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커플링’이란 단어는 올 들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증시가 오르는 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코스피 지수를 뜻할 때 주로 쓰인다.

디커플링(decoupling). 언뜻 연인들끼리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끼는 반지를 뜻하는 ‘커플 링(couple ring)’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단어는 2013년 한국 증시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국가와 국가 또는 한 국가와 세계의 경기 등이 같은 흐름을 보이지 않고 탈동조화되는 현상(두산백과사전)을 의미한다.

과거 증시에서 디커플링은 선진국과 신흥국 증시 사이에서 발생했다. 선진국 증시가 먼저 오르면 신흥국 증시가 차이를 줄이면서 뒤따라 오르는 식이었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디커플링은 한국에만 나타나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서 10~20년을 몸담은 고참 애널리스트(증권분석가)들도 “유례없는 현상이다”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일본 17% 오를 동안 한국은 0.1% 상승

각국 증시의 등락률을 살펴보면 한국 증시의 디커플링은 명확해진다. 한국 코스피 지수는 올 들어 3월 13일(한국 시간 기준)까지 0.13% 올랐다. 미국 다우존스는 1만4450.06을 기록,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올 들어 10.27% 상승했다. 나스닥과 S&P500도 각각 7.38%, 8.86% 급등했다.

일본 닛케이 산업평균은 17.74% 올라 선진국과 신흥국 증시 중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영국(FTSE100)·프랑스(CAC30)·독일(DAX30) 증시도 4.65~ 10.39% 오르며 축포를 쏘고 있다. 신흥국 증시의 상승세도 가파르다. 대만 가권(3.84%) 지수 상승률도 코스피보다 높다. SET(태국)·VN(베트남) 지수 역시 10% 이상 오르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올 들어 계속 디커플링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2월에는 ‘스몰 커플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증시의 상대적인 강세도 있었다. 하지만 3월 들어서는 다시 1월과 같은 디커플링 조짐이 확인되고 있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한국 증시에 나타난 디커플링 현상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라며 “증시에 부정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엔화 약세가 한국 증시 억눌러

디커플링의 가장 큰 원인은 엔화 약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출 상위 100대 품목 중 약 50%가 일본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과 중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국 간 수출경합도(ESI)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08년 0.456까지 떨어진 수출경합도는 2012년 1~11월 누적 기준 0.481까지 상승한 상황이다. 한·일 양국의 수출 경쟁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작년 10월부터 꾸준히 하락해 현재 달러당 96엔까지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높아진다. 문제는 엔화 가치가 달러뿐만 아니라 원화에 대비해서도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원·엔 환율은 작년 4분기 초 100엔 당 1426원에서 3월 8일 1147원으로 약 20% 떨어졌다.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원·엔 환율의 심리적 지지선이던 1150원이 붕괴되면서 일본과 수출 시장에서 가격 경합을 많이 하는 자동차·기계·화학 업종의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엔저(円低)의 ‘뜨거운 맛’을 봤기 때문에 엔 약세가 재차 진행되면 시장은 반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리스크에 투자심리 악화

북한 리스크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이유다. 북한의 도발이 하루 이틀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좀 심각하다”라는 주장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키 리졸브 훈련, 천안함 피격 사건 3주기, 김정은 추대 1주년, 김일성 출생일, 조선인민군 창건일 등이 4월 말까지 이어진다. 한국 정부의 대응도 강경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중재자’ 역할을 했던 중국 역시 정권 교체와 핵실험에 대한 내부 반발로 영향력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승우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제1의 투자 판단의 잣대로 삼을 수는 없지만 한반도 위기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고조돼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경기방어주 비중을 높이거나 헤지 수단을 마련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책 공백+약해진 외국인 순매수

디커플링의 원인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 공백을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1988년 이후 코스피 지수는 대통령 임기 1년 차에 27.7%, 2년 차에 32.4%의 평균 수익률을 냈다. 새로 구성된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쓰기 때문에 증시도 상승세로 화답하기 때문이다. 증시에선 박근혜 정부에 강력한 내수부양책을 기대했다. 그러나 3월 17일에야 뒤늦게 정부 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된 상황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예상보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효과가 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금융통화위원회 등을 통해 내수 부양 의지를 보일 것인지 여부가 관전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4월 회복 시작…IT 관심

한국 증시가 환율, 북한 리스크, 정책 공백 등의 장애물을 딛고 다시 커플링을 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빠르면 4월쯤엔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완연해지면 서서히 한국 증시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선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근 엔화 약세의 원인이 미국 경기 회복에 따른 달러 강세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성노 KB투자증권 이사는 “최근 달러가 유로화, 엔화 등 대부분의 통화 대비 강세로 나오는 것은 미국의 경제지표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환율이라는 가격 요인보다는 미국 수출 시장 확대라는 공급 증가 요인이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도 “G2(미국·중국)의 경기회복세는 코스피 시장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확대는 한국 수출주에 모멘텀(주가 상승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심을 가질 업종으로는 전기전자(IT)가 꼽혔다. 일본 IT기업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춘 데다가 미국과 중국 수요 증가의 직접적인 수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황정수 한국경제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