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터뷰

올해로 건립 35주년의 역사를 보유한 세종문화회관은 상징적인 곳이다.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대표 문화공간인 그곳은 여전히 문화예술인들에게 로망의 무대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일반인에게는 문턱이 높았던 것도 사실.
‘찾아가는 공연’을 통해 ‘함께하는 세종문화회관’으로 거듭나고 있는 데는 박인배 사장의 경영 철학이 적극 작용했다.
박인배 사장은···1953년생.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1988년 극단 현장 창단.2000~2005년 국립극장 운영자문위원.2003~2005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사.2007년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2006~2010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활동. 2010년 극단 현장 예술감독.현 세종문화회관 사장.
박인배 사장은···1953년생.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1988년 극단 현장 창단.2000~2005년 국립극장 운영자문위원.2003~2005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사.2007년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2006~2010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활동. 2010년 극단 현장 예술감독.현 세종문화회관 사장.
지난 3월 25일 세종문화회관 측은 ‘2013년 세종문화회관 중점 추진 사업 설명회’를 가졌다. 창작 공모와 창작 활성화 사업, 서울시 자치구 연계 공연과 네트워크 확대, 시민참여형 문화예술 프로그램 다양화 등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세종문화회관의 ‘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누군가는 “세종문화회관은 그동안 늘 변화를 지향했다”는 ‘뼈 있는’ 말로 반응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새로운 사장이 부임할 때마다 쇄신이니 변화니 하는 단어들이 차별화 요소로 거론됐을 터다. 특히 지난 1999년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후에는 운영적인 부분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면서 더더욱 다양한 변화들이 시도됐다. 변화라는 맥락에서는 같을 수 있으나 지난해 1월 박인배 사장 취임 이후는 ‘콘텐츠’의 활용을 통한 운영에 방점이 찍힌다는 점에서 확실히 노선을 달리한다. 수십 년을 연극계에 몸담아온 현장형 최고경영자(CEO)의 예술 경영 감각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 현장형 CEO의 ‘예술 경영’ 절대 감각
찾아가는 연계 공연으로 문턱을 낮추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박 사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인 그는 대학 시절부터 김지하, 임진택 등 선배들과 함께 연극반 활동을 하며 진보적 연극 운동을 펼쳤다. 이후 서울대 연극반 출신이 주축이 된 극단 연우무대를 거쳐 공장 밀집지역인 서울 구로동에서는 ‘전통문화연구소 살림마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노동자들에게 풍물, 소리, 탈춤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것이 토대가 돼 1988년에는 극단 현장을 창단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국공립공연장 운영활성화 공동위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사,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 등을 거치며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단순히 콘텐츠 제작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한 운영 활성화, 나아가 사람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 삶의 질을 높이는 공연예술의 ‘역할’까지 지금 박 사장이 지향하는 세종문화회관의 모습이 그냥 머릿속에서 ‘뚝딱’ 나온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인생 궤적이다.


취임 후 1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성과를 논하기에 1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취임 후 제일 먼저 하고자 했던 일이 서울시 자치구 공연장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었어요. 그 일환으로 처음 진행한 게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이 자치구 문예회관을 찾아가 공연을 펼치는 연계 공연이었고요. 지난해 봄부터 세 차례 토론회를 거치고 하반기부터 시행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정착이 됐지요. 집중도를 위해 유료 공연을 택했는데 초기에 유료 공연을 하면 보러오는 이들이 없을 거라고 걱정했던 분들도 1만 원짜리 유료 공연이 매진되는 사례 등을 보면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관객 설문을 해봐도 만족도가 높았지요. 그 결과 작년 연말, 각 문예회관에 2013년 작품 라인업을 보여주며 신청하도록 했더니 연간 90회 정도더군요. 올해는 연계 공연이 더욱 자리 잡게 될 것 같습니다.”


연계 공연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이 바로 시민회관이었습니다. 1960년대는 서울시 인구가 얼마 되지 않고 또 규모도 크지 않았으니 시민회관 역할에 한정됐지만, 지금은 각 자치구의 문예회관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요. 즉 세종문화회관의 출발이 시민회관이니 좀 더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틀을 갖춰야 하고, 그러려면 문예회관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전임 사장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전 사장님들은 공연장 운영을 중심으로 사고(思考)한 것 같아요. 1999년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이 되면서 자립도가 높아진 데 이유가 있지요. 수익을 많이 올려야 하다 보니 공연장 운영이나 임대 사업장 활성화 등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실은 재정의 반 정도가 예술단 운영에 들어가요. 예술단 공연을 보다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그러려면 예술단의 창작 활성화 부분이 중요하지요. 연계 공연을 해도 재미없다고 관객이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올해 들어서는 그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공연계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현장형 CEO’의 강점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직원들이 귀찮아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너무 시시콜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으니까요.(웃음)”

이 부분에서 인터뷰에 동석한 문정수 세종문화회관 홍보팀장은 “박 사장님은 음향과 조명의 세밀한 부분까지 지적하는 분이라 직원들 입장에선 쉽지 않은 분”이라며 웃었다.


실제로 세종문화회관은 창작극 활성화에 대한 구체적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여전히 창작극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나요.

“공연계에서 산업이라고 할 정도로 성공하는 장르가 뮤지컬인데, 현재 뮤지컬에서 티켓 파워로 10위 안에 드는 작품 중 창작극이 없어요. 대부분 라이선스나 내한 공연이죠. 이에 대해 우리 뮤지컬 단장은 1990년대 말 한국 영화계 상황과 같다고 하던데 공감해요. 그땐 한국 영화가 외화에 완전히 밀렸는데, 오히려 독립영화를 지원하고 영화 제작사들이 스크린 쿼터에 목매지 말고 붙어보자고 한 결과 지금처럼 한국 영화가 힘을 키우게 된 겁니다. 어떻게 보면 공연 시장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외국 라이선스가 한국 공연 시장을 개척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 정서에 접근하는 창작 작품이 잘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고 생각해요.”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 현장형 CEO의 ‘예술 경영’ 절대 감각
국내 공연문화 발전을 위한 작지만 큰 변화

아닌 게 아니라 국내 공연 시장은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 과정에서 대표 장르였던 연극이 지속적으로 쇠락하고 그 자리를 뮤지컬이 대신하게 된 변화도 있었고, 해외 관객의 유입이나 해외 진출 등의 성과도 있었다. 오랫동안 공연계에 몸담았던 박 사장에게는 그러한 변화를 체감하는 정도가 남다를 터.


국내 공연 시장이 외형적으로는 많이 확장됐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우울한 통계가 하나 있어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통계 자료인데 지난해 국내에서 공연된 총 작품 수는 늘었는데 총 관객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해요. 작품의 규모 등 세부적인 분석에 들어가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이렇습니다. 총 공연 수가 증가했다는 건 작품 자체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뜻하고, 관객 수가 늘지 않았다는 건 아직 영상이나 뉴미디어 매체에 계속 밀리고 있다는 거지요. 사실 연극을 해왔던 제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연극이 계속 위축돼 왔는데 그 기능이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해요. 대학로에 연기력이 확보된 중견 연기자들이 없고, 연출자들도 많이들 떠나는 현실이거든요.”


사실 공연 장르만 놓고 봐도 뮤지컬로 편중되는 성향이 강한데요, 다양성 측면에서 문제되지 않나요.

“저는 오히려 뮤지컬을 확대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뮤지컬이 넓게 보면 음악극인데 사실 음악극이란 게 극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가 결합된 것 아닙니까. 요새는 영상도 많이들 활용하니 시각적 요소도 결합되고 있지요. 어찌 보면 우리 전통 공연에서도 ‘가무악일체’라고 이야기하는데 뮤지컬적 요소가 있는 것이거든요. 결국 극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가 결합되면서 공연의 질적 완성도가 집약되고 종합예술이 되는 겁니다. 뮤지컬도 장르가 다양하게 나뉘고 또 장르의 확장이 뮤지컬 형태의 음악극적 방법에서라면 ‘편중’이라고 말할 건 아니지요.”


외국인 관객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고무적인 현상 아닌가요.

“사실상 지금까지는 한류 팬들을 보유한 일부 스타 출연자들의 성과라고 봐야죠. 외국 관광객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창작 활성화와도 연계돼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내국인들이 보지 않는 공연을 외국인들이 와서 볼까요. 한국 관객들이 꼽는 대표 작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정착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대표적 사례인 ‘지하철 1호선’이나 ‘난타’ 등도 처음엔 내국인 중심의 공연이었지요.”


‘거품’으로 지적돼 온 스타 캐스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출연료 비중이 높아지면 제작사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흥행 보장으로 인한 수익구조 계산하에 캐스팅이 이뤄지는 것이죠. 그만큼 제작 규모가 커지고 있고 또 시장이 형성되는 측면도 있어요. 다만 스타들의 생명력이 무대에서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가 문제겠죠.”


일각에서는 외부적인 경제 상황으로 인해 공연계도 타격을 입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여기 앉아있으면 외부 대관단체의 점유율 등을 다 볼 수 있는데, 수치를 말할 순 없고 그렇게 타격이 큰 것 같진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초고가의 공연은 타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여가 문화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공연은 다른 콘텐츠와 달리 복제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어요. 한편으론 그런 문제 때문에 처음 거론했던 공연 콘텐츠의 ‘공유’를 생각하게 됐던 것이지요. 한번 공연된 작품을 10회 하는 것보다 50회 하는 것이 회당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절대적 요소거든요.”


세종문화회관은 여전히 하나의 ‘상징’입니다. 사장님이 지향하는 세종문화회관의 위상과 역할은 어떻게 되나요.

“서울시 공공 공연장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문예회관들과 네트워크 연결이 잘 돼 있으면서 프로그램이나 작품 공유가 가능하도록 중심 역할을 해야죠.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이 아니라 서울시 전역으로 연결돼 있는 세종문화회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연극을 통해 민중운동을 하셨던 것처럼 지역 주민들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공연을 통해 어떤 변화를 주고 싶은 건가요.

“직접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고 몰입해보는 감동을 느껴보는 건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 경험들이 축적되면 스스로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실제 지역 동아리에서 활동할 수도 있겠죠. 또 그런 이들이 많아지면 문예회관은 자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테고요. 선순환이 생겨나면 결과적으로는 공연 문화 자체가 성숙하고 양적, 질적으로도 도약하게 될 겁니다.”


남은 임기 동안 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시죠.

“지난해부터 진행된 예술단 창작 활성화가 올해는 작품적인 면에서 변화가 있었다면, 이후로는 완성도를 높여 몇 년간 유지되는 대표 레퍼토리로 키울 생각입니다. 또 하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세종’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세종대왕의 여러 치적 중에는 언어적 요소도 있지만 음악적 업적도 대단하시거든요. 국악을 정리했고 ‘정간보(井間譜)’도 만들었지요. 그처럼 다양한 창조적 역량의 발휘가 세종문화회관 예술 창작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방법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