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특집 성공 사례

땅을 사고 각자의 취향과 형편에 맞게 설계한 공동의 집을 짓고 그렇게 어울려 산 지 어느덧 11년째. ‘예띠의 집’이라 이름 붙인 아주 특별한 이 가족공동체는 이제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범 사례가 됐다. 결과적으로 잘한 결정이었고, 가족구성원들의 만족도가 높지만 이 가족이라고 왜 시행착오가 없었을까. 대가족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극대화한 이 가족의 아주 특별한 비결.
[新 대가족의 경제학] 이근후·이동원 박사 부부 “한 지붕 네 가족 ‘공동체’의 지속 가능 비결”
“우리들은 예띠의 집에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밉니다.” ‘예띠의 집 헌장’ 첫 번째 조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5개 항목으로 된 헌장의 맥락은 하나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더불어 행복하게 어울려 사는 것. 굉장히 단순하고 보편적인 말이지만 실제 그렇게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해관계 없는 가족이라고 해서 쉬울 리 만무. 오히려 가까운 사이라는 미명하에 오해와 갈등의 여지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1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예띠의 집은 대단히 성공적이다. 어울려 사는 게 일상화된 지금 상태로도 그렇지만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슬기롭게 풀어갔다는 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실리적 장점보다 정서적 안정감이 주는 만족 커

(사)가족아카데미아 사무실에서 만난 이근후(79·이화여대 의대 명예교수) 박사와 이동원(77·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박사 부부는 “오늘은 기분이 유달리 좋은 날”이라 했다. 알고 보니 여성가족부에 후원을 신청한 ‘스마트 에이징’ 즉 아름답게 늙어가기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이 ‘오케이’를 받은 것이었다.

최근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책을 내기도 한 이근후 박사와 아내 이동원 박사는 가족아카데미아에서 오랫동안 가족과 사회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해온 터.

‘가족’에 대한 이 박사 부부의 관심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3대가 한 지붕 아래서 따로 또 같이 모여 살며 ‘가족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도 그런 맥락. 그러나 사실 이 박사 부부가 2남2녀의 자녀들과 함께 대가족을 이뤄 살게 된 것은 큰아들 내외의 제의에서 비롯됐다.

“어차피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거나 편찮으시면 장남인 우리가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자식들이 다같이 모시고 살면 좋지 않으냐”는 게 큰아들 내외의 뜻이었다.

“사실 처음엔 제가 반대했어요. 저도 30년 넘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봤지만, 아무리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가 좋아도 불편한 일이거든요. 요새는 며느리들이 시금치도 안 먹는다던데 며느리 입장에서는 괜한 시집살이일 수 있고, 저 역시 왜 며느리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나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오히려 적극적이었어요. 직접 앞장서서 의견을 구하고 다녔죠.”

그렇게 말을 꺼낸 후 2년, 서울 구기동에 드디어 따로 또 같이 모여 사는 ‘한 지붕 네 가족’이 탄생했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은 가족들이 서로 뜻을 모으고 합의를 하고 원칙을 세우는 심리적 과정부터 시작해 실제 건축을 하는 물리적 과정이 포함됐다.

‘예띠의 집’이라 이름 붙인 총 다섯 세대의 가족공동체는 같은 건물에 살고 있지만 각각 현관도 다르고 철저히 독립된 라이프스타일을 보장받는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절대적인 원칙은 집을 지을 때부터 적용돼 각 집마다 경제적 능력, 식구 수에 따라 평수도 다르고 구조도 제각각일 정도다.

10년 넘게 ‘이탈자’ 없이 모여 사는 형태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지만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얼굴 한 번 못 보는 경우도 있고, 가족모임도 전체 공지를 통해 미리 정해진 날이나 전원 합의가 된 ‘번개 모임’이라야 가능하다.

어쩌다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할 때도 관계를 막론하고 ‘가족이니까 무조건적인 양해’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보다 더 철저하게 예의를 지키고 정해진 규칙을 지킨다. 물론 이들 가족이라고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었다.

“서로의 상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그걸 공유하는 범위로 좁히려면 갈등이 없을 수가 없지요. 다만 우리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풀어갈까에 관심을 갖자고 했어요. ‘아주 친해야 한다’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투지 말자는 합의를 한 겁니다.

그렇게 10년간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지금은 학습이 많이 됐지요. 처음 2~3년이 고비인 것 같아요. 취향도 다르고 라이프스타일도 다르잖아요. 이렇게도 다퉈보고 저렇게도 다퉈보면서 이젠 서로에 대해 파악이 돼 어떻게 하면 안 부딪치고 편하게 살 수 있는지를 터득했지요. 처음엔 접촉을 많이 하고 그만큼 많이 부딪쳤다면, 지금은 접촉을 줄이고 대신 부딪치는 일도 줄어들게 된 식이에요.”

같이 살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만 생각하기엔 한 지붕살이의 장점이 너무 많았던 것도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하게 된 이유였다. 모여 살기 전까지 자기 집이 없었던 자녀들이 각자의 집을 갖게 된 것이나, 부모 부양의 부담을 나누게 된 것 등 실리적 효과도 적지 않았지만, 그보다 가족들이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과 형제자매가 없었던 손자손녀들이 사촌들과 함께 자라면서 누리는 혜택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제일 덕 본 건 우리 부부지요. 아이들이 가까이에서 케어를 해주고 있으니까요. 아침식사만 저희가 해결하면 평일 저녁식사와 주말은 당번을 정해 아이들이 챙겨주죠. 또 남편이 아프면 시간 되는 사람이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하고, 의사인 딸이 옆에 있으니 주치의가 있는 셈이지요. 손자손녀를 자주 보니 웃을 일도 많고요.

다른 소소한 도움도 받지만 가장 큰 건 정신적 안정감이에요. 우리 다음으론 손자손녀들이 혜택을 많이 봤죠. 각 집마다 아이들이 하나인데도 모여서 지내니 혼자 크는 외로움이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반드시 육아 문제 때문에 모여 살게 된 건 아니었지만, 맞벌이인 아이들을 대신해 우리 부부가 시간이 될 때마다 손자손녀들을 봐줬으니 그것도 실리적이었죠. 지난번엔 한 손자 녀석이 말하기를 할아버지가 가장 잘한 게 우리를 같이 살게 한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新 대가족의 경제학] 이근후·이동원 박사 부부 “한 지붕 네 가족 ‘공동체’의 지속 가능 비결”
물리적 거리보다 ‘네트워킹’이 중요한 미래의 가족

이 박사 부부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주위에서는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살고 싶지만 아이들의 반대로 좌절됐거나, 혹은 지레짐작해 추진조차 못하는 이들에게 부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으면서 결과만 보고 시도한다면 누가 해도 실패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예띠의 집’ 가족공동체는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탄생한 결과물이 아닌 뿌리가 깊은 나무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씨앗을 많이 뿌렸던 셈이지요. 아이들 스스로 크리스마스 가족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고, 가족 여행도 일정에서부터 비용까지 직접 실천 가능한 플랜을 짜고 그랬어요. 아이들을 결혼시키면서 남편이 6개월은 같이 살자고 제안해 그렇게 했던 것도 오늘의 씨앗이 됐죠. 막내는 우리와 같이 살다가 합류했고, 다른 집들도 실제로 다들 6개월 이상씩 우리와 살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덜했을 거예요. 얼마 전에 한 지인이 자녀들에게 같이 살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하던데, 우리처럼 모여 살 수 있는 기반이 차곡차곡 쌓이지 않은 가족들이 갑자기 실행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에요.”

그렇다면 방법이 없을까. 이 박사 부부는 지금부터라도 서로 의견을 내고 동의를 구하는 등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처럼 꼭 같은 건물이 아니더라도 근거리에 모여 살며 물리적으로 독립된 환경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느낀다면 가족회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선에서 일종의 ‘계약’을 하는 것도 좋다. 또 하나, 부부가 강조하는 것은 부모 세대가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 관계로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한다고 말한다.

“모여 산다고 항상 모든 걸 같이 한다는 건 절대 아닌데, 그러려면 부모 세대가 오픈 마인드로 많은 걸 양보해야 해요. 약속해 놓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화내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 여행을 일 년에 한두 번 함께 가는데 가서 공유하는 시간을 미리 정하고 나머지는 각자 놀아요. 따로 또 같이 ‘헤쳐 모여’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같이 가는 여행길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좋지요.”

이미 신 대가족을 이뤄 살고 있는 이 박사 부부는 이론적으로도 신 대가족의 형태는 미래 가족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몇십 년 전에 쓴 ‘제3의 물결’에서 말하기를 미래의 가족은 확대가족의 형태라고 말했어요. 당시 모두가 핵가족화된다고 주장할 때이니 그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질 않았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과거 농경사회에서 확대가족이 노동력이었고 그게 경쟁력이었다면 미래의 확대가족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한발 앞서갈 수 있는 겁니다. 토플러가 말한 확대가족은 한 지붕 밑에 사는 확대가족이 아닌 네트워킹이 형성된, 지금의 신 대가족 모습을 말한 게 아니었나 싶어요.”(이근후)

“루즈 베네딕트가 1960년대에 한국에 왔을 당시 우리나라는 대가족이 많았어요. 그걸 보고 그는 ‘가장 바람직한 게 삼대가족’이라고 말했지요. 사회학적으로 보더라도 바람직한 신가족의 모습은 인터 디펜던트, 즉 상호의존적인 가족이에요. 우리나라는 너무 끼고 살아서, 서양은 너무 개인적이어서 각각 갈등이 많이 생기죠. 개인을 존중하면서 상호 끈을 놓지 않는 가족의 모습일 때 서로 즐거움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동원)


“우리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풀어갈까에 관심을 갖자고 했어요. ‘아주 친해야 한다’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투지 말자는 합의를 한 겁니다.”


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