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근대 사이 유럽의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 법률가들은 여러 사교 모임을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문화가 유행했다. 각 분야 리더들이 혼연일체가 돼 생성한 ‘융합’의 힘은 이후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르네상스’라는 인류 역사의 찬란한 황금기로 이어졌다. 현대에도 서구에서는 부유층을 비롯한 사회지도층들이 사교클럽을 중심으로 인맥을 형성하고 서로 연대하고 있다.
[상위1%, 그들만의 사교클럽] 해외 사교클럽 문화
서양의 사적인 사교 모임을 흔히 ‘살롱 문화’로 일컫는다. 살롱은 원래 도시 문화의 산물이다.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생활의 중심지인 도시에서부터 살롱을 중심으로 부유층이 모여들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프랑스에서는 살롱의 수가 급증하는데, 그것은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지(bourgeoisie)가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중요한 문화적 요소였던 살롱을 통해 사교계 활동이 이뤄졌다. 한국에는 살롱이 술을 파는 장소의 이름으로 왜곡돼 전해졌지만, 살롱은 프랑스 상류층이 명사들을 집으로 초대해 여는 사교적 집회를 말한다. 살롱은 초대받지 못하면 참석할 수 없었던 폐쇄적 문화였다. 살롱에 초대된 명사의 면면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됐기 때문에 명망 있는 살롱에는 초대받기 위해 온갖 연줄을 동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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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다과를 놓고 그날의 화제를 교환하거나 만찬을 열기도 하는데 화제는 당시 사교계의 가십거리에서부터 공연, 미술, 음악, 문학 등 광범위한 예술 분야에 대한 지식을 교환하기도 하고 정치·외교 문제까지 토론하기도 해 유럽문화사에 기여한 바가 컸다. 이러한 고급 살롱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경비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수의 지식인과 예술인, 부르주아끼리 모여 토론하고 예술을 즐기던 18세기 프랑스식 살롱 문화와 달리, 영국의 사교 모임은 비즈니스의 장 역할을 했다. 젠틀맨 멤버십 클럽은 사회적 지위와 명분을 갖춘 귀족 남성들의 사교클럽으로 영국 왕실에서 시작됐다. 이곳에서 친목 교류와 비즈니스 협업이 이뤄졌다.

남성들의 사교클럽은 정치적 연대뿐 아니라 여행, 와인, 미술, 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졌다. 역사적으로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사들의 클럽은 ‘더 트래블러스 클럽(The Travellers Club)’이다. 최고의 여행가야말로 최고의 신사라고 여기는 이 클럽은 1819년에 설립돼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름처럼 최소한 4개국 이상 여행한 사람만이 기존 회원 2명의 추천을 받아 신규 회원이 될 기회를 얻는다. 이 클럽에는 정·재계 수많은 인사들이 거쳐 갔다.

영국의 사교클럽 중 높은 콧대를 자랑하는 ‘민트(MINT)’ 클럽은 최고 부유층을 위한 모임이다. 총재산이 700억 원에 달하는 거부이자 세계적인 스타일 아이콘 데이비드 베컴마저 이 클럽에 입회를 거절당했을 정도였다. 영국의 윌리엄 왕자, 러시아 최고 갑부이자 첼시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이곳 회원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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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력·지위·스타일·교양 갖춰야 ‘그들만의 세계’로

사교클럽에서 스타일도 매우 중요한 구심점이 된다. 패션은 부유층에 있어 중요한 이야깃거리고 공동의 취향이기 때문에 유럽의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사교클럽이 형성된다. 프랑스 명품 수제화 브랜드 벨루티가 조직한 ‘클럽 스완’이 유명하다. 1991년 파리의 VIP 고객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사교클럽은 현재 전 세계 각계각층 최고의 신사 100여 명을 회원으로 매년 프랑스에서 성대한 파티를 연다.

이탈리아의 남성 슈트 브랜드 ‘브리오니’ 역시 사교클럽을 운영하는데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에서 온 회원들은 고대 로마 귀족이 휴양을 즐겼던 곳으로 유명한 크로아티아 이스트리아 지역의 브리오니 섬에서 폴로 클래식을 관람한다. 세계 최대 캐시미어 생산 업체로 알려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로로 피아나’ 역시 사교클럽을 운영하며 매년 승마경기를 개최해 VIP 고객 간 사교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신사들의 사교클럽은 남부럽지 않은 재력과 지위, 그리고 스타일과 교양을 갖춰야 ‘그들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돼 많은 부분 비밀에 쌓여 있다.
신사들의 사교클럽은 남부럽지 않은 재력과 지위, 그리고 스타일과 교양을 갖춰야 ‘그들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돼 많은 부분 비밀에 쌓여 있다.
신사들의 사교클럽은 남부럽지 않은 재력과 지위, 그리고 스타일과 교양을 갖춰야 ‘그들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돼 많은 부분 비밀에 쌓여 있다.
미국 역시 파티와 사교 문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공하려면 사교클럽의 활동이 중요하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사교클럽에 참석한 것이 알려졌는데 이 클럽은 1913년 발족한 워싱턴 최고의 사교클럽 ‘알파파 클럽(Alfalfa Club)’이었다.

이 자리에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존 매케인 전 대통령 후보, 존 로버츠 대법원장,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 등 유력 인사들이 참석해 만찬을 즐겼다. 이 클럽의 모토는 “빨리 주는 것이 두 번 주는 것과 같다”로 나눔과 기부를 중시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세계 최고의 부자 워런 버핏 등 회원 200여 명 대부분이 정·재계 거물들이다.
미국에서는 유력 인사와 부호들이 모이는 사교클럽이 나날이 늘고 있다. 뉴욕에서 부자들만 모이는 ‘카본(Carbon)’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모임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100만 달러(약 10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아야 1차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월가의 젊은 부자나 잘나가는 예술가 등이 회원이며 약 300명 정도가 정식 회원인 것으로 알려졌을 뿐 회원 정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명문대 중심으로 사교클럽이 활성화돼 있다. 대표적으로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등이, 남성 중심의 사교클럽을 운영한다. 하버드대의 ‘파이너스 클럽(Finer's Club)’은 미국 사회지도층이 될 만한 학생들이 모여 사교를 즐기는 클럽으로 유명하다. 이 클럽은 기존 회원의 추천으로 들어갈 수 있고 역시 회원 명단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 있다. 그리고 ‘르네상스’ 클럽은 아이비리그 명문대 졸업생이 만든 클럽으로 미국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한편, 미국에서는 와인 농장을 중심으로 사교클럽이 운영되는데 미국의 ‘나파밸리 리저브’는 와이너리의 일부 포도밭을 나눠 같이 와인을 생산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보증금으로 15만 달러(1억6000만 원)를 받는데 이 모임에 가입하려는 이들이 줄을 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퍼드, 축구 선수 베컴 등 유명 인사가 가입했고 회원 수는 약 450명 정도다. 할란, 콜긴, 스트리밍 이글 등 나파밸리의 최고급 와이너리 소유자는 모두 이곳에 자동 가입돼 있고, 다나 에스테이트를 이끄는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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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초특급 부자들의 투자 모임인 ‘타이거21’을 빼놓을 수 없다. 타이거21은 민간인이 설립한 순수 모임이지만 거부들의 막강한 네트워킹과 돈에 대한 통찰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뉴욕에 본사를 둔 타이거21은 현재 회원이 약 200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입 자격은 자산 1000만 달러(110억 원) 이상, 연회비는 3만 달러(3200만 원)다.

상속형이 아닌 자수성가형 부자만 회원으로 들어올 수 있다. 회원들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전직 기업가나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많다. 부동산업자, 의사, 변호사들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뉴욕에서만 모임을 가졌으나 최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LA), 샌디에이고, 마이애미 등 미국 다른 도시와 캐나다, 영국 등 외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타이거21의 회원들은 서로 투자 정보와 통찰력을 공유하며 협력을 통해 투자에 나서거나 기업 인수를 하는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몇몇 회원들은 돈이 될 만한 사업에 공동으로 투자한다. 몇 해 전에도 서너 명의 회원들이 유전을 매입해 상당한 이익을 거둔 바 있다. 타이거21은 각 그룹별로 세분화돼 각 그룹의 리더가 소모임을 이끌어간다. 회원들의 추천에 의해 명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거나 가족 모두 참여하는 교육과 컨퍼런스를 갖기도 한다. 명사를 초청할 때도 별도의 강연료나 초청료를 주지 않는 전통이 있다.

타이거21은 상속 부자를 배제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스스로 부를 일굴 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그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