. 최근에는 현대 제네시스 같은 좀 더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찾기도 한다. 제네시스 프라다 GP500의 경우 자동차 값이 7708만 원에 이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입차를 겨냥한 기아자동차의 K9의 경우 가격대가 5228만~8538만 원에 이른다. 기아 K9은 판매가 당초 기대에 못 미쳐 최근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아무튼 이들 국산 고급차의 가격대를 보면 웬만한 수입차를 사기에도 충분하다. 가격 때문에 국산차를 산다는 것은 옛말이라는 얘기. 국산차와 수입차를 고르는 기준도 많이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부자들의 자동차 구매 트렌드는 어떨까?

최근 수입차 트렌드는 독일차와 디젤이다. 수입차 최고의 베스트셀러 카 BMW 520d는 요즘 ‘강남 아줌마 차’라는 별칭이 붙었다. 예전 렉서스 ES가 갖고 있던 별명을 물려받은 것이다.

고유가가 지속되며 연비가 뛰어난 디젤 모델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과거 국내에서 디젤은 시끄럽고 매연이 많은 차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BMW, 벤츠,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내놓은 디젤 모델들은 이러한 선입견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Korean Super Rich Report] 부자들은 ‘이런’ 차를 산다. 독일차와 디젤 모델에 꽂히다
연비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은 오해

이들이 이룬 디젤 기술의 발전은 휘발유 차의 최고 2배에 이르는 연비뿐 아니라 낮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등 환경 측면에서도 앞섰다. 게다가 디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하면서 가속력 등 주행 성능도 뒤지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수입차 시장의 70% 이상을 독일차가 차지하고 있고, 독일차 판매의 80% 이상을 디젤 모델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이 연비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오해다. 부자들도 아낄 것은 철저히 아낀다. 요즘 수입차업계에서는 디젤 라인업을 갖추지 않고서는 차 팔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디젤 모델이 취약한 미국차가 그렇고 일본차도 사정은 비슷하다. 어떻게든 디젤 라인업을 확보하기 위해 수입차의 본사에 SOS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의 일이다. 필자가 일하는 자동차 전문 잡지 오토카 코리아에 벤틀리 뮬산 시승기를 실었다. 이 기사를 본 어느 병원 원장이 잡지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롤스로이스를 살까 고민 중인데 시승기를 보고 뮬산에 관심이 생겼다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과거에는 벤틀리 같은 럭셔리카는 시승차를 잘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슈퍼카도 시승차를 내준다.

실제적으로 국내에서 럭셔리카와 슈퍼카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가격대가 2억, 3억 원을 넘는 모델들이다. 부자들의 자동차 구매 트렌드는 이처럼 가격대에 구애받지 않고 개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니 판매업체에서도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다. 해외 본사에서도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고 예전과 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브랜드의 신차 발표회에 람보르기니의 슈테판 빙켈만(Stephan Winkelmann) 등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고위 임원들이 내한하는 까닭이다.
[Korean Super Rich Report] 부자들은 ‘이런’ 차를 산다. 독일차와 디젤 모델에 꽂히다
낮에는 F1 머신, 저녁엔 파티 즐겨

얼마 전에는 영국계 글로벌 투자회사 웨인그로 파트너스(Weingrow Partners)가 2016년까지 인천 영종도에 레이싱 서킷과 호텔 등이 들어서는 ‘레이싱 라이프스타일 클럽’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람보르기니, 포뮬러원(F1) 레이싱 팀 윌리엄스 등이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이 ‘레이싱 라이프스타일 클럽’을 통해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부자들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자동차가 어른들의 장난감이라면 이를 위한 최고의 놀이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낮에는 람보르기니나 F1 머신을 타고 서킷을 마음껏 달리고 밤에는 호텔에서 파티를 즐긴다. 자동차를 매개로 한 부자 마케팅의 시동인 셈이다.

어느 와인 모임에 초청을 받아 나갔더니 다들 자동차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중 한 성형외과 원장이 최근 포르쉐 911을 샀다고 해 화제의 대상이 됐다. 아직 젊다며 부러워하는 이가 있는 반면에 자신의 스타일은 아니라는 이도 있었다. 부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과거에 전통적인 검은색 대형 세단을 선호했다면, 최근에는 쿠페나 스포츠카 등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분위기가 뚜렷해 보인다. 사회적으로 수입차에 대한 편견이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시각이 변한 점도 한몫하고 있다. 누구나 능력만 되면 원하는 차를 탈 수 있다는(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성숙된 사회 환경의 변화다.

의류업체의 마케팅 용어로 TPO라는 게 있다.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경우 또는 상황)의 약자를 말한다. 사람들은 대개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옷을 입고 나간다. 의류업체는 TPO에 맞춰 옷차림을 달리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과 상품을 개발한다. 그런데 최근 자동차업계의 트렌드를 보면 이와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4도어 쿠페나 그란 투리스모(GT)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모델이 잇따라 등장하는 이유다.

오래전 미국 디트로이트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디트로이트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범죄 도시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지만(실제 위험하기도 하지만), 자동차산업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니 고급 단독주택들이 즐비했다.

동승했던 포드 관계자는 “모든 집집마다 익스플로러(포드의 SUV 모델명) 한 대가 서 있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CEO들은 아내에게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선물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왜 여자들에게 덩치 큰 SUV를 선물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근래 국내에서도 이런 현상을 읽을 수 있다. 가장 큰 수혜자로 포르쉐 카이엔과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를 꼽을 수 있다. 모두 억 대가 넘는 모델들인데 생각보다 판매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포르쉐 카이엔의 경우 여성 고객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의 성공에 자극받아 애스턴 마틴, 람보르기니 등 그동안 SUV를 만들지 않던 브랜드들조차 새로운 SUV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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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SUV·밴 부자들의 세컨드 카로 주목

고급 SUV나 밴 등은 부자들의 세컨드 카로서도 요긴한 역할을 한다. 평소 출퇴근 때는 세단을 이용하다가 주말이나 휴가 때 SUV나 밴을 이용해 가족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쿠페나 스포츠카를 몰고 자신만의 드라이빙을 즐기기도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모델 중에서도 AMG 모델의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모델보다는 차별화되고 좀 더 성능이 뛰어난 차를 원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신분을 상징한다는 개념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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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고급 수입차 시장에서 벤틀리의 약진이 눈에 띈다. 홍보대행사 민컴의 서영진 팀장은 그 원인을 “BMW 7시리즈나 벤츠 S클래스를 2, 3번씩 타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이 다음 차로 업그레이드 하려는데 벤틀리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것은 벤틀리 모델 라인업에서도 세단인 플라잉 스퍼보다 쿠페인 GT 모델의 판매가 더 많다는 점이다. 이 또한 달라진 자동차 트렌드의 한 단면이다. 롤스로이스도 6억 원대 이상의 팬텀 시리즈보다 3억9900만 원의 고스트 판매가 대부분이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슈퍼카는 자동차 세계에서 궁극에 도달할 지향점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국내에서도 이들의 수요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슈퍼카 브랜드에서도 예전과 달리 편의성에 신경 써 처음 슈퍼카를 접하는 이들도 차를 다루기 쉽도록 만들고 있다.

자동차 관련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슈퍼카를 사는 고객들은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지식이 남다르다. 여러 고급차를 경험해보고 다음 단계로 넘어오는 이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슈퍼카로 접근하는 젊은 층도 적지 않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소비 패턴의 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전체 자동차 시장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럭셔리카 시장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다.
[Korean Super Rich Report] 부자들은 ‘이런’ 차를 산다. 독일차와 디젤 모델에 꽂히다
최주식 월간 오토카 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