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 직후의 위스키 원액은 무색투명한 색에 알코올 도수도 약 70%로 높다. 강하고 보리향이 짙은 위스키 원액은 오크통에서 수년에서 수십 년 숙성되면서 다양하고 깊은 풍미를 지닌 스카치위스키로 거듭나게 된다.
오크통 숙성 시 2단으로 쌓은 전통적인 더니지 방식.
오크통 숙성 시 2단으로 쌓은 전통적인 더니지 방식.
스카치위스키는 맥아, 보리, 밀 등 곡류를 원료로 해 발효시켜 증류한 증류주다. 기본적인 제조 방법은 원료를 당화시켜효모를 섞어서 발효한 후 증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두 차례의 증류 과정을 마친 증류주는 무색투명하며 약 70%의 높은 알코올 도수와 거칠고 보리향이 강하며, 불순물이 포함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얻은 증류주는 오크통에서 최소 3년에서 길게는 50년 이상 잠을 잔다.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이 기간 동안 위스키의 미숙한 향은 사라지는 대신 꽃 향, 벌꿀 향, 바닐라 향, 과일 향 등이 가미되며 강하고 부드러운 풍미를 갖게 된다. 오크통에서 위스키가 숙성되는 동안 어떠한 다른 가공이 더해지지 않음에도 이렇게 변해 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신비로울 따름이다.

과연 위스키를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 다양한 풍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을까? 초창기 스카치위스키는 무색투명한 단순히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액에 불과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1707년 스코틀랜드를 합병시킨 영국 정부가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위스키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면서부터다.
나무로 불을 지펴 참나무 조각들을 토치하는 과정.
나무로 불을 지펴 참나무 조각들을 토치하는 과정.
오크통 종류에 따른 위스키의 개성

위스키 제조자들은 세금을 피해 스코틀랜드 북부 하일랜드(Highland)의 산속에 숨어 달빛 아래서 위스키를 밀조했으며 그들을 가리켜 ‘달빛치기(Moon Shiner)’라고 불렀다. 그렇게 만들어진 술이 많이 누적되자 감시의 눈을 피해 당시 많이 마시던 셰리와인 통에 담아 두었다고 한다. 나중에 술을 팔기 위해 술통을 열어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투명했던 위스키가 호박색의 고운 색과 짙은 향취를 지닌 아주 부드러운 맛의 술로 변한 것을 발견하게 됐다. 이렇게 우연히 알게 된 숙성법은 지금까지 위스키 제조에 있어서 빠져선 안 되는 과정이 됐다. 현재 스카치위스키협회(SWA) 규정으로 스카치위스키는 반드시 오크통에 3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는 법규가 정해져 있다.

위스키 제조 과정에 있어서 오크통에서의 숙성 과정은 위스키의 결정적인 풍미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오크통의 종류, 크기, 숙성 기간에 따라 위스키의 향과 맛, 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오크통으로 버번(Bourbon)과 셰리(Sherry) 오크통이 있다. 버번을 담던 오크통을 사용해 숙성시킨 위스키는 황금빛에 달콤한 바닐라와 코코넛 향이 특징이고, 반면에 스페인산 셰리 와인을 담아 숙성시키던 오크통을 사용하면 진한 호박 빛깔로 꽃 향과 말린 과일, 초콜릿 향을 지닌다. 그 밖에 위스키의 독특한 개성을 갖게 하기 위해 럼주를 담았던 오크통, 유명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 때로는 단맛이 강한 소테른(Sauternes) 오크통을 사용해 보다 독특한 위스키를 생산하기도 한다.

증류소에 따라서 한 종류의 오크통을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다른 종류의 오크통들을 이용해 숙성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버번 오크통에서 11년 숙성시키고 원액을 그대로 셰리 오크통으로 옮겨 와서 마지막 1년 이상을 숙성시켜 12년산 싱글 몰트위스키를 탄생시킨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버번 오크통과 셰리 오크통 각각의 특징이 잘 조합돼 또 다른 개성 있는 위스키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오크통마다 다른 수많은 맛을 조화시켜 일관된 맛을 갖도록 하는 것이 좋은 위스키를 만드는 핵심 요소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지역별로 증류소를 둘러싼 환경에 따라 위스키의 특징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같은 지역이라도 증류소마다, 생산 방식에 따라 각각 다른 개성을 지닌다. 한 증류소 안에서 같은 숙성 기간을 보냈을지라도 신기하게 숙성 창고 안에서의 오크통 위치에 따라 풍미가 조금씩 다르게 변한다. 위치에 따라 지면이 가까운 곳과 습도와 통풍 조건이 달라 풍미가 서로 다른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3단으로 쌓는 더니지(dunnage) 방식과 현대적으로 높이 쌓아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랙(rack) 방식이 있다. 아무래도 오크통이 최상단과 하단의 위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온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숙성의 진행 조건에 차이가 나면서 개성이 다른 위스키가 탄생하게 된다.
셰리 오크통을 만들기 위해 참나무를 자연 건조시키는 과정. 스페인 헤레스(Jerez).
셰리 오크통을 만들기 위해 참나무를 자연 건조시키는 과정. 스페인 헤레스(Jerez).
12년 저장하면 원액의 25%는 천사의 몫

스코틀랜드에서는 오크통과 관련한 달콤한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스카치위스키의 숙성 창고에 수많은 오크통을 지키기 위해 위스키 천사(angel)들이 살면서 그 대가로 위스키를 마신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그것이다.

위스키가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과정에서 소량의 알코올과 수분이 증발된다. 오래 잠을 자는 동안 온도의 변화에 따라 호흡을 하기 때문에 매년 평균 2%의 위스키 원액이 증발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기 중으로 증발된 원액은 숙성 창고를 지키는 천사들이 그 대가로 마신다고 해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한다.

여기서 연산이 높은 위스키일수록 값이 비싼 이유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12년 동안 저장된 오크통에서는 위스키 원액이 약 25% 증발된다. 세월이 지날수록 증발되는 원액의 양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긴 세월의 값과 그에 따른 이자, 그리고 증발되는 원액의 희소성 때문에 연산이 높을수록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그렇다. 우리는 친절하게도 이미 천사들이 마신 위스키 비용을 함께 지불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날개까지 내려두고 위스키를 즐기고 있는 위스키 천사들.
날개까지 내려두고 위스키를 즐기고 있는 위스키 천사들.
강윤수 글렌피딕 브랜드 엠버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