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워치 더 워치스’를 눈여겨본 독자들이라면 기계식 무브먼트의 두 가지 큰 줄기인 오토매틱과 매뉴얼에 대한 구분을 어느 정도는 마스터(?)하셨으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자동’이랄 수 있는 쿼츠(quartz) 시계, 쿼츠 무브먼트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쿼츠 시계는 한 마디로 배터리를 동력으로 구동되는 무브먼트를 장착한 시계입니다. 멀쩡히 잘 가던 시계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멈춰버리는 순간의 경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지요. 이 매정한(?) 시간의 멈춤을 선사하는 시계의 속에는 아마도 쿼츠 무브먼트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파워리저브 기능이 있건 없건 기계식 시계는 테엽을 감아주거나 손목을 움직이지 않으면 멈춘다는 예상이 가능하지만, 쿼츠 시계는 평소에는 시계를 차는 주인이 해 줄 일이 없기에 갑작스런 시간의 멈춤이 때론 당황스럽습니다.

기계식 시계가 어쩔 수 없이 안고 있는 ‘몇 초’라는 시간의 오차를 배터리로 째깍째깍 움직이는 쿼츠 시계는 수월하게 극복을 했지만(초당 3만 번 이상 진동하는 수정 발진자 원리의 쿼츠 무브먼트와 초당 6~8회 진동하는 기계식 시계의 밸런스 휠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넌센스겠지요), 배터리가 다 되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설 수 밖에요.

쿼츠 시계가 등장하기 전까지 시계는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에 가까웠습니다. 한 마디로 시계는 ‘있는 티’를 제대로 내주는 럭셔리한 액세서리에 가까웠던 것이죠. 하지만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활동이 다양하고 폭 넓어지면서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시간을 알아야 할 필요가 강해졌습니다. 이에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파도를 넘으며 시계 회사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만만한(?) 시계 제작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부유층의 주문을 받아 시계를 만들어 팔다가는 언제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불황이 안겨준 쓰디 쓴 교훈 때문이었지요. 시간의 오차도 없고 무엇보다 가격대가 만만해진 쿼츠 시계는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치솟았었습니다. 한때는 쿼츠 때문에 기계식 시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지요.
세이코의 그랜드 세이코 모델에 내장된 쿼츠 무브먼트인 9F62. 일반 쿼츠에 비해 1.5배 큰 캘린더를 사용해 시인성을 높였고, 연오차 기준 10초 이내로 정확성 또한 높였다.
세이코의 그랜드 세이코 모델에 내장된 쿼츠 무브먼트인 9F62. 일반 쿼츠에 비해 1.5배 큰 캘린더를 사용해 시인성을 높였고, 연오차 기준 10초 이내로 정확성 또한 높였다.
많은 사람들이 쿼츠 무브먼트가 일본에서 최초로 탄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스위스가 종주국입니다. 1967년 스위스 CEH (Centre Electronique Horloger) 연구소에서 제작한 베타 21(Beta 21)이 시계 제조 사상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입니다. 하지만 이 시계는 상업적인 대량 생산을 이뤄내지 못했고 일본 브랜드인 세이코(Seiko)가 1969년 쿼츠 시계의 상업화를 이뤄냈는데, 바로 ‘아스트론’이라 불린 이 시계 덕분에 일본은 지금껏 쿼츠 시계의 본고장으로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쿼츠 무브먼트에도 ‘급’은 있습니다. 쿼츠 무브먼트의 대표적인 브랜드는 스위스의 ETA(보통은 ‘에타’라고 부름)사로 스와치그룹의 계열사입니다. ETA는 쿼츠는 물론 기계식 무브먼트도 생산하고 있는데, 그만큼 기술적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우리가 아는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가운데서 많은 브랜드들이 이 ETA에서 기계식 무브먼트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꼬박꼬박 배터리만 교체해 주면 잘 가는 쿼츠 시계도 관리는 필요하니 배터리가 소진되면 재빨리 배터리를 바꿔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멈춘 시계를 오래도록 방치해두면 배터리 속의 화학성분이 흘러나와 무브먼트의 부품을 부식시키게 됩니다. 실제로 필자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비싼 쿼츠 시계 하나를 저세상(?)으로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럼 기계식 시계는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 궁금하실 테지요. 기계식 시계의 주된 고장은 무브먼트 내에 주유된 윤활제 등의 응고 현상 때문인데, 이를 방지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5년에 한 번씩은 시계 전체를 분해해 깨끗하게 청소한 뒤 다시 조립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입니다. 이는 아끼는 자동차를 정기 점검하고 엔진 오일을 갈아주는 과정과 흡사하다 하겠습니다.

‘자동차는 소모품’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비싼 차를 다룰 때는 태도가 돌변할 때가 있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억’대를 호가하는 시계라면 구입할 때 신중해야 함은 물론이고, 관리에도 그만큼 신경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스위스 본사로 보내서 분리, 재조립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경기를 일으키는 분들이 계신가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만한 시계라면 그만한 대접,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