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OBLIGE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다니다 보니 길이 되었다.”

최세규 한국재능기부협회 이사장은 그렇게 서서히 나눔에 물들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쁘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표현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법. 오랜 고생 끝에 성공적으로 일궈낸 사업도 다 내려놓고 나눔의 매력에 빠져 사는 그는 표정부터가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과연, 나누는 삶이 주는 에너지란 그런 것이다.
최세규 이사장은…
1961년생. 한국신지식인협회 3, 4, 5대 회장. 현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상임부회장·미래지식경영원 회장·(주)동양키친나라 회장·(사)한국재능기부협회 이사장.


어찌 보면 물질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일은 가장 편하고 빠른 길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들여야 가능한 재능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나눔이지만 아무나 하기 힘든 나눔이기도 하다. ‘재능’이 걸림돌이 돼서가 아니다. 사실 재능 기부에서 말하는 ‘재능’의 본질이란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특별한 무언가뿐만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 개념이다. 이를 테면 목욕 봉사가 될 수도 있고, 설거지가 될 수도 있는 식이다.

지난해 말 발족한 한국재능기부협회는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넘어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부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실현’에 초점을 두었다. 협회를 창립한 이는 바로 최세규 이사장. 사실 그는 재능 기부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래전부터 재능 기부를 실천해왔다. 협회가 탄생하자마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성과들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오랜 노하우와 추진력에 기인한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재능 기부 단체를 계획하게 된 건 3년 전부터였어요. 나눔이 많이 보편화되긴 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재능 기부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가령 전문 지식을 갖고 일하다가 은퇴를 하게 되면 그 재능이 아깝잖아요.

제 경험을 빗대면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사업을 하면서 얻었던 비결 등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렇다고 번번이 많은 분들에게 무료로 재능을 나누라고 하면 지속 가능한 나눔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협회를 만들고 때로는 최소한의 기회비용을 협회에서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을 세운 거죠.”

협회를 창립하자마자 많은 이들이 뜻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창립 4개월째인 현재, 명예이사장인 정운찬 전 총리를 포함해 참가 인원만 500명을 넘어섰고 협회 운영비 등을 위해 회비를 내겠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물품으로 후원하거나 행사 진행 시 노동을 기부하겠다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재능 나눔 활동의 신호탄이었던 재능나눔 콘서트에는 가수, 아나운서 등 문화예술인 14명이 그들의 재능을 기부했고, 기업인 20여 명은 관객들에게 선물할 후원물품을 기부했다.

440여 명이 낸 자발적인 공연 관람료 1만 원에 바자회 수익을 더한 1000만 원이 첫 번째 나눔 활동의 결과물. 이어 사랑의 자장면 콘서트에서는 스포츠봉사단과 함께 홑몸노인, 장애인 800여 명에게 콘서트 공연과 함께 자장면을 나누어주었고, 예식장에서부터 드레스, 축가에 이르기까지 14명의 재능 기부로 이뤄진 장애인 부부 2쌍의 무료 결혼식을 진행하는 등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재능기부협회 창립 후 나눔 활동의 신호탄이었던 재능나눔 콘서트. 가수, 아나운서 등 문화예술인 14명이 재능을 기부했다.(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로 이뤄진 스포츠봉사단과 함께 진행한 사랑의 자장면 콘서트. 최세규 이사장이 직접 자장면 면발을 뽑고 있다. (우)
한국재능기부협회 창립 후 나눔 활동의 신호탄이었던 재능나눔 콘서트. 가수, 아나운서 등 문화예술인 14명이 재능을 기부했다.(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로 이뤄진 스포츠봉사단과 함께 진행한 사랑의 자장면 콘서트. 최세규 이사장이 직접 자장면 면발을 뽑고 있다. (우)
기부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하다

“사실 협회를 세울 때 과연 잘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향후 나눔이 재능 기부 쪽으로 흐를 것이라는 데 확신이 있었죠. 전 세계 기부 문화에 대해 리서치를 해본 결과 이미 선진국에선 재능 기부가 보편화됐다는 데서 힘을 얻은 겁니다. 그리고 협회를 하겠다고 하니 많은 단체에서 함께 하자는 제의들을 해오더군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로 이뤄진 단체로 우리와 양해각서(MOU)를 맺은 스포츠봉사단이 그 대표적인 예죠.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하잖아요. 모든 일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니 사람이 중심이 되는 재능 기부야말로 그 가치가 클 수밖에 없죠.”

그는 재능 기부가 주는 기쁨과 보람이야말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물질은 주고 나면 그걸로 끝이지만, 직접 삶의 현장에서 나눔을 실천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짐작할 수 없다고도 했다.

“가끔 ‘저는 재능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분들에게 양로원에 가서 1시간만 어른들과 놀아드리자, 연탄 배달을 해주자, 설거지를 해줘도 좋다, 행사 진행 시에 주차를 맡아 달라는 등으로 제안을 합니다. 재능 기부란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에요. 마음만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죠.”

최 이사장은 한때 자수성가해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지금도 동양키친나라의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긴 하지만 실제 경영은 동생이 맡아 하고 있다. 경영에서 손을 뗀 건 오로지 나눔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거의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업이 성공 궤도에 오르는 과정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경험이 그를 변화시킨 셈이다.

직원 30여 명을 둔 동양키친나라는 주방용품 공급회사로 중소 유통기업에서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그 시작은 미미한 정도가 아니라 가시밭길투성이었다. 1989년 그의 나이 스물아홉,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인과 함께 수석 사진 사업을 시작한 그는 얼마 안 돼 자본금만 날리고 실패로 막을 내렸다. 당시 그의 수중에 있던 300만 원으로 도전한 새 사업이 바로 주방용품 할인 매장.

신당동 33㎡(10평)짜리 지하 매장에서 직원 한 명을 데리고 시작한 사업이 쉬울 리가 없었다. 유통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었을 뿐더러 그 누구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만을 믿고 밤낮없이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몸으로 뛰며 길거리 마케팅을 하고 무조건 싸게 파는 전략과 한 번 온 고객은 반드시 다시 찾게 한다는 고객 감동 전략을 활용한 결과 1년 반 만에 손익분기점을 달성, 그 지점을 통과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인 1996년, 4층 규모의 번듯한 사옥을 지었으니 그만하면 대성공.

“어느 날 사업 시작한 지 5년 만에 해를 보며 퇴근했는데 청운동 집까지 가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군요. 항상 새벽에 출근해 밤중에 퇴근했으니 그 일상 자체가 감격이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일했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받은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를 나누고 싶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에서 교정·교화 활동으로 무료 창업 컨설팅을 한 게 시작이 됐죠. 그 후 제3단계 꿈의 마지막 단계였던 사옥까지 짓고 나니 이제는 이익 창출이 아닌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됐던 겁니다.”
가끔 ‘저는 재능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재능 기부란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에요. 마음만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죠
가끔 ‘저는 재능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재능 기부란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에요. 마음만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죠
자수성가한 사업가, 사회 기여로 턴하다

그 후 그는 뜻이 통하는 몇몇 기업인들과 한국프랜차이즈협회를 설립했고 예비 창업자들에게 지식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재능 기부의 시작인 셈이다. 그런 활동들이 인정을 받으며 1999년 정부로부터 신지식인에 선정됐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끊기면서 없어질 뻔한 한국신지식인협회 회장을 맡아 사비를 털어 협회를 운영하기도 했다.

각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와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 국가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신지식인상은 기업인을 격려하는 차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고, 그 또한 사회 환원의 한 방법이었다.

회사 일을 병행하기 힘들어진 건 그 무렵이었다. 점점 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어느 한쪽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당연히 그가 택한 일은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나누는 일이었다.

“3단계 중 마지막 목표에 도달했기 때문에 사업에 미련을 버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격상 뭘 하더라도 무조건 최고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결단의 원인이었죠. 사장이 회사가 아닌 사회 활동에 전념하다 보면 당연히 회사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겠지만, 직원들을 믿었고 그만큼 인센티브제도 등을 통해 사장이 없어도 잘 돌아가도록 장치를 마련했죠.”

그렇다고 해도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있지는 않았을까. 대답은 명쾌했다. “있었지만 그래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아무리 좋은 계획도 세워만 놓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나마나 한 것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했는데, 지금은 딱히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뜻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눔은 나 혼자, 내 가족이 아니라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위해서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에요. 한 사람의 재능이 고용을 창출할 수도 있고, 사회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저는 체험을 통해 깨달았고 그러니 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모두가 나눔으로 동행할 때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이 될 거예요. 참으로 엄청나지 않나요.”

짐작했겠지만 최 이사장의 나눔 행보는 여기가 목적지가 아니다. 한국재능기부협회를 ‘한국’에 국한된 기부 단체가 아니라 세계적인 단체로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 이미 전국적인 확대를 위해 제주도와 전북지부를 세웠고, 4월엔 제주도에서도 나눔 콘서트를 할 계획이다. 재능 기부의 다양한 방법론과 아이디어도 늘 고민 중이다. 그 예로 재능 나눔 마라톤 대회와 재능 기부 갤러리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제 수첩에는 늘 아이디어들이 빼곡해요. 재능 기부는 다양한 방법론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시스템화한다면 라이온스클럽처럼 세계적인 나눔 단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다 같이 행복하도록 하는 것, 그게 제가 이 길을 택한 이유예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어때요, 동참하지 않으실래요?”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